차 례

제 1 장 걱정되는 경향
제 2 장 복음이란 무엇인가?
제 3 장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 – 이것이 문제다
제 4 장 십자가 – 장애물!
제 5 장 십자가 – 미련한 것!
제 6 장 개척적인 전도(Pioneer Evangelism) – 위대한 성공!
제 7 장 “유대인”에서 “헬라인”으로
제 8 장 진화론과의 연관
제 9 장 아름다움과 저주
제 10 장 7 개의 C
제 11 장 실용적인 창조론 전도
제 12 장 세대 간의 간격
제 13 장 요점을 신화화 하기(“Myth-ing” The Point)
제 14 장 승리의 장 !












구원의 증언, 변화된 삶, 그리고 개인적으로 충격 받는 이야기.

창조론 전도의 결과:

제 1 장 걱정되는 경향

1975년에 나는 호주에 있는 한 공립 학교에서 생물학과 일반과학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그 당시 나이가 든 교사 중 몇 분은 학생들을 다루기가 몇 년 전과 같지 않다고 불평을 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그 당시 중, 고등학교에 다니는 젊은이들은, 지금은 장년이 된 지난 세대의 젊은이들이 선생님들에게 보여준 것과 같은 존경과 예의는 갖고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누구도 이 문제를 분명하게 지적하기는커녕 오히려 젊은 학생들의 행동이 문화의 전반적인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는 주장에 모두가 동의하는 듯 하였다.

그 당시에는 다수의 목사님들이 공립 학교 학생들에게 정기적으로 종교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나는 젊었고, 경험이 일천한 교사였다. 그러나 나는 크리스천 교육자로서,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가지고 학생들에게 나의 손을 내밀고 싶은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몇 분의 목사님이 내게로 다가와서 하시는 말씀이, 학교에서 종교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또한 날이 갈수록 학생들의 행동이 불손해지고, 학생들이 목사님의 가르침에 전연 흥미를 갖지 않기 때문에 점점 좌절감이 커진다고 하였다.

나는 그들이 마음에 품고 있던 것을 말하면서 쏟아 놓는 내용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그들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교과과정의 특성을 나에게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목사님들은 바울의 선교여행, 예수님의 복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새로운 땅과 하늘 그리고 신약 성경에 관한 여러 가지를 가르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은 성경 공부에 대해서 공공연하게 경멸적으로 얘기하고 전혀 흥미를 나타내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목사님들이 원하는 것은 젊은 학생들이 성경을 믿고(believe), 이해하고 그래서 하나님에게 의지하는(trust) 것이었다. 이 목사님들은 어떻게 학생들에게 다가갔는가? 좀 더 나이 드시고, 경험이 많은 목사님 한 분이 지금의 학생들은 몇 년 전의 학생들과는 매우 다르다라고 논평하였다. 그의 논평에 의하면 이러한 경향이 요즈음 들어 점점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 학생 세대들과 교통(의사소통, communication) 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가?

목사님들은 이 딜레마를 해결할 방법이 무엇인지를 나에게 물어왔다. 그 딜레마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더 심한 딜레마에 빠지는 것 같았다. 나는 생물학과 일반과학 교과서에 진화론적인 철학이 침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미생물이 사람으로(microbe-to-man) 되었다는 진화론이 사실인 것처럼 기술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단지 과학 교과서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진화론적인 개념이 모든 교과목에 스며들어 있었다.

나는 목사님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은 학생들이 대부분의 교과 공부 시간에 무엇을 배우는지 알고 있습니까? 학생들은 그들이 수 백 만년 전 “태고의 수프(primeval soup)”로부터 진화된 한낱 동물에 불과하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이들 젊은이들은 “진화론이 과학”이라고 믿도록 교육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실재적인 과학이 만들어낸 놀랄만한 기술로 가득찬 세상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에 과학이라고 불리는 것들에 대해 매우 존경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진화론이 과학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 목사님들이 학생들에게 성경을 교육하는 방법은 너무 고루하기 때문에 학생들은 성경이 아주 오래된 종교적인 책에 불과하다는 암시를 받고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성경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천문학에서 어떻게 태양계가 수 백 만년 동안에 먼지 구름으로부터 스스로 형성되었는지를 배웁니다. 지질학에서는 지구의 나이가 수 십억 년이며 화석 기록은 생명이 진화한 역사라고 배웁니다. 생물학에서는 그들에게 “원숭이 사람(ape-man)”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이들이 학생들의 조상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역사에서는 원시인이 석기시대를 지나 진화론적인 과정에 따라 진화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목사님들에게 대부분의 교과목들은 학생들에게 성경이 인류의 기원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게 하는 진화론적인 내용을 교육하고 있다는 사실을 수시로 설명하였다. 선생님들이 특별하게 성경이라 지칭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사항은 학생들이 성경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는 생각을 하도록 교육하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나는 내 학생 중 하나가 다음과 같이 불쑥 질문 한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선생님, 성경에서 우리의 조상이 아담과 이브라고 할 때 어떻게 그것을 믿습니까? - 그리고 우리는 과학을 통하여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목사님들에게 해 드리고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학교를 다닐 동안에는 점점 더 진화론이 사실이고, 과학은 성경이 틀린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배웁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교과서는 우주와 생명이 우연하게 이루어지는 “무작위적인 과정(확률적인 과정, random process)”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학생들에게 말합니다. 학생들은 진화론과 “원숭이 사람(ape-men)”에 대한 가르침이 아담과 하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과 모순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이제 더 많은 선생님들이 성경을 공격하는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이런 학생들이 여러분들의 종교 교육 클래스에 들어와서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 귀를 기울일 것 같습니까? 그들 중 많은 숫자의 학생들이 목사님들조차 성경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늘날과 같은 과학시대에 비해 성경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오래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그들은 당신들이 무엇을 말하든지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입니다.”

목사님들은 이전에는 한번도 이러한 사항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것은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나는 목사님들이 바울의 선교여행이나 예수님이 생애, 복음의 능력과 같은 사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전에 학생들의 주의를 끌어서 성경은 진정 믿을 수 있다는 사실과 성경은 오류가 전연 없는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나는 그들이 반-기독교적(anti-Christian)인 가르침을 반박하는 일련의 수업을 개발하여 매일 매일 그 수업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것을 제안하였다. 우리들은 교과서를 살펴보고 잘못을 지적하여 비판할 수 있다-그러나 동시에 교과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성경이 증거 한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설명하여야 한다.

나는 목사님들이 학생들에게 성경 공부를 시킬 때, 창세기의 내용을 옹호하고, 주장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성경의 첫번째 책인 창세기가 학생들의 눈으로 보아 진실이 아니라고 여겨진다면, 어떻게 이들이 성경의 다른 책들은 진실이라고 믿겠는가? 이런 일이 있은 지 20년 후에 어떤 여자 성도님이 나에게 한 말이 기억 난다. “내가 진화론을 받아들여야 하며 창세기는 성경에 기술된 대로 믿을 수 없다고 교회가 나에게 말했을 때, 나는 ‘그러면 하나님은 언제부터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나요’라고 반문하였다.”

나는 학생들과 많은 대화와 교제를 하면서 학생들의 변화된 생각을 확인하였다. 만약 종교 교육 시간에 그들이 신약 성경의 내용을 믿으라고 설교를 들은 후 과학시간에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이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그들이 신약 성경의 내용을 기록된 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

목사님들과 나는 학생들에게 진화론이 단지 하나의 믿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연속 강좌를 고안하였다 – 원숭이 사람(猿人, ape-men)은 없었다, 진화론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수 십억년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했다,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태양계의 기원에 대한 이론은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등 등.

목사님들은 이러한 강좌를 진행하면서 매우 놀라게 되었다. 학생들이 바로 앉아서 듣는 것이었다. 그들은 매우 흥미로워 했으며 여러 가지 질문을 쏟아내는 것이었다-“탄소 동위원소를 이용한 나이 측정이 무엇인가? 공룡은 언제 존재했는가? 왜 우리들의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이런 정보를 말해 주지 않는가?”

실제로 과학은 성경이 옳지 않다라고 증명하지 못했으며, 우리들 주위의 세계를 설명하는데 성경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목사님들이 학생들에게 분명하게 예시해 주었더니,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많은 학생들이 영적인 것에 지대한 관심을 나타내었다. 그 후에 목사님들이 신약 성경의 예수님에 대해서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학생들이 듣고, 기록까지 하게 되는 성공을 거둘 수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내가 나중에 명명한 “창조론 전도”라는 새로운 전도방법을 개발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 전도방법은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의 복음이 오늘날의 세계 구석구석에 이르게 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중의 하나이다.

내가 일본의 지방을 다니면서 강연할 때 목사님과 학생들 사이에 있었던 일련의 사건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첫번째 강연을 위하여 일본어 통역자로 나단 이라는 청년을 만나게 되어 매우 기뻤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났고 일본의 문화 속에서 자랐으며 미국 선교사의 아들이었다.

나는 나단의 아버지를 어느 강연장에서 만났다. 나단의 아버지가 나에게 한 말에 의하면 그와 그의 아내는 미국 선교사로서 일본 문화와 효과적으로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에서 낳은 그들의 아들, 나단을 일본 사람들에게 드리는 선물로 결정하였다고 하였다.

나단은 일본 문화 속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일본어를 실수 없이 잘 말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그는 통역자로서 삶을 꾸려가고 있다.

나단이 처음 나에게 설명한 것은 내가 “하나님”이란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그는 이 단어를 단지 “신”으로 통역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일본에는 신도교(神道敎, Shinto religion)가 널리 유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많은 신들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내가 이야기 하는 신(=하나님)도 그들의 많은 신 중에 더해지는 하나의 신으로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God”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마다 나단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세상을 유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단은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것과도 연결시켰다. 2차 세계 대전이 있기까지, 일본에서는 크리스천들이 처벌되었고 죽임을 당했다. 일본문화는 기독교적 배경을 전연 가지고 있지 않았다. 1억5천만 인구 가운데서 0.1%보다 적은 인구가 중생한 크리스천으로 여겨지고 있다. 만약 내가 일반 일본인들에게 그들이 죄인이고 그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이야기 했다면 그들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연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그들이 죄인이라고 말할 때, 죄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은, 당신의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창세기에 기록된 인류의 타락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 없이,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류의 조상인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 기원에 대한 이해가 없이 어떻게 그들이 복음을 이해하겠는가? 당신이 그들에게 죄인이라고 말할 수는 있으나 그들이 죄가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복음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단이 나에게 충고한 것은 내가 일반 일본인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전할 때는 그들이 복음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것을 돕기 위하여 먼저 창세기를 이야기하여 복음에 대한 기초를 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일본 교육계에서는 무신론적 진화론이 사실인 것처럼 학생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도 일본 국민들 대부분은 진화에 대해서는 들어보았겠지만 성경이 믿을 만 하다는 말을 들은 사람은 얼마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어서 “진화론은 기원에 대한 과학적인 견해로 여겨지기 때문에 사실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실제적인 인간 구속(속죄, salvation) 계획의 뿌리인 인류 기원에 대한 성경의 명확한 설명을 듣기 전에 사람들이 진화론에 대해서 듣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교육 시스템과 미국 같은 나라의 타협적인 선교의 영향 때문에 일본의 작은 보수적인 교회의 많은 크리스천들이 진화론 혹은 진화론적인 철학의 관점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아담의 창조와 인류의 최초의 타락을 성경에 기술된 대로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이 일본에서 교회가 그들의 문화에 충분히 접근하지 못한 부분적인 이유가 아닐까? 이런, 저런 이유(예를 들면, 비용(cost))로, 선교사들이 일본에서 철수하였다. 그래서 심지어는 일본을 “선교의 묘지”로 부르고 있다.

세계적으로 많은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을 빠뜨리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 중요한 기술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문화 안에서도, 기독교적인 기반이 전혀 없는 문화 안에서도 매우 유익한 기술이다.

이것은 “창조론적 전도”로 불리 운다.

만약 교회가 이것을 이해하고 오늘날 같은 매우 회의적인(skeptical) 세상에 이것을 사용하기만 하면 전 민족을 변화시킬 수도 있는 매우 성공적인 전도 방법이 될 것이다.

이전에 기독교 국가였던 서구의 많은 나라들이 세속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반 기독교적인(anti-Christian) 요소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주요한 기독교적 영향을 받지 못한 나라들은 복음에 대하여 문을 닫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이들에게 접근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 해답이 있다. – 설득력 있는 강력한 해답!

간증

수 년 전, 당신의 사역은 나를 성경의 하나님과 구속 주 앞으로 인도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내가 처음 하나님을 믿으려고 했을 때 나는 그의 존재를 인정하여야 했습니다. 내가 성경의 하나님을 믿으려고 했을 때 성경이 오류가 없다는 것이 나에게 증명이 되어야 했습니다. 당신의 진화 대 창조에 대한 자료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술된 대로 진실이라는 것을 나에게 증언해 주었습니다.

V. B., 뉴욕

제 2 장 복음이란 무엇인가?

보통의 크리스천은 이 질문에 분명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한다. “복음(gospel)”이란 말은 “좋은 소식”을 의미한다. 크리스천이 복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기쁜 소식을 나타내는 것이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1-4절에서 말한 것을 보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할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15:1-4).

바울의 복음에 대한 그의 설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12-45절에서 복음의 메시지를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주의하여 살펴보자: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 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 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15:12-45).

예수님이 죽으신 이유를 설명하면서 바울은 창세기로 가서 아담과 아담의 타락에 대한 것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유의하라.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신약의 “좋은 소식”인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의 “나쁜 소식”인 아담의 타락을 이해하고 그것이 죄의 기원이며, 그 죄의 형벌은 사망이라는 것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느 목사님의 부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 교회는 당신의 세미나에 참여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부인이 나에게 말했다. 나의 반응은 “왜 못 오십니까?”, “저… 당신은 창세기에 기술된 내용을 역사적인 사실로 주장하고 있으나 창세기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우리가 창세기를 어떻게 믿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기독교의 본질적인 문제에 동의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당신이 본질적인 문제라고 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라고 나는 반문하였다.

그녀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고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 아닙니까?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믿는 것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계속하여 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만약 성경이 정의하는 대로 누군가가 중생하였는데, 당신이 주장하는 대로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믿지 않는다면, 그는 구원 받았습니까? 그리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까?”

나는 대답하였다. “저… 만일 그가 진실로 거듭났다면, 그가 창세기에 기술된 대로 믿지 않는다 해도 그는 물론 구원 받았으며 천국에 가겠지요.”

그녀는 불쑥 말하였다. “그것 보세요. 창세기는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니까요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하신 일들이 기독교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반문하였다: “내가 당신에게 한가지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예, 좋습니다.” 그녀는 대답하였다.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까?” 그 여자는 금방 대답하였다. “우리들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지요.” 나는 질문을 계속했다. 그러면 당신이 말하는 죄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이에 대한 대답은, “반역(rebellion)” 이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당신이 어떻게 죄를 반역이라고 정의하게 되었는지 나에게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그것은 당신의 생각입니까? 아니면 다른 누구의 생각입니까? 나는 사람들이 죄를 ‘자부심의 부족’으로 정의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무엇을 기초로 하여 죄를 “반역”이라고 결정하였습니까? 당신은 어디서 그 정의를 가져왔습니까?”

그녀의 응답은? “나는 당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고 있습니다!”라고 그녀는 선언하였다. 그녀는 내가 그녀를 박스에 가두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녀는 창세기 없이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는 것을 수긍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죄의 의미는 죄의 기원(origin)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창세기에 나와 있는 아담의 타락을 문자적으로 받아 들이지 않고는 죄를 정의할 수 없다.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아담의 반역은 죄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초이다.

내가 시도한 것이 무엇이었겠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단순한 것이다.: 우리가 죄를 반역으로 정의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문자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반역 사건의 존재 여부이다. 우리 모두가 죄인인 이유는, 바울이 분명하게 말했듯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는 첫 사람인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첫 사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뱀에게 유혹되어 선악과를 따먹은 것이 바로 타락이며 이것이 반역이다.

크리스천으로서 이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할 필요가 있다: 문자적인 타락을 믿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인가? 절대적인가? 만약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문자적인 타락이 없었다면 무엇이 죄인가? 누가 죄를 정의하나? 그러면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 혹은 로마서 5장 12절에서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말한 것은 무엇에 대한 것인가?

바울은, 복음을 설명할 때, 창세기에 나오는 복음과 나쁜 소식의 근거를 논의한다: 죄의 기원과 죄의 형벌인 죽음. 바울은 그 다음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의 기쁜 소식을 말한다. 골로새서에서 복음을 설명할 때에도 바울은 우리들의 구세주,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창조주 되심을 분명하게 지적한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1:13-17).

또한 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된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4:11).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5:9).

우리들의 창조주가 우리들의 구속주가 되셨다! 이것을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해야 하는 이유는 모든 인류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가 있는 사람이 죄를 위하여 죽을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죄를 위하여 죽을 완벽한 사람이 필요하다. 유일한 해결 법은 완벽하고 죄가 없으신 창조주께서 사람이 되어 우리들의 구세주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창조론 교리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바울은 또한 모든 것들의 완성, 즉 타락의 결과를 극복하는 최후의 승리에 대해서 계속 써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다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전15: 46-57).

완성(consummation)에 대하여는 베드로 후서 3장과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에 상세하게 주어져 있다. 우리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우는 것이나, 죽음이나 저주(이것은 창세기 3장에 기록된 것과 같이 죄 때문에 부가된 것이다)가 없을 것이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 갔음이러라 (계21:4).

다시 저주가 없으며 (계22: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3:13).

이 모든 것들을 배경으로 하여, 동일한 문화권 내의 다른 사람들이나 타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복음의 세가지 요소를 이해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라는 사실을 주장하고 싶다. 다음을 고려하라:

  1. 만약 어떤 설교자가 창조주와 죄와 죽음의 기원에 대한 메시지 없이 복음을 설교한다면, 그는 복음의 나머지 부분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지식이 없이 설교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초적인 정보가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왜 그는 죽어야 했는가? 왜 다른 사람은 안 되고 그만이 죄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가? 그리스도에 대한 특별성은 무엇인가? 죄는 어디서 왔는가? 어떻게 우리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왜 우리는 죽는가?”라는 물음에 명확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2. 만약 어떤 설교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과 죽음에서 살아나신 메시지 없이 복음을 설교한다면 그는 능력이 없는 복음을 설교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바울이 말한 바와 같다-“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고전15:17). 우리들 개개인의 죄가 용서 받을 수 있고 그리고 우리 창조주와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유일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하신 일 때문이다. 복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다.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운동의 메시지가 매우 파괴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그룹의 리더격인 마커스 보그는 예수님의 처녀 탄생과 부활, 그리고 기독교 신앙의 타협할 수 없는 많은 사항들을 부인한다. 그는 자기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말하고 많은 교회에서 그를 받아 들이고 있지만, 성경에 의하면, 그의 믿음은 가짜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예수 세미나 운동의 리더인 마커스 보그는 가끔 창세기를 신화의 영역에 놓고 강연을 시작한다.

“우리는 죄가 이 세상에 침입하였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1. 새로운 땅과 새로운 하늘의 메시지가 없이 설교하여지는 복음은 희망이 없는 메시지이다. 죄인인 우리에게 죄없는 상태를 가져 다 주는 미래가 없는 복음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죄와 저주의 심판 때문에 피조물이 신음(groaning)하고 있다(롬8:22). 우리들 주위에는 죽음, 질병, 고난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이 우리들 세계에 쳐들어 왔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고린도전서 15장 26절에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그렇다면 사망은 미래 어느 때에 멸망될 적이다. 베드로는 우리가 그 미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3:13).

우리는 이 미래의 상태가 어떠한 곳인지에 대해서 요한 계시록을 통해 살짝 살펴 볼 수 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21:4).

다시 저주가 없으며(계22:3).

우리는 우리가 죽음, 고통, 병고, 질고로부터 자유로워 질 때를 얼마나 고대하고 있는가! 나의 동료이자 친구인 게리 파커 박사는 “우리가 실제적으로 완전하게 회복을 받게 되는 것은 죽을 때이다.”라고 말한다.

그림에 보이는 세가지 요소는 본질적으로 복음을 이해하고, 그래서 기독교의 궁극적인 의미를 완전하게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잠간 제1장에서 논의한 것을 기억해 보라. 학생들은 복음의 능력과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흥미를 나타내지 않았던 사실을 기억하는가? 그 이유는 학교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첫 사람인 아담을 지으셨는데 그가 반역하여서 그 후손인 우리가 죄인이 되었고 죽음의 저주를 받게 되었다”는 복음의 근거(foundation)가 거짓이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때문이었다.

이 학생들은 1970년대의 학교 시스템의 틀 안에서 교육을 받았다. 새 천년이 시작되면서 교과서는 더욱더 심하게 반 기독교(anti Christian)적인 색채를 띄고 있다. 대체로 학생들은 그들이 단지 동물이라고 배우며 인생에는 목적과 의미가 없다라고 배운다. 그리고 우주와 인생을 설명하는데 하나님은 아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과학이 증명하였다고 가르친다. 그들에게는 일상생활에서 부딪치는 고통과 죽음과 고난은, 진화론적인 믿음이 가르치는 것과 같이, 생활의 한 부분으로 필연적인 것이며 이 지구상에서 인생의 과정을 진행시키는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이런 가르침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나타나겠는가? 젊은이들이 고통 당하고 있으나 왜 이런 일이 자기들에게 일어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죄의 의미와 죄의 결과 (사망과 고통은 죄의 결과로 세상에 침입하여 온 것임을 기억하라)에 대해서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이 동물에서 진화된 존재라는 것을 가르치는 문화 속에서 성장하였다. 또한 그들은 그들이 믿을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화 속에서 성장하였다. 그래서 논리적으로 절대적인 것에 대한 기초가 없는 것이다(물론 그들에게는 절대적인 것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절대”이다). 그들의 일반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이 그들 자신의 생각을 가질 권리가 있다. 모든 견해(관점)에는 서로를 인정하는 허용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예수님만이 진리”라고 하며 배타적이기 때문에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영화에서는 혼외 정사나 불필요한 폭력, 물질주의, 감각적인 쾌락을 “인정된 표준”으로 묘사한다. 인간의 일생이 실제적으로 특별하게 고려되지 않고 있다.

만약 1970년대의 학생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기본적인 지식을 잃어버렸다면, 오늘날 세속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교육시스템, 대중매체, 사회의 영향이 뒤섞여져 있는 서구 국가들은 더 큰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기독교 기반이 전연 없는 일본 같은 나라에서,창조주, 죄, 그리고 죄를 대속 받아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없이 어떻게 복음을 이해 할 수 있겠는가?

비신자들에게 (일부분의 신자들을 포함시킬 수 있음: 역자 주) 창세기에 포함되어 있는 복음의 기초적인 관점을 이해 시키는 것은 그들을 그리스도의 세계에 들어오게 하는 강력한 전도의 문을 여는 극히 중요한 열쇠이다.

간증

나는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이미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런데 창조론이 나의 회심(전환)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당신은 탁월하게 창조론을 성경의 다른 부분 연결시켰고 또한 사회적인 이슈와 연결시켰습니다. 당신은 죄와 사망에 대해서 내가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강연할 때 언급한 어떤 숙녀와 같았습니다. 그 숙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면서요.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반쯤 상영된 영화를 보기 시작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나에게 영화의 시작을 보여 주었다; 이제 나는 영화의 전체적인 계획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진실하게 나의 크리스천 생활을 시작하게 해준 당신에게 감사 드립니다. 또한 특별히 나와 같이 경건한 양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오직 창세기를 기록된 대로 이해하고 믿음으로서 성경의 나머지 부분을 이해하도록 도와준 당신에게 감사 드립니다.

G.D., 영국

제 3 장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 – 이것이 문제다

어떻게 복음이 1세기에 그렇게 괄목할 만하게 전파가 되었는가?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독교 리더, 전도자, 성경 공부 교사들을 포함한 크리스천들은 그들이 새로운 청중들을 만나게 될 때 초대 크리스천들이 사용한 방법론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예수님이 주신 위대한 위임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행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사도행전에는 설교자의 예, 교사의 예, 선교자의 예가 포함되어 있어서 현대의 설교자, 교사, 선교자들이 복음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일을 잘 감당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이들 초대 크리스천들이 복음을 표현할 때 사용한 방법론에 대해서 우리가 가끔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청중에게 설교와 증언을 할 때 그들은 청중들이 알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수준에 맞추어서 시작하였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공통분모에서 시작하였다 –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공통 수준에서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서 어느 특수한 문화의 배경과 관련된 수준에서 시작하여, 거기서 곧바로 그들의 가슴과 마음을 그리스도로 직접 닿게 만든다.

나는 오늘날과 같은 세계에서 복음을 전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여야 할 사항은 “대화(교통)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한 비유를 들어보기로 하자.

한 선교사가 나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대학에서 선교 지의 언어와 문화를 배웠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현지 문화 속에서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 할 때에는, 상호간의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문제로 상당한 어려움을 경험하였다.

예를 들면, 북 호주 이리안 쟈야 지방의 검은 피부를 가진 종족에게 말씀을 전할 때였다. 선교사가 현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죄의 검은 점들을 씻어 주어 죄인인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희고, 정결하게 만든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현지인들은 그 말을 듣고 몹시 당황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피가 사람들을 더럽게 하는 이유를 알고 싶어했다. 그 선교사는 의사 전달 문제에 봉착한 것이었다. 그가 마침내 그 문제를 파악하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검은 피부에 대한 문화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선교사가 말하는 것을 완전히 다르게 이해한 것이었다. 그들이 불을 피울 때 그들의 피부에 흰 재가 날아와 앉을 때 그들은 더러워졌다고 생각한다. 흰 것인데도! 그래서 선교사가 예수님의 피가 그들의 영혼을 희게 만든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의 피가 그들을 더럽게 한다고 이해한 것이다.

이 선교사가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누군가가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웠다고 해서 그 문화와 아무 어려움이 없이 교통(교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다른 문화의 언어는 잘 습득하였으나 그 문화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또한 그 언어가 문화 속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문화 속에서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선교사들이 경험한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너무나 많이 있다. 이들 이야기들이 서로 연관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실소를 금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슬프게도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우리 모두에게 흥미를 끄는 선교사들의 생생한 경험에 내포된 근본적인 메시지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또한 언급하고 싶은 것은 사람들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할 지라도 다른 문화권으로부터 온 언어는 철자는 같은 단어이지만 매우 다른 뜻을 갖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호주 인으로 미국에서 다년간 살면서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하였다.

몇 년 전 내가 아직 호주에 살고 있으면서, 미국에서 강연을 하기위한 여행을 몇 차례 다닌 적이 있었다. 어느날 미국에서 호주에 온 10대 소녀가 브리스베인의 우리집을 방문했다. 그 때 나의 아들 제래미는 젖먹이 아기였다. 나는 그 소녀에게 잘 대해 주려고 노력하였으며, 최대한 환대하였다. 그러던 중 한번은 나는 그 소녀에게 나의 아들을 좀 돌보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때 그녀의 얼굴에 나타난 무서운 표정을 누가 보았다면 내가 그녀에게 심한 모욕을 주었던지 혹은 매우 무시무시한 것을 말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는 “어떻게 대답할까” 매우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녀에게 말했다. “별 문제 없어요. 내가 곧 그 아이를 돌볼테니까요.” 그러나 그녀는 매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나는 그녀의 얼굴 표정이 글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때 나는 우리들의 의사 전달에 매우 큰 간극(gap)이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그때 갑자기 그전에 미국을 방문했을 때 겪었던 일이 기억 났다. 그제서야 나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 일어난 지 알아 차렸다.

호주에서는, “nursing the baby”라고 하면 단지 어린아이를 붙드는(꼭 껴안는) 것이다. 미국에서 “nursing a baby”라고 하면 엄마가 아이에게 젖 먹이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그 소녀에게 그 소녀의 젖을 아기에게 먹이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내가 나의 젖을 아기에게 먹이겠다고까지 했으니! 나는 그 소녀가 호주 남자들은 진화론적인 돌연변이를 통하여 어린이에게 젖을 먹이도록 변화된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면서 놀라지 않았나 생각하였다.

이와 같이 같은 언어로 같은 말을 할지라도 다른 문화 속에서 사용되면 전연 다른 뜻을 가지게 된다.

내가 이것을 미국에서 열린 어떤 세미나에서 이야기 했더니 어떤 여자가 나에게 질문 하였다, “그러면 호주에서는 어린아이에게 모유로 직접 젖을 먹이는 것(breast-feed)을 어떻게 말 합니까?”

나의 대답은? “저… 호주에서도 역시 ‘모유로 키우다(breast-feed)’라고 말합니다. 당신들도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요?” 이것은 미국 문화권의 사람들이 이해할 필요가 있는 호주문화의 다른 한 측면이다. 일반 호주 인들은 얼마간은 퉁명스러우며 그저 “그것과 같이(like it is)”라고 말한다. (나는 이 말 버릇때문에 미국에서 곤경에 빠진 적이 몇 번 있었다.)

이제 나는 미국에서 수 년 동안 살았으니 한 호주 인이 미국 문화에 접하여 교통하면서 겪은 문제들을 책으로 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태어난 나의 가까운 친구인 카알은 일본 여성과 결혼하였다. 어느날 카알과 나는 그의 아내 앞에서 농담을 주고 받고 있었다. 우리들은 이 농담이 매우 유쾌한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카알의 아내는 그 농담을 듣고도 전연 웃지 않았다. 그녀는 우리에게 말했다. “나는 전연 우습지 않는데요.” 그래서 우리는 그녀에게 그 농담에 숨은 내용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왜 당신이 그것을 그렇게 재미있다고 생각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내가 세상의 다른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리고 다른 문화를 경험하면서,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하기 전에 그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먼저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나는 선교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 문화권에서는 이런 말은 하지 말라. 그것은 완전히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혹은, “그들의 생각은 당신의 문화권의 생각과 다르기 때문에 그들은 그 독특한 사항을 이해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은 웃을 수 있으나 이전에 일본에서 강연한 후, 일본인 통역자가 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을 때 매우 당황하였다: “일본 사람들이 당신이 하는 농담에 어떻게 가슴을 치면서 웃었는지를 기억하십니까?” “예”라고 나는 대답하였다.

통역자의 다음과 같은 말은 나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였다: “나는 당신에게 이 말을 꼭 해야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은 당신의 농담을 전연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농담을 그렇게 우습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내가 ‘함(Ham) 선생이 농담을 이야기 하니까 예의 바르게 웃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잘 알아 차리지 못하는 또 다른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의 문제가 있다. 동일한 문화권내에서도 매우 큰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의 간극이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것은 “세대간 격차”이다. 나는 서구 문화권에서도 이 세대간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은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더욱 명료해 질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서는 다음의 내용만 언급 하겠다. 점점 세속화 되어가는 문화 속에서 비 크리스천 세대가 증가하면 할수록 크리스천들은 이들과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다른 문화권의 사람과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하는 것과 같다. 이들에게는 동일한 말이 다른 뜻을 갖거나 전연 의미가 없이 들릴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많은 기독교 교파들은 젊은 세대들과는 전연 관계없는 구절이나 은어를 사용한다. 설교나 찬송가는 “피로 씻음 받는다든지” 혹은 “요단 강을 건너다”라는 구절을 사용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연 모른다. 전통적인 기독교가 자기들 만의 용어들로 완성된 다른 문화권을 형성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음 두 장에서는 많은 크리스천들을 놀라게 할, 사도행전에서 제시된 2가지 특수한 설교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한 관점으로 이 2가지 설교를 조사해보면 타 문화권에서는 어떻게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가에 대한 노하우 뿐만 아니라 점점 반–하나님(anti-God)화 되어가는 서구 문화(나라)에서 어떻게 설교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예가 주어진다.

간증

2년 전, 나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캔 함과 캐리 파커가 함께 제작한 비디오-“창세기 이해”를 시청한 후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그때 우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그 비디오를 보면서 우리들이 회심하리라고는 전연 예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성경을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읽었을 뿐이었으며 비디오를 볼 때까지는 과학의 영향 때문에 성경은 진리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성경을 공부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교회들이 가르치는 모든 수상한 사항들에 대항하여 보호 받기 위한 성경구절을 찾았다. 우리들은 당신의 사역이 창세기의 천지창조로부터 시작되는 교리를 강조하여, 올바른 기초를 정립하였음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

T. H., 영국

제 4 장 십자가 – 장애물!

사도행전 2장과 17장의 2가지 설교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때 당신의 마음 속에 다음 구절을 기억하라.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고전1:23).

이 장에서는 이 구절의 첫째 부문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의 의미를 상세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1세기에 가장 성공적인 전도의 예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대로 오순절 날 일어났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서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다윗이 저를 가리켜 가로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입술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는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발등상 되데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 하더라 (행2:22-41).

나는 신학교와 성서대학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사도행전 2장의 베드로의 설교를 그들의 전도방법의 모델로 삼으라고 말씀하셨다고 학생들이 나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사실, 현대의 대부분의 전도 설교는 어떤 면에서 보면 이 패턴에 기초를 두고 있다. 우리는 베드로가 십자가의 메시지, 부활, 그리고 사람들에게 회개할 것을 담대하게 설교한 사실을 읽는다. 수천 명이 구원을 얻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얼마나 놀랄 만 한 집회였던가!

실제로 사도행전의 이러한 기사는 지난 세대에 있은 매우 큰 전도개혁운동을 기억 나게 한다. 많은 대중들이 몇몇 유명한 전도자나 성경 선생님이 설교하는 십자가의 메시지를 듣고 회심한 사례가 많이 있었다. 휫필드, 웨슬레, 무디가 활약하던 시대를 회상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사도행전 2장의 설교 내용을 좀더 상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설교를 듣는 대상자가 누구인가를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한다. 지난 장에서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에 대해서 논의했듯이 우리가 메시지를 듣는 청중들의 배경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베드로가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 어떻게 그렇게 성공적으로 그들과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 할 수 있었는가?”

베드로의 설교를 들으려고 모여든 청중들을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1. 예루살렘과 그 주위에 살고 있었던 유대인들.
  2. 천하 각국으로부터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온 유대인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에서 먼저 전하고 그 다음 온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나의 증인이 되라”라고 말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1. 원래 유대 종족이 아니고 이방인이었는데 유대교로 회심한 회심 유대인들.

지금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청중들은 3가지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에게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즉 그들 모두가 구약 성경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구약 성경으로부터 잘 이해하고 있는 교리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베드로가 설교한 청중은 이미 복음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1. 그들은 한 분인 참된창조주 하나님을 믿었다.
  2. 그들은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으며, 그것은 절대적이라는 것을 믿었다. 따라서 그들은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었다.
  3. 그들은 아담의 타락을 이해하고, 이 사건 때문에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창조주의 심판을 받아, 죄인이 되었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4.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는 것을 이해하였다. 그들의 죄 때문에 수천 마리의 동물들이 희생된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은 동물을 희생하고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온 것이었다.

베드로가 설교한 문화는 창조론의 기초를 가지고 있는 (= 창세기)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제 2장에서 논의한 복음의 주요한 3가지 부분을 다시 생각해 보라.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청중은 복음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이미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었으며 죄와 죄의 형벌이 죽음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반적으로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은 믿지 않고 있었다.

베드로가 설교의 본론에 들어 가기 전 그들에게 창조의 진실에 관하여 납득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는 성경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납득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문제는 예수님이 육신으로 나타난 하나님이고 메시아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거리끼는 걸림돌 이었다.

따라서,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이 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이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그들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사건이었음을 확신 시켜야 했다. 구원은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하신 일과 그것 때문에 그들의 모든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받아들임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동안 주제에서 좀 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양해하기 바란다. 이 장과 다음 장에서 나는 베드로가 어떤 점을 유대인에게 확신 시킬 필요가 있었으며, 바울이 헬라 철학자들에게 성경적인 진리에 관하여 어떻게 설득하였는가에 대해서 논의할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와 바울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그들의 청중들에게 진리를 확인시키려 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하여 듣고, 이해하게 만드신 분은 예수님이라는 것을 우리가 안다.

예를 들면, 바울은 그가 설교할 때 다음과 같은 낱말을 자주 사용하였다: 강론하며(reasoned)(행17:2), 강론(disputing)(행18:4), 변론(persuading)(행 18:19); 증명하여(proving)(행9:22), 증명하고(alleging)(행17:3); 변론하니(disputing)(행 9:29); 증거하여(mightly convinced)(행18:28).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중들에게 확신 시키기 위하여 종국적으로 확신을 주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가 할 수 있는 논증을 모두 동원하였다. 이사야서 1장 18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된 것과 같이 바울은 논쟁과 논증, 변론을 사용하였다. 이사야 1: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베드로도 이러한 관점을 잘 이해하였기 때문에 베드로전서 3장 15절에서 크리스천들에게 다음과 같이 요구하고 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인간적인 관점에서는, 청중들이 잘 알아 들을 수 있는 설명과 논증을 통하여 하나님 말씀의 진리성을 사람들에게 확신 시키려는 시도를 부지런하게 해야 한다.

선지자들, 사도들, 그리고 예수님 자신까지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오라고 권유하신다. “회개”의 문자적인 의미는 “마음을 바꾸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분명하게 말한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롬3:10-11).

에베소서 2장 1절의,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에서 죽었던이라는 단어를 요한복음 11장에서 나사로가 죽었다고 할 때의 “dead”와 같은 단어를 쓰고 있다. 죽은 사람은 자기의 뜻대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들은 죄 때문에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으므로 우리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오지 못한다.

로마서 10장 9절에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외에도 이와 관련된 성경구절이 많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위에서 엿볼 수 있는 역설을 완전하게 이해 하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죄가 많으며 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어떻게 무한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을 완전히 깨달을 수 있겠는가?

로마서 10장을 보면 우리는 전도의 명령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요약하면: 인간적인 논증만으로는 결코 불신자를 진리의 지식으로 나오게 하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성령님께서 개입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첫 크리스천들이 그들에게 복음을 들고 와서 복음이 진리라고 전파하여서 그들이 복음을 믿게 될 때까지 마냥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 “믿음은 논증에 의해서 생기지 않는다 – 그러나 논증이 없이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이 모든 논의는 다른 중요한 논의 점들을 부각시킨다. 우리가 배운 “성경 덩어리”를 사람들에게 던져주고 사람들이 그것에 반응하기를 기다리면 안 된다. 우리는 선지자, 사도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교훈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의 의미는 조심스럽게 설명되어야 하고 그리고 “논쟁”되어야 한다. 이것은 복음을 듣는 사람들이 메시지의 내용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방법으로 행해져야 한다. 예수님도 청중들에게 자연이나 농업으로부터 친숙한 예를 자주 사용하여 청중들이 중요한 진리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사야서 55장 11절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이 성경에서 나타내시는 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의 책임성과 하나님의 주권성(통치권)이 보조를 잘 맞추어야 한다.

이제 베드로가 오순절 날 설교한 위치로 다시 돌아가보자. 이때 베드로는 그의 설교를 듣는 청중에게 더 이상 복음 메시지의 기초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베드로는 그의 청중이 창조와 죄, 죽음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이해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고 가정한 듯하다. 그는 또한 그가 사용하는 “죄”라는 단어의 뜻과 그의 청중이 “죄”에 대하여 이해하는 뜻이 동일하다고 생각하였다. 베드로나 청중이나 모두 동일한 율법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율법을 준 창조주도 동일하였다. 그들은 십계명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마음속으로 간음, 살인, 도둑질, 우상숭배가 죄인 것을 인정하였다.

그래서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청중은 곧바로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하면서 괴로워 하였다(행2:37). 그들은 이미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반역하였기 때문에 죄인 되었음을 알고 있었다. 베드로는 이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창조주이고 율법을 주신 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 설명을 계속하였다. 예수님이 메시아였고, 그들의 죄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한 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었다라고 설파하였다.

베드로는 또한 그의 논쟁의 한 부분에서는 청중들에게 매우 친숙한 성경 구절을 사용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사도행전 2장 25-28절에서 그는 다윗의 시편(16:8-11)을 인용하면서 다윗이 메시아에 관하여 예언한 내용을 언급한다. 사도행전 2장의 앞부분에서는 요엘 2장 28-32절을 오순절과 연관을 지어 인용하였다. 베드로는 청중들의 생각이 머물러 있는 곳에서 설교를 시작하였다. 베드로는 지금 그들이 수용하는 것과 이해하고 있는 것을 잘 파악하고 있었으며 그들이 구약 성경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설교할 때 베드로는 그들의 구원에 관한 주된 이슈로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다음의 비유는 베드로의 접근법을 요약하는데 도움을 준다. 나는 매우 빠르게 성장하는 작은 지역에 살고 있는데, 이곳에서 새로운 집을 건축하는 사람들이 집의 기초와 최하층을 준비하는데 매우 긴 시간을 소비하는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였다. 기초가 튼튼하게 놓여진 다음에는 그들은 집의 나머지 부분을 매우 빠르게 건축하였다.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설교할 때 유대인들의 영적 상태는 기초가 이미 놓여져 있는 집을 짓는 것과 같았다. 베드로는 기초를 구축하는데 시간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이러한 상태는 한 세대전의 미국과 영국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전도자는 청중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어떠한 기초를 가지고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나는 요즈음 청중들이 가지고 있는 이 기초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 슬프게도 교회는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기초는 사도행전 2장에서 나오는 모델과 닮았는가? 아니면 실제적으로 매우 다른 사도행전 17장의 모델과 더 유사한가?

간증

몇 년 전 카이스터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한 한 남자가 금년 모임에는 아내와 같이 참석하였는데 그녀는 그녀의 일생을 하나님께 헌신하였습니다. 그들은 그의 일생을 하나님께 헌신한 5살 된 아들을 위하여 ‘A는 아담을 위한 것(A is for Adam)’ 이란 책과 다른 몇 권의 책을 구입하였습니다.

다른 한 결혼한 젊은 부부가 나에게 다가와서 세미나에서 들은 내용 때문에 자기들 부부가 크리스천이 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그 세미나에 참석하였음에 감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벌이고 있는 선교사역을 사용하셔서 그들이 회심하게 된 것을 고백하였습니다. 나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영국에서 AiG(Answers in Genesis) 세미나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간증한 내용, 캔 함)

제 5 장 십자가 – 미련한 것!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1:23)

이 장에서는 위의 고린도전서 1장 23절의 의미를 상세하게 살펴 보도록 하겠다.

사도행전 17장의 서두에서, 우리는 바울이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설교를 행한 근거를 읽을 수 있다. 여기서의 바울의 접근은 사도행전 2장의 베드로의 접근법과 유사하다.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르치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 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행17:1-4).

우리는 여기서 바울의 메시지의 초점은 역시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이었다. 바울은 또한 성경구절을 가지고 그들에게 강론하였다.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가정 한 것처럼 바울은 청중들이 진리를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할 수 있는 공통적인 근원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였다. 그의 설교를 듣는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은 구약성경을 이해하고 있었다. 이것을 현대의 언어로 표현하면, 바울은 이렇게 시작하였다. “성경이 말하기를 ----“

사도행전 17장 18-34절은 바울이 매우 다른 문화의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 설교이다.

어떤 에바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제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 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전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동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저희가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혹은 기롱도 하고 혹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이에 바울이 저희 가운데서 떠나매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행17:18-34)

이것은 성경에서 매우 매혹적인 구절이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접근법으로부터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며 이것을 “잃어버린 자들”에게 접근하는 전도법으로 적용할 수 있다. 여기서 이 설교를 좀더 조심스럽게 분석해 보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에 대해서 옳지 않은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챨스 다윈이 이 이론을 고안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1. 바울이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헬라 철학자들인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에게 말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인생에 대해서 무엇을 믿고 있는 사람들인가? 그들을 유대인들과 비교해 볼 때, 인생에 대한 생각이 유대인들과 달랐는가? 그렇다. 이들 헬라 철학자들이 진화론에 기인하는 사고를 가졌다는 것이 잘 문서화 되어 있다. 여기서 내가 이것을 설명해 보겠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화론에 대해서 옳지 않은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챨스 다윈이 이 이론을 고안(invent)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실이 아니다. 다윈은 진화론의 특별한 개념을 대중화시킨 것 뿐이며 진화론적인 개념은 역사적으로 오래 전부터 존재한 것이다.

에비구레오는 주창자인 에피쿠루스(Epicurus; B.C. 341~270)의 이름을 딴 학파로서 지구상의 모든 것은 지구상의 물질 그 자체로부터 직접 진화하였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본질적인 인생의 목표를 보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존재의 목적이 감각적인 쾌락에 있었다. 스도이고 학파는 범신론을 주장하였다. 범신론은 또 다른 진화론의 형태이다. 그래서 헬라 문화의 일반적인 사고는 진화론적이었다. 동시에 그들은 실천적인 우상 숭배자였다. 그들은 신들을 믿었으나 그 신들조차 최초의 원시 물체로부터 진화한 것이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중요한 사항은 헬라 문화에는 유대인이 믿고 있는 인격적이며, 천지를 창조하시며, 초월적인 무한한 능력을 가진 신의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바울이 이런 문화권에서 선교한 것은, 진화론적인 기초가 형성되어있는 문화에게 선교한 것과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1. 헬라 사람들은 유대 성경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바울은 그와 베드로가 유대 문화의 한 부분으로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말할 때와 같은 성경의 내용을 가지고 헬라 사람들과 논쟁할 수 없었다. 헬라 문화에는 많은 서로 다른 경쟁하는 철학관이 복잡하게 혼합되어 있다. 그들은 그들의 문화 속에서 “죄”와 “악마”를 보고 “법”과 “사회구조”의 중요성을 인식하지만, 그들에게는 절대적인 권위, 절대적인 진리 혹은 사람의 본질적인 죄의 특성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2. 헬라인들에게는 그들의 최초의 선조인 아담과 근원적인 죄(원죄)에 대한 개념에 관련된 이해가 없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 사람들은 율법을 주신창조주의 절대적인 권위를 이해하지도 않았으며, 인정하지도 않았다.

이 그림에서 복음의 3 개의 주요한 요소를 생각해 보자. 아덴의 아레오바고(Mars hill)에서 행하는 바울의 설교를 듣고 있는 헬라인들은 복음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앞 장에서 우리가 사용한 비유를 사용한다면,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이해 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작은 가정집을 짓기 위하여 만든 기초 위에 고층건물을 지으려는 것과 같다. 헬라 문화는 나쁜 기초를 가지고 있었다. 건축가가 고층 건물을 짓기 원한다면, 그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쁜 기초를 제거하는 일일 것이다. 그 다음 고층 구조물을 올리기 전에 먼저 튼튼한 기초를 정립해야 할 것이다.

이 “나쁜 기초” 개념은 부활의 메시지에 대한 헬라인들의 반응으로 명백하게 예시되었다:

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전함을 인함이러라 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무슨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행17:18-20).

그들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얼마나 미련한 것인가? 무슨 이상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는가? 모든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냐? 고린도전서 1장 23절에서 십자가를 설교하는 것은 헬라인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한 것을 기억하라. 이 시점에서 헬라인들의 반응이 유대인들의 반응과는 판이 했다는 중요한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모든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그것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바울과 다른 사람들이 그들에게 말하는 것을 이해하였다. 그러나 헬라인들은 부활에 관한 이 메시지가 도대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전혀 개념을 잡을 수 없었다. 바울은 이 메시지를 그들에게 설명하기 위하여 성경을 사용할 수도 없었다. 복음의 능력인 십자가의 메시지를 그들에게 이해 시키기 위하여 바울은 그들에게 어떻게 하였는가?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창세 전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의 만드신 만루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롬1:20).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며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롬2:15).

이방 인인 헬라 철학자들이, 전반적으로, 그들의 문화에서 참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지워버렸지만, 바울은 인간의 본성과 양심에 호소하면 그들에게 참된 창조주 하나님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을 시작하는 것이 가능함을 알았다.

그래서 바울은 기본적인 지식으로부터 시작하여 더 전문적인 지식을 동원하는 방법으로 기독교 메시지를 설명하는 변증적인 방법으로 그의 위대한 설교를 시작하였다. 바울의 설교에 포함되어 있는 다음과 같은 4가지 중요한 요소를 주의 깊게 관찰해 보자.

  1. 바울은 헬라인들이 그들의 제단에 “알지 못하는 신에게 ”라고 써 놓은 것을 지적한다. 바울은 헬라인의 문화와 공통된 기반 위에서 설교를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알지 못하는 신”은 실제적인 진짜 신이라고 그들에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바울은 참(진짜)신의 본질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정의한다. 그는 이 신이창조주임을 강조한다. 이 창조 신은 만유를 지으시고 그의 능력으로 만유를 다스리고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것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화론적이고 범 신론적인 관점과 분명하게 대조되는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천지 창조 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에 관하여 설교하였다. (여기서 나는 나의 일본어 통역자가 기독교적 기반이 없는 일본 문화에서 내가 “God=신”이라는 사용할 때 이 단어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지 고심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하였다.) 비록 이것이 헬라인들에게는 이질적인 개념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헬라인들 자신의 양심과 창조 사실 그 자체가 창조 사실의 증거가 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헬라인들은 매우 논리적이었으며 논리적인 논쟁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 능력 있는 증언을 사용하여 그들의 마음이 진리에게 열리도록 하였다 – 헬라인들의 논리적인 사고 체계를 이용하여 논리적으로 그들이 양심과 창조 사실을 증거로 제시하여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열게 하였다(역자 주).

  1. 사람들에게 그들이 죄인인 것을 이해 시키기 위하여, 그들이 모두 첫째 사람인 아담의 후손이고 모두가 서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담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죄인이 된 것이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그래서 바울은 우리 모두가 한 피로 연결되었으며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모두가 한 사람 아담에게 도달한다는 것을 헬라인들에게 설명하였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아담의 후예인 우리 모두의 활동(행동)을 책임지신다는 것을 그들에게 설명하였다. 어떤 나라(왕국)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는 것이다. 헬라 문화도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장 중(손안)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2. 바울은 또한 헬라인들의 잘못된 종교에 대해서도 반대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바울은 그들의 우상 숭배에 반대하였으며, 동시에 그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이 주권자이며 심판자이심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심판의 날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설교하였다. 바울은 그들이 잘못된 길로부터 회개하고 참 하나님을 믿도록 권고하였다.
  3. 마지막으로 바울은 복음의 심장부인 부활의 메시지로 돌아왔다. 바울은 이것만으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창조의 메시지로 설교를 끝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주권적인 창조주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설교를 시작한다. 그래서 헬라인들이 구원의 메시지를 이해하게 하였다.

그들의 생각으로부터 잘못된 기초를 제거한 후에, 올바른 기초를 놓고, 그 다음 복음의 구조물을 건축하였다. 그래서 영혼이 영원하게 구원을 얻도록 만들었다.

“진실로 말하면 바울은 특별히 그 환경에서 매우 성공하였다.”

그러면 바울은 이 접근법으로 성공하였는가? 사도행전 17장 34절을 보면 단지 몇 사람만 믿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혹자는 이것을 성공적인 전도집회가 아니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지 않다. 진실로 말하면 바울은 특별한 그 환경에서 매우 성공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요즈음과 같은 환경에서 일어나야 하는 성공이다. 헬라 문화에서 바울이 설교한 후 일어난 놀라운 결과였던 것이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일어날 수 있었는가?

간증

나는 나의 자녀들과 함께 지난 10 월에 있는 당신의 세미나에 참석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한 시간이 지난 후 우리 가족을 당신에게 소개하는 시간에 당신이 4살 먹은 디모데가 나의 강연을 이해하는지를 물었습니다. 나는 모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 후 우리가 발견한 놀라운 사실을 당신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디모데는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10대의 자녀들과 내가 디모데에 질문한 것에 너무나 잘 대답하였습니다.

강연 후 2 시간 안에 디모데는 그가 가지고 있는 제목이 “D는 다이너소르(공룡)를 위한 것( D is for Dinosaur)”이라는 책을 세 사람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 중 두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믿지 않은, 어머니 같은 사람이었는데 그에게는 당신이 디모데에 준 소책자인 “다이나소르(공룡)와 성경(Dinosaur and the Bible)”을 주면서 증언하였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목회(ministry)로부터 구입한 여러 가지 다이나소르(공룡)에 관한 책을 디모데에게 읽어주면서 세미나에 참석하였습니다. 디모데는 예수님을 그의 주님으로 그의 구세주로 영접하였습니다! 나는 그가 하나님을 이해하고 진실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믿고 있습니다.

B. K.,워싱턴

제 6 장 개척적인 전도(Pioneer Evangelism) – 위대한 성공!

최근 몇 년 동안 미국과 호주에 있는 성경대학과 신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그들의 교수 몇 분이 바울이 행한 사도행전 17장의 설교에 대해서 선언한 것을 나에게 이야기 하였다. 그 교수들은 회심한 사람의 수가 너무 적었기 때문에 바울이 아덴에서 시도한 접근법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울이 너무 지식적으로 설교했다는 것이다. 그 교수들은 바울은 베드로가 사도행전 2장에서 설교한 것과 같이 담대하게 “죄와 회개”에 대한 메시지를 설교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바울이 아덴에서 행한 접근법을 채택해서는 안 되며 사도행전 2장에서 기술된 베드로의 전도양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실제로 바울은 사도행전 17장에서 행한 설교접근법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바울이 복음을 설교한 문화는 복음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는 기초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은 간과하고 있다. 전 장에서 우리가 논의한 바와 같이 이들에게는 단순히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이들이 이런 메시지를 이해하기 전에, 복음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이 제시되어야 했다.

내가 이점을 분명하게 이해하는데 수 년이 걸렸다. 이것은 내가 실제로 많은 지역을 두루 여행하면서 많은 다른 문화권에서 강연하면서 터득한 것이다. 타 문화권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배우게 된 것이다. 미국이나 호주와 같은 나라에서 자라면서 다른 나라를 여행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의 생각하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은 인도나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오는 사람들이 느낀 것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상상해 보았는가? 미국에서 호주 인으로서 경험한 바로는,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나 갓 이민 온 사람들이 각각 생각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의사소통이 잘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오해가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아프리카에 고립된 부시 사람에 관한 `흥분한 신들(The Gods Must Be Crazy)`란 제목의 코미디 영화를 본 기억이 난다. 누가 비행기에서 코카콜라병을 떨어뜨렸는데 그것이 부시 사람들이 사는 마을 주위에 떨어졌다. 그들이 이전에는 이러한 물건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사람들간에 일어나는 분쟁 때문에 그들은 이 물건이 사악한 것으로 결론 짓고 갖다 버리기로 했다. 이것은 매우 유머러스한 영화이었는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았다. 우리가 우리의 문화권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경험할 때, 그것에 올바르게 대응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내가 만난 한 선교사는 원주민과 같이 요한 계시록 3장 20절(볼찌어다 내가 문밖에서 두드리노니…….)을 읽은 후 원주민이 왜 예수님이 도둑이었는가를 알고 싶어하였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그가 나중에 발견한 것이었는데 이 사람들 문화권에서는, 만약 누군가가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면 그것은 도둑이 침입하여 물건을 훔치려는 행동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가 문에 서서 안에 있는 사람을 부르면 이것은 실제로 친구를 방문했다는 표시라는 것이다.

나는 바울이 헬라 문화에게 복음의 진리를 전달하기 위하여 수행한 거대한 일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라고 생각한다. 바울이 해야 했던 일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바울이 행한 일을 개척자가 행한 일로 비유할 수 있다.

개척자들이 미국을 가로질러 서부로 나아갔을 때 그들은 바로 텐트를 치고, 씨앗을 뿌리고, 그리고 추수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제일 처음 그들은 땅을 깨끗이 하고, 토양을 준비하고, 그 위에 씨를 뿌리고 그 다음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마태복음 13장 3-8절의 씨 뿌리는 자와 씨앗의 비유를 고려해보자.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 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마13:3-8).

우리는 이 비유로부터 여러 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그 중의 하나 중요한 사실은, 씨앗이 열매를 맺으려면 반드시 좋은 땅 위에 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복음의 씨앗을 뿌리러 헬라(그리스)에 갔을 때, 그곳은 길가나 흙이 얕은 돌 밭과 같았다. 헬라인들이 복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전에 바울은 땅을 준비해야 했다-그는 복음의 씨앗이 떨어져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올바른 기초를 구축해야 했다. 그가 성공적으로 씨앗을 뿌리기 전에 먼저 땅을 갈아 엎어야 했던 것이다(농촌에서 씨를 뿌리기 전에 반드시 쟁기로 땅을 갈아 엎어 부드러운 토양이 되도록 한다(역자 주)).

INSERT PICTURE OF PAGE 59 –SOWERS KNOW YOUR SOIL!- HERE [not in english version]

바울이 행한 일은 예비-전도(나는 “창조론 전도”라고 부른다)였다. 우리들 대부분은 전도를 씨 뿌려 수확하는 것과 비유하여 생각한다. 대개, 교회의 목사님들이 매주마다 말씀의 씨앗을 뿌리면 복음 전도자가 교회로 인도한 사람들이 목사님 말씀을 듣고 회심하면 영혼에 대한 추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유대기독교인들과 같이 땅이 씨앗을 받아드릴 준비가 되었을 때 쉽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먼저 밭을 갈아 엎어서 준비를 한 후, 씨앗을 뿌리고, 마지막 추수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현대크리스천들이 친숙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형태의 접근은 느리고 그 결과가 늦게 나타나고 힘드는 일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오래 참아야 하고, 큰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순수한 토양이 준비되기만 하면 그래서 기초가 준비되면 결과는 매우 빨리 얻어질 것이다.

예레미야 4장 3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 속에 파종하지 말라.” 라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 성경구절을 읽으면서 묵은 땅을 갈아 엎은 후에 씨를 뿌려야 수확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의 가슴을 “갈아 업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지만, 이러한 영적 전장에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영적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니(고후10:4-5)

“크리스천들은 전도할 때, 먼저 땅을 갈아 업고, 씨를 뿌린 다음, 추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철저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바울은 개척전도에 박차를 가했으며 확실한 성공을 거두었다. 처음에는 그 결과가 작게 보였지만 교회들이 세워지고 기독교 메시지가 이방인들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에서 설교한 내용의 뒷부분에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성과를 말해주고 있다,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이 있었더라.”(행17:34절).

바울의 설교를 들은 헬라인들 중 몇 사람은 자기들의 기존 관점을 완전히 바꾸어 회심한 것이었다. 회심한 사람의 숫자가 적다고 우리가 바울의 개척 전도를 비판할 수 없다. 그대신 복음이 이방인 문화에 전파되게 하기 위해서는 복음의 기초를 놓는 일에 부지런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그 일을 잘 수행하였기 대문에 우리는 바울에게 박수를 보내야 한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개척전도(pioneer evangelism, 예비전도)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은 듯하다. 설혹 그들이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은 아주 먼 정글에 있는 토인 종족을 선교할 때나 필요한 개념으로 생각한다.

이제 곧 알게 되겠지만 이 개척전도는 오늘날의 교회가 반드시 채택해야 하는 전도 방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의 씨앗을 뿌릴 토양이 전연 없어질 것이다. 이것은 서구국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초적인 문화변화에 대하여 절실하게 필요한 대응책이다. 교회가 이 변화를 놓치고 있는가? 대부분의 교회가 그렇다. 슬프게도 교회가 이러한 상황을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다음 장에서 좀더 상세히….

간증

나의 세미나 테이프를 주문한 교회의 여자 성도중의 한 사람이 오늘 아침 매우 성공적인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테이프를 듣고 그것을 AiG(Answers in Genesis) 카타로그와 함께 그녀의 딸에게 보냈으며 그 딸은 그의 이웃과 그 테이프를 공유하였습니다. 전에는 예수님은 단지 좋은 사람(이단)이라고만 알던 두 가족이 결국 그들의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A. C., 콜로라도

제 7 장 “유대인”에서 “헬라인”으로

미국, 영국, 호주, 그 외 다른 국가들은 몇 세대 전에는, 어떤 면으로 생각하면, “유대인”과 같았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그래서 전도자들이 베드로가 사도행전 2장에서 청중들에게 접근했던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성경적인 기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들에는 이제 기초적인 문화변화가 일어나서 “헬라인”들과 같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도 대체적으로, 교회가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효과적인 복음전도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2002년 3월에 발간된 기독 잡지 “카리스마(Charisma)”는 다음과 같은 주의를 끄는 인용을 게재하고 있다. 그 잡지 편집인이며, 누구보다도 많은 선교사 및 전도자들과 개인적인 교분을 갖고 있는 스테반 스트랭씨는 예수님의 복음을 전파 시키려는 노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세계 복음전도를 위한 어떤 외침도 장기적으로 보면 거의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영혼 구원에 가장 열성적인 오순절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나온 이 놀랍고도 솔직한 고백은, 대위임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거대한 양의 에너지, 시간 그리고 돈을 사용하는 크리스천들이 오늘날 당면한 복음 전도의 어려움을 대변하고 있다.

수 년 동안 나는 많은 나라를 방문하였다. 지금 나는 호주와 미국에서 살고 있으며, 영국에서도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이 세 나라에 관련해서 내가 관찰한 것을 당신과 나누기를 원한다. 그리고 내가 관찰한 것들을 전도에 적용시키기를 원한다.

호 주

  1. 내가 작은 소년이었던 1959년, 나는 호주 역사에서 한 큰 사건이 일어난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성경 수퍼 맨(The Bible Super Man)”으로 알려진 유명한 전도자가 연속적인 부흥집회를 갖기 위하여 호주로 온 것이다. 지금 호주는 크게 보아 – 지금까지는 그렇지 않았지만 – 기독교 국가가 아니다. 미국인들은 나에게, 미국은 위대한 확신을 가진 미국 헌법 기초 위원들에 의해서 시작된 나라라는 사실을, 가끔 이야기하였다. 나는 미국인들에게 호주의 헌법 기초 위원들도 “확신”은 가지고 있었지만 미국인들의 경우와는 다른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호주는 200년 전 영국으로부터 추방된 죄수들을 위한 거주지로 시작되었다.

동시에 영국문화에 스며들어있는 기독교 철학이 어느 정도는 호주문화에 혼합되었다. 그래서 성경 수퍼 맨이라고 알려져 있는 전도자가 호주를 방문했을 때 온 호주가 들끓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았다. 그의 목소리를 온 나라 전역에 전달하는데 사용할 큰 확성기를 위한 정보전달전선을 깔았다. 나는 그때 교회복도에 설치된 큰 확성기 앞에서 그 전도자가 설교하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난다. 그의 메시지의 주된 내용은 사도행전의 베드로의 설교 내용과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1. 그는 사람들에게 회개하기를 요구하였다. 수 천명이 자신의 죄를 확인하고 회개하였다. 호주의 몇몇 역사가들은 이때를 호주 전역이 신앙 부흥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시기라고 평한다. 나는 현재 호주의 기독교 지도자중 몇 분은 그 특별한 전도집회 때 회심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다음과 같은 중요한 비교점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같은 전도자가 1969년과 1979년에 다시 호주에 왔을 때, 그리고 1990년대에 위성으로 연결하여 동일한 메시지(죄와 회개에 관한)를 전했을 때에는 위와 같은 열렬한 반응을 나타내는 곳이 한곳도 없었다. 호주는 1950년대와 같이 들끓지 않았다. 물론 이때도 몇 사람은 회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진실하게 이야기 한다면 오늘날의 많은 전도집회에서는 위와 같이 수세대전에 일어난 것과 같은 많은 수의 “처음 헌신하는 자” 가 추수 되지 않는다. 무언가가 달라진 것이다. 덧붙여 말하자면 동일한 전도자가 1971년 싱가폴에 갔을 때에는 1959년 호주에서 일어난 것과 동일한 반응이 일어났다. 흥미로운 사실은 싱가폴은 학교의 교과과정에 진화론을 포함시키지 않고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호주 퀸랜드 주의 공립 학교 교장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교육부의 규율에 따라 매일 학생들이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모든 선생님들은 수업 시작 전에 그 날을 위한 성경구절을 읽어야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성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며, 아담과 하와, 노아, 예수님의 탄생, 죽음 그리고 부활등에 대해 매우 친숙해져 있었다. 물론 그들은 십계명을 잘 알고 기독교 도덕관을 이해하였다. 그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관찰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 있다: 오늘날 호주의 공립 학교에서는 그들의 하루 일과의 한 부분으로서 기도시간과 성경 읽는 시간을 포함시키지 않는다. 종교 목회자가 종교교육을 하는 시간은 허용되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교육시스템은 반-기독교적(anti-Christian)으로 되었다.

1970년대의 공립 학교시스템 테두리 안에서의 한 교사로써, 나는 기드온 협회에서 시편과 잠언 그리고 신약 성경을 수록한 성경책을 모든 학생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때 항상 감격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 무료 성경책을 받기를 거부하는 학생수가 늘어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틀림없이 무엇인가가 학생들의 성경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있었다.

캐나다 같은 나라에서는 이미 기드온 협회가 공립 학교에서 성경을 무료로 학생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호주에서도, 아직은 기드온 협회가 공립 학교에서 성경을 무료로 학생들에게 나눠 주는 것을 허용하고 있지만 몇몇 독립학교 위원회는 그것을 금지하고 있는 곳도 있다. 사정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한 사람의 호주 인으로서, 나는 항상 영국이 기독교 국가라고 생각하였다. 영국은 번얀, 스펄전, 휫필드, 웨슬레 등의 고향 나라가 아닌가? 그러나 나는 처음 영국을 여행하면서 많은 충격을 받았다. 공공생활에 남겨져 있는 기독교의 발자취를 발견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보수적인, 성경을 신봉하는 교회들은 아주 작게 되어 고전을 겪고 있었다. 내가 영국의 이곳 저곳을 여행하면서 본 것은 골동품 상점으로 변한 교회와 심지어는 회교사원으로 변한 교회였다.

“어떤 교회에서는 모이는 회중의 숫자가 너무 적어서 대성전이 아닌 휴게실 로비에서 모이게 됨을 목사님이 사죄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는 과거에는 몇 천명이 모여서 예배 드리던 큰 예배당에서 수 십명의 청중 앞에서 설교한 적이 많았다. 어떤 교회에서는 모이는 회중의 숫자가 너무 적어서 대성전이 아닌 휴게실 로비에서 모이게 됨을 목사님이 사죄하는 경우도 있었다.

2 차 세계대전 전에는 영국 국민 중 교회에 출석하는 자가 국민 전체의 40~50% 정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회에 출석하는 자는 전체 인구의 5% 밖에 되지 않는다. 영국에 있는 교회에도 무엇인가 큰 변화가 일어난 것이 틀림없다.

미 국

  1. 1980년대 초에 내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이 나라가 얼마나 “기독교” 국가처럼 보였는지 나는 놀랐다. 호주와 비교해보면 최근까지, 호주에는 기독교 라디오 방송국이 없었다. – 나는 전국토를 망라해서 모두 기독교 방송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나에게는, 미국전역에 걸쳐서 대도시나 소도시에서 많은 수의 교회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호주에서는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의 숫자가 매우 낮다(아마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숫자는 약 5%). 그 당시 나에게는 미국이 매우 기독교적인 나라로 보였다.
  2. 나는 공공장소에서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한 그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러나 수 년이 지나면서 인본주의 조직에 의한 선동을 받아 법원사건으로 비화한 후 법정 판결의 결과로 공공장소에서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한 그림이 사라지는 것을 눈 여겨 보았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3. 어떻게 미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는지를 생각하면서, 나는 공립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기도가 허용되지 않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충격을 받았다. 사실 기도, 성경 읽기 그리고 10계명(하나님의 율법)은 모두 미국 전역의 학교에서 금지되고 있다. 나는 이런 많은 변화가 1960년대에 시작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미국 헌법의 수정조항에는 학생들이 그들의 기독교 신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으나, 인본주의 그룹의 위협 때문에 대부분의 학교 당국은 이것을 고려하기조차 달가워 하지 않고 있다. 미국 대법원은 수정조항을 – 선생님에 관한 한-기독교 세계관을 다른 누구에게도 강요하면 안 된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최근에 미국 공립 학교들은 폭력, 마약, 성적인 타락 등으로 고통 당하고 있다. 학교 협의체에서 학교 교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억제하기 위하여 최신 금속탐지기, X-선 기계와 같은 것을 파는 판매대를 설치하게 의결한 것을 보면서 슬픔을 금할 수가 없다. 미국 온 지역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반적인 관찰

위에서 언급한 세 나라에서 관찰된 일반적인 사항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하도록 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많은 교회가 사람들의 마음을 끌기 위하여 비용이 많이 드는 프로그램에 의존한다. 교회와 세상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2. 전도집회나 부흥집회에 참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교회 배경을 가지고 있다. 물론 처음 회심한 사람들도 있지만, 몇 세대 전과 비교해 보면, 대부분의 경우 확실히 진지한 초기 회심자의 숫자는 매우 적다. 대체적으로 교회를 전연 다니지 않는 자들에게 접근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3. 수 세대 전에는 위에서 언급한 세나라 모두, 비록 많은 부모들은 그들 자신들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자녀들은 습관적으로(자동적으로) 일요학교나 교회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이제는 교회의 행사에 자녀를 보내지 않는 부모의 숫자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4. 이 세 나라 모두에서 불법, 자살, 낙태, 동성애, 포르노, 안락사와 많은 병적인 사회현상이 증가 추세에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한때 이 나라에 풍미했던 기독교적 구도가 무너지고 있다. 기독교적인 도덕이 쇠퇴하고 있는 것이다. 이전 세대에서는 섹스, 간음, 포르노 등과 같은 많은 이슈에 대해서 분명하게 옳고 그름의 의견을 밝혔으나, 요즈음의 많은 사람들은 이에 대한 분명한 판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예를 들면 한때는 미국에서 도덕과 인격이 대통령 선거의 매우 중요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1998년에 대중들이 백악관 내의 도덕적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은 이전의 미국 국민이 가졌던 도덕적인 시각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러면 이 나라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무엇이 이 변화를 일으키게 하였는가?

나는 이 세 나라가(다른 서구 국가들과 같이) 몇 세대 전에는 “유대 민족”과 같았다고 생각한다. 기도, 성경 읽기, 하나님의 율법들이 공 교육시스템의 한 부분이라도 차지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적 도덕을 이해하고, 기본적으로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성경의 창조주 하나님의 개념을 이해하였다. 그들은 죄의 의미를 알고 절대자를 받아들였다. 전도자가 죄와 회개의 메시지를 설교할 때, 사람들은 사도행전 2장의 청중들과 같이 그들의 마음을 찌를 수 있었다. 그들은 간음과 성적인 타락, 거짓말, 도둑질,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인 것을 알았다.

미국을 건립한 헌법 기초 위원들은 기도와 성경을 포함하는 기독교정신이 교육시스템에서 제외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한 사람은 이렇게 선언하였다.

공화국 내에서 유용한 교육의 유일한 기초는 종교적인 기반 위에 놓여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덕행이 있을 수 없고, 덕행이 없으면 자유가 있을 수 없다. 자유는 모든 공화국 정부의 목적과 생명이 아닌가? 종교가 없이는 배우는 것은 도덕과 인류의 원리에 악행을 저지르는 것과 같다고 나는 믿는다!1

현재 우리의 학교로부터 성경이 거부되는 유행을 따르는 행위는, 내가 생각하기로는 이신론자(理神論者)들로부터 기인된 것 같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을 공격하기 위하여 정교한 새로운 양식을 발견하였다. 만약 그들이 이것을 계속 추진한다면 반종교적 철학자인 볼링브로크나 볼테르가 수 천년동안 우리의 종교를 멸절 시키는데 끼치는 영향보다 더 큰 영향을 반 세기 동안에 미칠 것이다.2

성경이 학교에서 조차 읽혀지지 않으면 사람의 한 평생 동안, 때때로 읽혀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3

16세기의 종교 개혁 시대의 세계는 “어두운” 장소였다. 사람들은 공포 속에서 살았으며 미신이 판을 치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억제 되었으며 일반인들은 접할 수도 없었다. 교회 지도자들은 그들만이 하나님 말씀의 의미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하였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통하여 확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일반 사람들에게 돌려 주었으며 일반 평범한 사람들이 손에 성경을 쥘 수 있게 해 주었다. 이것은 얼마나 큰 변화이었는가? 오늘날도 우리는 아직 종교개혁의 효과를 수확하고 있다. 그러나 슬프게도 교회가 오류가 있는 사람들의 가르침과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함에 따라-또한 교육을 많이 받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그들만이 진정하게 성경을 해석 할 수 있고, 그들만이 일반 평범한 사람들에게 성경의 의미를 전달 할 수 있다고 주장함에 따라-어두운 세계에 빛을 비추인 종교개혁의 정신과는 반대되는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

루터가 16세기에 교육에 관하여 경고한 내용이 오늘날 더 적절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대학은 다만 성경에 숙달된 사람들을 생산해야 한다. 감독이나 신부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을 양성하여 세상 전선에 서게 해야 한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대학을 찾을 수 있는가? 나는 대학이 성경을 열심히 가르쳐서 젊은 대학생들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대학은 학생들을 지옥으로 이끄는 큰 문이 되지 않을까 두렵다.4

루터는 덧붙여 말하기를: 나는 성경을 최고의 선으로 가르치지 않는 대학에는 자녀들을 입학시키지 않을 것을 촉구한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공부를 쉬지 않고 추구하지 않는 모든 대학은 마침내는 부패할 것이다. 이것은 학생들이 대학에서 어떤 사람으로 양육되어서 지금은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5

성경이 즉 기독교 신앙이 한 나라의 근본적인 기초가 되었을 때는 갈아 엎어 놓은 땅이 많아서 씨앗이 뿌려지면 싹이 날 준비가 되어 있다. 지난 세대의 전도자가 그렇게 큰 수확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기독교 신앙을 기초로 한 토양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기독교 복음이 전달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동일한 기초 위에서 전도집회를 시작하였다.

이제는 점점 이런 “유대적” 문화배경은 사라지고 “헬라적” 문화 배경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대체적으로 그들은 이전에 존재한 기독교적 기초를 잃어버렸다. 지금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지식이 결여된 교육 시스템 안에서 훈련 받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세대들이 매우 많다.

대부분의 교회는 그들이 아직 “유대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이들 문화에 접근하는데 이들은 더 이상 “유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나날이 점점 “헬라화” 되어 가고 있다. 만약 교회가 이런 변화에 대해서 깨닫지 못한다면, 점점 이들의 문화에게 큰 충격(영향)을 주지 못하게 될 것이며 아직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기독교적 구조의 흔적을 모두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무엇이 이런 변화를 가져오게 했는가?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교회는 왜 이런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교회가 이런 변화를 크게 도운 면도 있다. 왜냐하면 교회 자체가 상당히 “헬라화” 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날 서구문화가 당면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이다. 서구에서 기독교 신앙이 무너지고 있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간증

불신자로서 나는 주일 학교에서 하나님이 하나님 스스로 창조한 것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에 관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공립 학교에서 진화론적인 이론이 사실로 가르쳐지는 것을 듣고 ‘그럴 수가 없어! 어떻게 생물이 그렇게 변화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생각한 것이 기억 납니다. 나는 그 당시는 불신자였으나 그것에 상관없이 진화론에 대해서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내가 공립 학교를 계속 다니는 동안 나는 물론, 체계적으로, 지속적으로 진화론적인 개념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진화론에 대항하기보다는 결국 “항복하고” 진화론을 성경 말씀과 조화시키기로 했습니다. 가장 슬펐던 것은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서 내가 묻는 질문에 대해서 성경에 기초를 둔 대답을 해 주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20년이 흐른 지금의 상황은 그 당시보다 매우 나빠졌을 것으로 생각되어 크게 염려됩니다.

나는 당신의 단체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와 신뢰성을 세우는 일을 하는 것에 감사 드리며 용기를 얻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 나의 두 딸을 자택학습(home school) 시키면서 당신의 단체가 발간하는 잡지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세계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는 다른 책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나는 또한 당신의 책들을 나의 남편 형제들과 그의 가족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들 모두 진화론적인 사고 안에서 “성장하고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들 가족들을 하나님 말씀의 진리 안으로 들어오게 하시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M. G., 콜로라도

제 8 장 진화론과의 연관

내가 호주의 공립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나는 내가 거듭난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인식한 것은 몇몇 학생들이 성경을 믿는 나를 비웃는다는 사실이었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진화론의 가르침이 성경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확신 시켰기 때문이었다.

내가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그리고 내가 강연을 하러 세계를 다니는 동안 성경을 믿을 수 없다는 이유로 진화론을 들고 나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실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큰 걸림돌 중의 하나–만약 가장 큰 걸림돌이 아니라면–가 진화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진화론이 과학적인 사실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고 난 후 주님이 그들의 마음을 주님의 말씀의 진리를 향하여 열어 주셨다는 간증 편지를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아서 가지고 있다(14장의 간증 문 참조).

제 1 장에서 내가 자세하게 논의한, 1975년에 학생들과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는 호주 목사에 관한 환경은 오늘날의 교회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주요한 문제이다.

대부분의 기독교 지도자를 포함한 많은 크리스천들은 진화론이 우리 문화의 사회적인 병폐에 미치는 영향과 일반 사람들이 기독교 신앙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는데 얼마나 깊게 연관이 되어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진화론이 이러한 사회적인 이슈와 기독교 신앙에 관한 이슈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오해의 주된 원인은 많은 크리스천들은 진화론이 “사실에 입각한 과학”이라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는 교사로서 실제적인 과학을 가르친다. 나는 학생들에게 컴퓨터와 화학반응, 그리고 사람을 달에 옮겨 놓는 기술 등에 대해서 가르친다. 그러나 나는 역시 학생들에게 사람들이 기원-과거-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에는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과학영역 밖으로 나온다는 것을 지적한다. 진화론은 과거에 대한 믿음이다.( 이 이슈에 대한 추천도서가 많이 출간되어 있다1)

대부분의 진화론 과학자들, 매스컴, 오늘날의 대부분의 공립 학교 교과서는(아마 공공연하게는 아니지만 매우 교활하게) 무신론적 진화론을 “사실”인 양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은 우주와 모든 생명이 엄밀하게 말해서 물질적 원인에서 발생되었다고 배운다. 하나님에게는 “어떤 것의 기원”에 대하여 아무런 역할도 주어지지 않는다. 수 년간 진화론의 가르침이 우리들의 학교시스템과 매스컴을 통하여 매우 강조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자들이 지구의 나이가 수 십억년이 되었다는 것과 다른 형태의 생명이 죽음과 투쟁의 진화론적인 과정을 통하여 발생된다는 것이 사실로 증명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예를 들면 널리 읽히고 있는 박물학(Natural History)이라는 잡지의 1993년 판에는 이런 글이 실려있다: 진화론이 증명되지 않은 이론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이것은 터무니 없는 생각(nonsense)이다. 진화론은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들이 만든 병에 대한 “이론”이나 물질에 대한 원자 “이론”과 같은 동급의 신뢰성을 갖고 있다. 그렇다. 아직도 특수한 변화를 일으키는 특수한 진화론적 기구에 대해서는 활발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진화론적인 변화의 실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우리들 자신의 몸이 걸어 다니는 증거를 제공한다.2

하버드 대학의 유전학자 리쳐드 레온틴은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이 실제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사강의 저서 “셀 수도 없이 많은 악마들(Billions and Billions Demons)”의 서평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우리들은 과학 구조의 불합리성에도 불구하고 과학 편을 택한다. 비록 과학이 건강이나 생명에 대해서 터무니 없는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학공동체에서 떠도는 실체가 없는 그럴 듯한 이야기에 상당한 공차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과학 편을 택한다. 그 이유는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우선적인 태도, 즉 물질주의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 때문이다.

과학의 방법론이나 제도가 우리에게 현상 세계에 대한 물질적인 설명을 수용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고 그와는 반대로, 초보자에게는 매우 당황스럽겠지만, 우리가 물질적인 원인에 선험적으로 집착(adherence)되어 있기 때문에, 물질적인 설명을 생산하는 조사 기구와 개념 군(群)을 창조하는 것을 강요 당하고 있다. 더구나 우리는 신적인 발자국이 우리의 문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물질주의는 절대적이다.3

그리고 1998년에는 명성이 높은 국립 과학 학술원에서 공립 학교와 대학의 교수들이 진화론을 학생들에 잘 가르치도록 도와주는 책을 발간하였다. 공립 교육 시스템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이 책을 보면 학술원이 원하고 있는 공립 학교 학생들의 교과내용을 알 수 있다.

진화론의 이론은 지구상의 생명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설명한다. 과학적인 용어인 “이론”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낱말인 “추측”이나 “예감”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학적인 이론은 실험적인 관찰과 가설로부터, 논리적으로 만들어진 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설명이다. 생물학적인 진화는 살아있는 세계에 대한 거대한 범위의 관찰에 대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탁월한 과학적 해석이다. 과학자들은 관찰을 묘사하기 위해서 “사실”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또한 너무 자주 관찰되고, 실험되어져서 계속 실험하거나 표본을 찾아야 할 강력한 이유가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사실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진화가 발생한 것은 사실이다.4

지금 이것의 연관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학생들의 세대가 생명의 기원을 단지 물질적인 원인으로 받아드리도록 교육되어지면 질수록–그리고 그들의 사고과정에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면 될수록–그들은 더욱 더 절대적인 진리를 부정하게 되고 그들은 상대적인 진리를 믿도록 유도된다. 결국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가?

자, 그럼 여기서 인본주의자들의 견해를 고려해보자: 진화론적인 이론 주위에 지속적으로 축적되는 증거가 너무나 훌륭한 설득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근본주의 기독교 용사들도 최후에는 그들의 무기를 내려놓고 조건 없이 항복할 날이 올 것이다. 나는 그 날이 기독교의 끝 날이 될 것이라 믿는다.5

진화론적인 개념이 문화에 스며들면 들수록 사람들의 총체적인 생각의 방향이 더 많이 변화될 것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결정한데로 옳고 그름을 구분하여 그들이 벌을 받지 않게 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단지 동물에 불과하다면, 누구도 그들을 소유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 몸은 그들 자신의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왜 섹스에 대해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겠는가? 또한 인생이 이 세상의 삶으로 끝이 나고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면. 모든 일이 점점 어려워질 때 왜 자살하여 이것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겠는가?–결국 그들이 자기의 인생을 가졌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인생이 무엇이 그리 중요할 것인가? 그리고 만약 우리가 동물을 죽여서 잉여 동물을 제거한다면, 낙태로 잉여 어린이를 없애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그러면 이제 나를 오해하지 마시라. 사람들은 어리석지 않다. 그들은 다만 전제 조건과 일치(부합)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다. 히틀러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의 생각이 뒤틀려 있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가 천재였다고 말하는 사람조차 있다. 그는 그가 믿는 기원에 대한 것을 일관성 있게 적용하였다. 이것은 그가 수백만의 사람을 죽이도록 유도하였다. 오늘날 낙태 주의자들은 지적으로 열등하지 않다. 그들은 다만 그들의 생각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전제 조건에 부합되게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최근 한 유명한 기독교 지도자가 미국에서 일어나는 학원 폭력 문제에 대해서 논의한 논문을 읽었다. 최근에 학생들이 교사, 동료 학생, 심지어는 자기 부모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위 논문의 저자는 “어린이 학대”를 이러한 살인 사건의 주요한 원인으로 부각시켰다. 나는 이 문제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을 인정하며, 어린이 학대가 여러 가지 문제의 발단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문제의 총체적인 원인은 이것보다 매우 깊은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사회적인 악들이 진화론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나를 오해한다. 내가 말하는 의미는 진화론이 낙태와 학교 폭력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권위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않을수록, 문화는 진화론적인 철학을 더 많이 수용하게 되고, 그에 대응해서 사람들의 생각이나 태도 역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학생들이 자기 자신에게 “이제 나는 단지 동물에 불과하다–나는 진화론이 진리인 것을 안다–그래서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없다–그래서 내가 나의 선생님을 총으로 쏘는 것을 막을 것이 없다.”라고 말 한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로는 각 세대를 통하여 사람들의 생각이 서서히 변화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사람들이 더 이상 기독교적 구조 안에서 생각하지 않도록 변화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전제 조건이 다르게 바뀐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의 문제를 다른 철학으로 접근하며, 따라서 그들의 행동이 낙태, 학교 폭력, 어린이 학대 ,성적인 타락 등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지금 여기서 어린이 학대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어린이 학대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며 이들에게 존재하는 전제 조건을 가속시켜서 자연스러운 결론에 도달되게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내부적으로 분노하게 만든다. 이러한 “장신적인 고통”을 빌미로 젊은이들의 나쁜 행동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진화론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동일한 죄를 지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기독교적인 기준을 포기하면 할수록 이러한 사회악은 더욱 더 만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절대 권위가 갖고 있는 억제하는 효과가 분산되기 시작한다.

아래의 그림은 내가 본 오늘날 서구 국가내의 중요한 문제들을 가장 잘 요약하여 나타낸 것이다.

이 그림을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보기로 하자. 그림 오른쪽에 (죄, 결혼, 구원 등의 교리를 나타내고 있는) 기독교 성곽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라는 주장 위에 세워져 있다. 이 성곽 밑에는 “창조”라는 단어가 있다. 신학의 모든 성경적인 교리는 궁극적으로 창세기 1장-11장의 창조 사건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6 마태복음 19장 4-6절에서 예수님께서 결혼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예수님은 창세기 1장 27절과 2장 24절을 인용하시면서 일생 동안 한 여자를 위해 한 남자로서 지켜야 할 결혼 교리를 설명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느냐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마19:4-6).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창세기를 실재적인 역사로 믿으셨음을 알 수 있다. 나는 당신이 이것에 대해서 조금 더 생각해보기를 원한다. 만약 창세기가 한낱 비유라면 혹은 신화라면 결혼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정의할 수 있다. 하나님이 남자를 흙으로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의 갈비뼈에서 만들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 변호(방어,(defended)) 될 수 있는 유일한 이유이다. 예수님과 바울(에베소서 5장)은 남녀 한 쌍이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룬다고 하였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찌니(엡5:31).

이 하나됨은 하와가 아담의 옆구리에서 창조되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다. 슬프게도 하나님이 생명을 형성하시고 사람을 만드실 때 진화론적인 과정을 사용하셨다고 믿고 있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있다. 그러나 진화론적인 이야기에서는 남자는 “원숭이 남자(ape-man)”의 자손이고 여자는 “원숭이 여자(ape-woman)”의 자손이라고 한다. 만약 어떤 크리스천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이 이 진화된 남자와 여자를 위해서 영혼을 창조하셨다고 믿는다면, 결혼의 교리는 파괴된다. 문자적인 창세기만이 여자가 남자로부터 창조되었다고 가르치며, 이것이 오직 “결혼의 하나됨”의 기초가 된다. 제 2 장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사람, 뱀, 나무, 그리고 열매들을 포함하는 아담의 범죄 사실이 성경에 문자적으로 기록된 대로가 아니라면,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죄를 정의할 수 있다. 나의 저서인 “거짓말: 진화론(The Lie: Evolution)7”은 이 이슈들을, 모든 기독교 교리들과 함께, 다루고 있다. 창세기가 문자로 기록된 대로를 역사로 수용되지 않으면 어떠한 기독교 교리도 설 기초가 없어진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성곽 그림의 왼쪽을 보면 인본주의 성과 낙태, 동성애 습성, 등과 같은 사회적인 이슈들이 “사람의 생각이 결정한 진리”의 기초 위에 건축되어 있다. 이 성곽 밑에는 “진화론(evolution)”이라는 단어가 있다. 나는 여기서 진화론이 의미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정의할 필요를 느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화론이라고 하면 다윈이 대중화시킨 “분자에서 사람까지(molecules-to-man)”를 생각한다. 이것은 분명히 진화론의 한 부분이지만 나는 본질적으로 진화론은 이것 보다도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 이것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인생에 관한 철학을 가르치는 것이다: “인류는 하나님과 무관하게, 계시와 무관하게 진리를 결정한다.” 결국 사람의 생각이 진리를 결정한다는 말이다.

물론 인본주의는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종교이다. 우리들이 믿을만한 초자연적인 존재는 없다. 그래서 사람은 스스로 진리를 결정할 수 있다. 사람은 진화하여 더 고위의 동물이 되었다고 하는 진화론적인 가르침이 인본주의 종교의 기초이기 때문에 이것은 “인본주의자 선언(Humanist Manifesto)”의 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종교적인 인본주의자들은 우주가 저절로 생겨났으며 창조되지 않았다고 간주한다… 인본주의는 사람이 자연의 한 부분이고, 사람은 지속적인 진화 과정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 믿는다. 인본주의는 사람의 종교적인 문화와 문명은, 고고학이나 역사학에 의해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과 같이, 사람이 자연적인 환경과 사회적인 세습 유산과 상호 작용을 하여 점차적으로 개발된 결과로 본다8.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며, 신성으로부터 시작하지 않고, 자연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연은 진실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넓고 더 깊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새로운 발견도 자연에 대한 우리들의 지식을 더 확대할 뿐이다.9

논리적으로, 사람은 특수한 존재가 아니고 단지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더 깊게 믿으면 믿을수록 본능이나 충동에 의해서 이끌리게 되어 더욱더 자기 스스로 진리를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하나님의 존재(절대적인 존재)를 부인하면 할수록 더욱더 시종 일관 그 자신이 옳고 그름을 스스로 결정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결국 육신의 욕망에 굴복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왜 두 남자가 서로 결혼을 하면 안 되는가?–혹은 왜 도대체 결혼을 해서 걱정 거리를 만드는가?”라고 말하게 된다.

이 두 성곽 사이에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인본주의 세계관과 기독교적 세계관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기초적인 준위(level)에서 보면, 이것은 진리를 자신이 결정하는 사람과 궁극적인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믿는 사람 사이의 전투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말 하는 창조론과 사람의 생각이 진리를 결정한다는 진화론 사이의 싸움이다.

이 전쟁이 그림에서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지 자세하게 살펴보라. 이 그림을 보면 인본주의자들이 매우 현명하게 보인다. 그들의 대포의 과녁으로 삼는 것은 기독교의 기초이다. 그들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공격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의 서구 문화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훼손시키는 일에 매우 성공적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그들은 성경의 기초 책인 창세기를 직접 공격하였다.

교육시스템, 매스컴, 영화를 통해서 현대 문화의 모든 방면에 진화론적 사상이 크게 스며들어 있다. 창조론 대 진화론의 전투는 부가적인 이슈가 아니다. 이 이슈는 진실로 전투의 최전선에 있는 중대한 이슈이다.

지금 여기서 인본주의자가 이 전투에 대해서 기술한 것을 살펴보자: 나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전투가 공립 학교 교실의, 신학자들이 신성이라고 부르는 것이 모든 인간 내면에 있다는 사상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새로운 인본주의적인 믿음을 갖는 개종자로서의 역할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교사들에게 맡겨져 있으며 이 전투에서 꼭 승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교사들은 어떤 주제에 대하여, 어떤 교육적인 레벨 – 학교 가기 전 데이 캐어(day care)나 혹은 큰 주립대학 – 에서 가르치든지 인간의 가치를 전달하는데, 목회 강단 대신에 교실을 이용하는, 다른 종류의 목회자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맹렬한 근본주의의 설교자처럼 사심 없는 헌신을 구체화하여야 한다. 교실은 낡은 것과 새로운 것 사이의 갈등 – 기독교의 썩은 송장과 그 주위의 마귀와 고통과 인본주의의 새로운 믿음 사이의 싸움 – 의 장소가 될 것이 틀림없다.10

대부분의 기독교 국가는 이 기초적인 수준의 공격에 굴복하였다. 대부분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어느 정도의 진화론적 가르침을 성경에 첨가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그들은 이것이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몇 십억년 되었다는 것을 수용하고 있다.11 그러나 성경에 기술된 말씀은 분명히 하나님이 문자적인 6일 동안에 우주를 창조하신 것으로 나타나있다.12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것을 인정하면서도 과학자들이 지구의 나이가 수 십억년 되는 것을 증명하였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들은 “날들=the days”이라는 단어의 뜻이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들은 성경의 권위가 훼손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만약 성경의 말씀이 6일을 의미하는데, 소위 말하는 과학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이것은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것 아닌가? 만약 우리가 창세기의 말씀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성경의 “어디”에서부터 믿기 시작해야 한단 말인가? 또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인본주의자들은 기독교 지도자들과 이러한 화해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들면, 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교사인 친구가 공립 학교 교사를 위한 “진화론 가르치기(Teaching Evolution)”라는 세미나에 참석하였다. 이 세미나는 공립 학교에서 진화론을 좀더 효율적으로 가르치기 위하여 교사들에게 도움을 주도록 계획된 것이었다. 이 세미나의 논의 시간에 크리스천인 학생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나왔다. 미국 내에서 인본주의를 대변하는 지도급인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나의 친구가 보내 준 편지를 요약한 것임):

교사들은 성경을 믿는 학생들을 성직자들과 상의하도록 권유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성직자들은 대개 진화론을 믿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확신을 학생들에게 주기 때문이다.13

이것은 교회에 대한 얼마나 슬픈 고발장인가!! 인본주의자들은 타협하는 기독교 지도자들을 사용하여 기독교의 기초를 더욱 훼손하게 한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믿는다: 교회의 구세대들이 진화론의 가르침이나 인류의 역사가 수 백 만년이라는 것을 성경의 가르침에 첨가되는 것을 허용하였다. 그들은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런 “허용”의 진정한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이 사람들 대부분은 성경이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사실을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단지 성경의 가르침에 진화론적인 주장 (예를 들면 수 백만년의 역사)을 첨가하였다. 그런데 다음 세대가 자라면서 이들은 이미 창세기를 믿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내가 확신하건대, 크리스천들이 성경의 많은 다른 분야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회의(skeptical)를 불러 일으키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절대적”이라는 의식을 잊어 버렸다.

젊은 세대에게 일어난 사건의 한 예로서, 잘 알려진 기독교 대학의 한 학생이 쓴 고백을 보자: 우리는 성경만을 읽어서 그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 그대신 우리의 이성적인 생각과 탐구력을 성경 공부에 적용시킬 필요가 있다…. 진리를 찾는 한 방법은 성경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성경 본문이 하나님의 불변하는 진리를 고대 문명을 통해서 나타내기를 의도한 것처럼, 성경은 그것이 읽히어지기로 예정된 대로 읽히어지는 것이 좋다. 성경은 우리 문화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어서 신격화하기보다는 적절한 문맥 속에서 성경을 읽어서 내용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14

나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첨언하고 싶다.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진화론을 그대로는 받아 들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지구의 나이가 수 십억년이라는 것과 화석 층이 형성되는데 수 백 만년이 소요 되었다는 주장을 사실로 수용한다. 이러고도 이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을 창조론자라고 부른다. 그들은 우연한 랜덤과정(확률과정)에 의해서 생명이 탄생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는 측면에서는 진화론자가 아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진화론적 과정을 사용한 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아담 이전의 수 백 만년 동안, 죽음, 질병, 고난이 있었다는 주장을 수용한다.

지금 크리스천이 화석의 기록은 “수 백 만년 동안에 일어난 죽음, 살인, 질병, 고통, 그리고 폭력의 역사를 하나님이 “창조” 하신 그대로 나타내고 있다.”라고 믿는다면, 그러면 죄는 세상에 대해서 무엇을 했는가? 저주는 무엇을 했는가? 죽음이 죄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왜 하나님은 이것을 보시기에 매우 좋다고 하셨는가? 이것은 폭력과 질병이 하나님의 눈에는 “좋게 보였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죄와 하나님의 신성에 대해서 아무런 분별력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이상한가? 나는 이런 중요한 사실들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한 몇 개의 논설을 발표하였다.15

여기서 성곽 그림을 다시 보면서 크리스천들이 전투에서 평소에 어떻게 싸우는지를 주목해 보라. 크리스천들은 그들의 기초가 뿌리(밑)로부터 총격을 받고 있다는 것을 실재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 그들은 사회적인 악을 보고 있으며, 낙태, 포르노, 동성애, 그리고 다른 모든 사악한 것들이 증가하는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 변화가 근본적인 것으로부터 시작 되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를 향해 총부리를 겨누기도 하고, 허공을 향해 총을 쏘기도 하며, 자기자신의 기초에 총을 쏘기도 하고(이것은 그들이 진화론이나 지구의 역사가 몇 백 만년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혹은 단지 드러난 이슈에 대해서만 공격을 한다.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계(Christendom)에서 제일 큰 문제중의 하나이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이슈가 근본 문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단지 드러난 이슈에 대한 싸움을 벌이는데 집중하고 있다. 이 이슈들은 실재적인 문제에서 나온 단순한 증상에 불과하다.

나는 이 증상이 1998년 미국의 선거 결과에서 확증 되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크리스천들은 대통령이 도덕적인 실수를 인정했기 때문에 이런 대통령에 대한 진정한 반발이 일어날 것을 예상 했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가 전체적으로 주민들이 도덕성을 하나의 이슈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나타나자 크리스천들은 당황하고 낙심하였다.

사실, 만약 우리가 진실로 정직하다면, 교회가 미국을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기독교의 도덕적인 구조는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날이 더 나빠지고 있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아직도 낙태, 동성애, 포르노, 가정의 파괴와 같은 이슈들과 싸우고 있는 주요한 기독교 단체에 수 십억 달러가 기부 되고있다. 이렇게 많은 자금과 에너지를 기독교적 도덕성을 위해 쓰고 있는데 왜 크리스천들은 이 전투에서 지고 있는가?

나는 그 주된 원인을 지금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실재적인 특성을 이 단체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세기를 시작으로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라고 선포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전투에 지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기독교 지도자들과 크리스천들이 문화를 처음 접할 때 일반적으로 그 문화에 대한 판단을 하게 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크리스천들이 사회적인 병폐(낙태, 등)가 옳지 않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나타나며 이러한 주장은 옳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진리로 여길 때만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우리들의 문제이다: 이제 전반적으로 문화가 더 이상 성경을 절대적인 진리로 보지않게 되었다. 그리고 슬프게도, 대부분의 교회도, 사람의 믿음(예를 들면 수 백 만년 설, 등)을 성경구절을 심판하는데 사용하였기 때문에, 성경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지않는다. 교회와 교회 단체가 이러한 사실을 인식할 때 까지는, 크리스천들이 수 십억원을 사회병폐와 싸우는데 사용하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국민들은 실제로 더욱 반 기독교적(anti-Christian)으로 될 것으로 나는 예측한다.

많은 크리스천들과 기독교적 도덕성을 가지고 있는 비-기독교인(non-Christian)들은 점점 실망하고 있다. 다소의 사람들은 진정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폭력에 의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슈에 대하여 싸우거나 목력에 편승하는 것으로 사회의 세속화 물결을 저지할 수 없다. 이에 대한 해답은 매우 기본적이며 16세기의 마틴 루터도 같은 대답을 하였다. 루터가 이신칭의(以信稱義;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음)의 이슈를 가지고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항 했을 때 다소의 루터 추종자들은 이 이슈를 해결하기 위하여 폭력에 편승하기를 원했다. 루터의 반응은 어떠하였는가? “개신교의 역사(the history of Protestantism)”에 대한 책에서 발췌한 다음 내용을 읽어보자:

후텐의 울리히는… 자기 자신을 종교개혁의 투사로 내어놓았다. 그러나 그가 택한 전쟁 형태는 루터의 방식과는 달랐다. 울리히는 칼을 가지고 로마 교황청에 대항하였다; 루터는 진리의 칼로써 로마를 정복하려고 노력하였다.

울리히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는 마귀의 광폭성을 칼과 활 그리고 투창과 폭탄으로 분쇄 시켜야 한다.” 한편 루터는 울리히의 제안으로부터 한 발자국 물러서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나는 복음을 수호하기 위하여 무기나 유혈 혁명에 의지하지 않겠다.” “교회가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은 말씀이며, 말씀에 의해 다시 세워질 것이다.”16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벌써, 말씀이 타협되고 있으며, 그래서 교회는 승리를 가져 다 줄 무기를 잃어버렸다.

어떤 일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는가? 우리들 문화 내에 기본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대부분의 교회가 진화론적 가르침의 일부 혹은 전부와 타협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간과되고 있다. 이들 진화론적 가르침과 인류의 역사가 수 백 만년이라는 것을 거부하는 크리스천들 조차 다음 그림에서 나타나 있는 것과 같은 창세기와 기독교와의 연결 혹은 진화론과 인본주의 사회악과의 근본적인 연결고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창조론)으로부터 사람의 생각(진화론)으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현상을 나는 “유대인”과 같은 상태에서 “헬라인”과 같은 상태로 변화된 것으로 이해한다.

이것을 당신에게 좀더 실질적으로 예시해 보이겠다. 앞에서 나온 성곽 그림의 오른쪽을 다시 보라. 성경이 미국 문화의 진정한 기반이었을 수 세대 전에는, 누가 죄에 대하여 설교를 하면, 듣는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였다. 그 당시 그들은 올바른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기독교적 기초가 변화되었기 때문에(왼쪽 성곽 그림의 기초를 보라 – 사람의 생각/ 진화론), 누가 죄에 대한 설교를 하면, 사람들은 그것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오늘날의 사람들은 그들과 다른 기초를 가진 지난 세대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다른 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미국이 성곽 그림의 오른쪽과 같은 기초(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다 – 창조론) 위에 있을 때에는, “낙태는 나쁜 것이다”라고 누가 말하면 그것을 들은 사람은 곧 바로 “예, 당신 말씀이 맞습니다. 낙태는 죄입니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문화가 그 기반을 “사람의 생각이 진리를 결정한다(진화론)”라고 변화시켰기 때문에 똑같이 “낙태는 죄입니다”라는 메시지가 설교 말씀으로 주어지더라도, 그 대답은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겁니까? 나는 나의 몸에 대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할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한낱 동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나에게 무엇을 하라고 이야기할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지금 당신에게 대부분의 교회 상황에서 이 전투를 적용시키는 방안을 예로 들어 보겠다. 대부분의 주일학교나 기독교 학교(혹은 이와 동등한 학교)의 교제는 성경 이야기를 가르치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 성경 이야기는 중요하다. 나의 부모님도 그것을 나에게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현상이 오늘날 일어나고 있다: 교회에서 우리들은 성경 이야기를 가르친다 – 요나와 상어 –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 5천명을 먹인 사건 – 노아의 방주 – 등 등. 그리고 이 어린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간다. 대부분이 공립 학교로 진학한다. 세속적인 텔레비전을 보고 세속적인 신문과 잡지, 그리고 인터넷을 읽는다.

그런데 세상은 그들에게 무엇이라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당신은 성경을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과학이 성경은 틀렸다고 증명한 것처럼 말한다. 어쨌든 노아는 방주에 모든 동물을 다 태울 수 없었다 – 그것은 단지 동화에 불과하다라고 말한다. 공룡은 진화론이 진실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인간은 “원숭이 사람(ape-men)”으로부터 진화되었다 –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동화에 지나지 않는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증거는 없다. “가인이 어디서 그의 아내를 취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대답할 수 없다.

그러면 교회는 이러한 세상의 질문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들은 이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계속 성경 이야기를 가르치기만 한다.

창조론 속에 진화론적인 전제 조건을 받아 들이는 교회가 단지 자유주의적인 교회 뿐만이 아니다. 1961년에 남 침례교 주일학교 위원회에 의해서 출간된 랄프 H. 엘리옷의 “창세기의 메시지(The Message of Genesis)”를 살펴보면 이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알란 리챠드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창세기의 이야기 – 창조, 타락, 노아의 홍수, 바벨탑 – 를 예수님의 비유 이야기와 같이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것은 문자적으로 진리인 것처럼 취급되어서는 안될 매우 상징적인 (비록 우화적은 아니지만) 이야기이다.”

19세기 이래로, 기독교 지도자들은 무신론적 자연주의 지지자들을 포용하고, 오늘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손에 손을 잡고 동행하고 있다.

수 년 동안, 인본주의자들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문화권의 생각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들이 기독교의 기본을 침식하고 있을 동안 교회는 성경 비평가들의 공격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성경 이야기만 가르치고 있었다.

교회는 각 세대들이 이 성경 이야기를 계속해서 믿을 것이라고 예상 했지만, 다음 세대들이 성경의 역사성 특히 전체 성경의 기초가 되는 창세기의 내용을 공격하는 진화론적 가르침의 주사(약)를 맞았다.

그래서 지금은 전반적으로 문화가 “유대화(Jews)”에서 “헬라화(Greeks)”로 전환 되었을 뿐만 아니라 “헬라적”으로 생각하도록 훈련 받은 세대들도 교회 내에 있다. 그들은 성경 이야기를 믿을지는 모르지만 왜 그들이 그렇게 믿어야 하는지를 이해 못한다. 그들은 붕괴하는 기독교 문화에 대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 그들은 이슈를 본다, 그러나 그들의 사고(생각)로부터 성경적인 기초를 옮겨 버렸기 때문에 기본적인 문제는 보지 못한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에게는 성경은 실재 세계와 분리되어 있다 – 성경과 실재 세계가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우리가 사고하는 모든 것의 기본이 성경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 사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은 세속적인 것이다. 그래서 공룡과 같은 주제에 직면하게 될 때는, 대부분 어깨만 으쓱하고 만다. (이것은 이 이슈에 대하여서 별다른 의견이 없다는 제스츄어이다(역자 주)). 그들은 무엇을 말해야 할 지 모른다. 그들은 성경이 역사책이며, 또한 성경은 동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 그들이 무엇을 먹었는가? – 죽음이 어떻게 세상에 들어왔는가? – 공룡과 같이 큰 동물이 어떻게 노아의 방주에 들어갈 수 있었는가? – 등 등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교육 받은 일이 없다. 나의 저서 – “공룡에 관한 신비 풀리다(The Great Dinosaur Mystery Solved)”에는 기독교 세계관이 어떻게 개발되고 실재 세계에 적용되는지 상세하게 논의 되어 있다.17

세계는 기독교를 기초적인 선상(레벨)에서 공격하고 있는데 교회는 대부분의 시간을 성경 이야기를 가르치는 것에만 소비하고 있다. 크리스천들은 성경의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도록 훈련되어야 하며 또한 성경의 내용을 방어하는 방법도 배워야 한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방어하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훈련 되어지기를 요구하고 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3:15).

교회는 진화론적인 인본주의의 맹공격에 대해서 성도들이 성경을 방어할 수 있도록 성도를 훈련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들은 도로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다. 만약 회의론자가 오늘날의 일반 크리스천에게 다가와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고 하자: 성경은 어디서 왔는가? 당신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노아는 어떻게 모든 동물을 그의 방주에 실을 수 있었는가? 성경은 공룡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우리가 아담과 하와의 시대로 돌아간다면, 가인은 어디서 그의 아내를 취하였는가? 나는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이러한 질문과 다른 많은 기본적인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이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을 겁주기 위하여 인본주의자들이 크리스천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매우 진화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무시하고 사람들에게 단지 예수만 믿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방어할 수 있음을 그들에게 명확히 보여 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들 질문에 답변을 해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질문에 대답을 하면서, 성경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실재적인 문을 열 수 있고, 나아가서는 구원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나의 동생이 신학교에 다니고 있을 때 학교 시스템에서 사역하는 크리스천이 와서 공립 학교에서 학생들을 전도하는 문제에 대한 강연하였다. 그가 강연하면서 그가 학생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가인은 어디서 그의 아내를 취하였는가?”와 “진화론에 관한 것”. 그리고 그는 웃으면서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은 사람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시해 버리라고 말했다.

이것은 옳지 않다. 틀렸다. 그 질문은 사람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두 가지가 가장 빈번하게 질문 되어지는 이유는 이것이 현실적으로 기본적인 문제임을 예증하기 때문이다. 학교 학생들은 정말 도전하는 크리스천들이다: “대답을 내어놓아 보시지 그래 – 우리는 당신이 대답 못할 줄 알고 있다. 왜 당신이 대답 못하면서 왜 우리들에게는 성경을 믿으라 하는가? 우리는 진화론이 진실이라고 알고 있다 – 과학은 성경이 틀렸다고 증명하였다. 당신은 아담과 하와를 믿는다 하면서 가인의 아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대답을 못하니 우리가 어떻게 기독교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일들은 우리를 어디에 머무르게 하는가? 해법이 무엇인가? 우리에게 맞는 안경을 쓸 준비가 되어 있을 때에만 해법이 있다.

간증

지난해, 당신이 루이빌에서 왔을 때 나는 그 세미나에 참석하였습니다. 당신의 사역은 나의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나는 알콜 중독자의 집에 태어나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공립 학교에서는 진화론을 배웠습니다. 나는 가끔 “나는 원숭이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창조론은 창조주가 계시다는 것을 내 가슴속에 새겨 주었습니다.

나는 결혼 후에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크리스천이 된 후에도 목사님이 “하루가 천년 같다”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성경을 진화론의 박스 속에 맞추려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이것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나는 주님이 나를 당신의 사역으로 인도하신 것을 기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을 배웠습니다. 루이빌에 오셔서 이런 귀한 나눔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T. L., 켄터키

제 9 장 아름다움과 저주

잘 알려진 찬송가 “만물이 빛나고 아름다워라(All things Bright and Beautiful)”는 교회에서 널리 불리어진다. 이것은 훌륭한 찬송이지만, 또한 나는 이 찬송을 즐겨 부르고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세상을 올바르지 않게 묘사하고 있다.

만약 당신이 나와 같이 호주 북쪽 깊은 열대성 다우림(多雨林)에 간다면 우리는 거기서 치명적인 가시를 가진 나무를 볼 수 있다. 만약 이 나무의 잎사귀에 당신의 피부가 스치게 되면 몇 년 동안 피부가 잎사귀의 가시에 찔린 것 때문에 고생할 것이다. 지금 당신이 이 가시에 찔린 후 고통을 참지 못하여 가까운 바닷물에 팔을 씻어 심한 고통을 줄여 보려고 언덕을 달려 내려갔다고 하자. 그리고는 바닷물에 팔을 담그자 마자 호주의 바다에 사는 쏘는 동물에게 쏘였다 (당신은 몇 분내에 죽을 수도 있다). 가까스로 해안으로 기어 나오면서 가까이에 있는 민물 도랑으로 굴러 떨어졌다. 거기에는 악어가 큰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때 당신이 “만물이 빛나고 아름다워라(All Things Bright And Beautiful)” 이라는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한다는 것은 넌센스가 아닌가?

실재 세상은 모든 것이 그렇게 아름답지만 않다, 정말 실재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운가? 가끔 나는 그 찬송에 다음과 같은 여분의 가사를 첨가하고 싶은 생각을 한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되고 변화 되었다 –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저주하셨다.”

크리스천이 세상을 바라볼 때, 그들은 죄악 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든 세상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드셨지만 죄 때문에 저주 받은 곳이다. 헛된 것에 내 맡겨진 고통 하는 세상이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롬8:22).

위의 관찰은 오늘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전 장에서 논의한 것과 같은 세계관의 근본적인 변화때문에, 진정한 기독교 신앙을 비-기독교인(non-Christian)들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다음 그림을 보고 생각해 보자: 당신이 크리스천으로서 비-기독교인(non-Christian)을 그랜드 캐년에 데리고 관광을 갔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당신은 그곳에 이미 와 보았기 때문에 그곳이 매우 장엄한 곳이며 경관이 형언할 수 없이 웅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당신이 1마일 깊이나 되는 계곡의 가장자리에 서서, 비-기독교인(non-Christian) 친구에게; “이 아름다운 경치를 보라. 여기서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없는가? 정말 아름다운 세계야.”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면 크리스천이 아닌 친구는 당신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나의 눈에 보이는 것은 큰 홍수에 의해서 전지역에 분산 되면서 바위 층에 묻혀 있는 수 십억의 시체(dead things)뿐인데. 이 계곡의 층들은 수 백 만년 동안에 일어난 죽음, 질병, 그리고 투쟁의 역사를 간직한 화석으로 가득 차 있어. 나는 지금도 세계 전역에서 어린이들이 죽고, 사람들은 굶주리며, 의미 없는 살상과 테러, 무서운 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지 않아. 도처에서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을 보면서 혼돈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어. 단지 적자생존의 원리만 적용되는 세상이야 – 약한 자는 짓밟히는 세상이야. 나는 하나님의 질서와 사랑을 볼 수 없어.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는 분명 사악하고 증오 스스러운 하나님일거야.”

문제는 당신과 당신 친구는 똑같은 계곡(그리고 세계)을 보지만 다른 눈을 통해서 본다는데 있다. 만약 당신이 진실로 성경적인 안경을 쓰고 성경을 통하여 세계를 본다면 하나님이 완벽한 세계를 창조하신 것을 안다. 그러나 인간은 반역하였다. 그래서 죄와 죽음이 세상에 들어오고 거룩한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 저주가 이 세상에 온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죄악이 이 세상에 가져다 준 것은 어린이 학대, 가족 분리, 정신병, 강간,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암, 등이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반역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외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어 우리의 죄 값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죽게 하여, 창조주 하나님 앞에 다시 설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올바른 안경을 쓰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은 첫 사람이 창조되기 전에 수 백 만년의 죽음과 고난이 있었다는 것을 믿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 할지라도, 그들은 비기독교인의 질문에 충분히 대답할 수 없다. 크리스천들이 아담의 타락으로 인한 죄와 고난과 저주의 기원을 확실하게 이해할 때에만 올바른 대답을 줄 수 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아담 이전에 수 백 만년 동안의 죽음과 고난이 있었다는 가르침을 인정하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올바른 대답을 들을 수가 없다! 그러나 교회가 이 문제를 인식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해답을 가지고 있다.

비-기독교인(non-Christian)들은 수 백 만년 동안의 죽음, 고난, 질병, 살인 등을 믿도록 교육 받았기 때문에, 거기에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 수 있느냐라고 반문한다. 이 들은 진정한, 타협되지 않은, 성경적인 안경을 쓸 때까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 성경적인 안경을 통해서만 역사의 시간 스케쥴(창조로 시작하여 타락, 십자가, 부활, 그리고 재림)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크리스천들이 이와 같은 안경을 쓸 때까지는 비-기독교인(non-Christian)들에게 이 세상에서 모순적으로 일어나는 죽음과 일생, 건강과 질병, 기쁨과 고난에 대한 것을 비-기독교인(non-Christian)에게 설명할 수 없다.

올바른 안경을 쓰지 않은 크리스천들은 믿는 사람들이 희망하는, 죄악이 세상에 들어오기 전과 같이 다시 완전해지는, 미래의 상태를 전연 이해 못한다. 처음에 시작될 때에 완전한 상태로 출발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그러한 곳으로 회복될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천국을 갈망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생이 냉혹하다는 전망(예측)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수긍하나 실재적인 기쁨에 대한 진정한 열쇠(clue)는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은 크리스천들이 영적으로 파산 상태나 미온적인 상태에 이르게 한다. 그들은 무관심하게 된다 - 그들은 복음과 복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않는다. 크리스천들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진정한 기독교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기독교가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비-기독교인(non-Christian)이나 크리스천이나 모두 “헬라인”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생각한다.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를 완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인”과 같은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것에 대한 해법에 대해 생각해 보자. 다음 “해법(THE SOLUTION)”이라 표시가 되어있는 성곽 그림을 주의 깊게 관찰하라.

이것은 앞에서 나온 성곽 그림과 기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크리스천들이 공격하는 목표가 이전 것과는 다르다. 이번에는 인본주의 성곽의 기초를 향해 총부리를 대고 있으며 그들의 무기와 이슈를 향해 총알을 쏘고 있다. 그와 동시에 크리스천들이 하나님 말씀의 기초를 재건축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이것이다! 어린 태아의 유산과 같은 이슈는 기초가 변화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하나의 징조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단지 이슈만을 공격하는 것으로 현재의 문화를 기독교 철학적인 문화로 다시 변환시킬 수 없다. 기독교 도덕은 궁극적으로 변함이 없이 진화론이라는 옳지 않은 기초 위에 서 있을 수 없다. 만약에 정치인들을 동원하여 태아 유산, 동성애 습성, 등등에 대한 법을 개정하는 접근법을 사용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실패할 것이다. 몇 가지 법이 크리스천의 사고와 일치하도록 개정된다 하더라도 만약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않는 새로운 입법자가 당선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은 금방 다시 법을 개정할 것이다.

당신은 아래에서 위 쪽으로 변화된 시스템을 다시 위에서 아래로, 탑-다운(top-down)식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이러한 이슈들과 싸우면 일시적으로는 일반 사람들의 주목은 끌게 될지는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많은 토론과 논쟁을 자극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이러한 접근법으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면 진정한 해법은 무엇인가? 위대한 위임명령과 많은 성경구절은 나에게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설교하라고 말한다 - 복음을 선포하고 사람들이 구원 받는 것을 보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진실로 다시 태어났다면(born again)), 그래서 자기의 생각을 하나님 말씀 위에 세워 진정한 크리스천으로서 생각하는 방법을 개발하면, 그는 그 생각(사고)을 문화 속에 적용시킬 것이다. 이러한 사람이 점점 많아지면, 더 많은 문화가 변화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말하듯이 크리스천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다.

성곽 그림을 보면 크리스천들이 4가지 일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1. 하나님 말씀의 기초를 재건축하는 일. 크리스천들은 창세기부터 시작하는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받아드려야 한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진화론적 개념과 타협하는 것을 거부해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교회가 하나님 말씀의 전부를 믿을 때까지는 교회가 세속적인 문화를 하나님 말씀으로 돌이키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시도를 시작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일의 한 부분으로서, 교회는 회중을 가르쳐서, 성경말씀을 방어하게 하고, 회의론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고, 성경을 훼손하는데 사용되는 현재의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서 긍정적인 해답을 제시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독교 교리를 이해해야 하고 그것의 기초가 창세기에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리고 크리스천들은 이러한 교리를 그들과 자녀들의 생활에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1

  1. 크리스천이 인본주의의 기초를 공격하는 일. 크리스천들은 진화론이 반-하나님(anti-God) 종교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진화론의 가르침을 쉽게 논박할 수 있는 단순한 과학적인 주장을 잘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2
  2. 크리스천을 공격하기 위하여 사용된 무기들과 싸우는 크리스천들. 교육 시스템, 텔레비전 프로그램, 잡지, 등 진화론적인 선전을 하는데 사용되는 모든 수단을 좌절 시키는 프로그램을 제안할 필요가 있다.3

크리스천들은 우리들의 사회를 병들게 하는 낙태, 동성애 습관, 포르노, 그리고 이 밖의 다른 사악한 것에 대항해야 한다. 그러나 입장을 방어할 방법을 알고 대항해야 한다. 그들을 반대하는 이유가 단지 그들이 틀린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인식되어져서는 안 된다. 크리스천들은 근본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으며 왜 그 이슈가 옳지 않다는 것과 그리고 왜 비-기독교인(non-Christian)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방안을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알아야 한다.4

요약하면: 첫째, 교회가 “유대적” 문화가 “헬라적” 문화쪽으로 전반적인 변화를 일으켰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전도 방법을 수립하는 사람들은 이 변화를 고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효율성이 크게 감소할 것이다.

둘째, 교회는 교회 자체가 “헬라적”으로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문화의 근본적인 변화를 보지 못한다. 이것이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비-기독교인(non-Christian)에게 복음으로 접근하기가 어려운 이유중의 하나이다.

지금 누가 이렇게 말한다고 하자, “나는 대단한 전도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우리는 매 주일마다 주님께 돌아오는 새 신자를 본다. 매우 큰 숫자는 아니지만, 이것은 우리들 전도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 을 실증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이러한 현상이 많은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이 서구 사회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남은 자라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미국에는 수 백만 명의 비기독교인이 있지만 이들은 이들의 배경에 기독교 영향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기독교적인 기반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도 미리 알아야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교회나 학교에 의해 갈아 업혀진 땅이 많았다.

그러나 적들이 멸망(파괴)의 씨앗을 뿌렸다. 갈아 엎은 많은 땅이 이제는 진화론적인 생물학의 나무와 진화론적인 지질학 바위들로 덮여있다. 비록 아직 갈아 엎은 땅이 조금 남아 있지만, 이것이 놀라운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많은 젊은 세대들이 진화론적 교육 시스템을 통과하면서 반 기독교적인 철학 안에서 훈련 받게 된다.

어떤 면으로 보면, “창조론 전도자(creation evangelist)”는 불도저를 사용하여 땅을 경작하는 사람으로 묘사할 수 있다. 처음에는 바위와 나무를 제거하고 씨앗이 뿌리를 내리는데 방해되는 부스러기를 치운다. 진화론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복음이 들리지 않게 하는 가장 큰 걸림돌중의 하나이다. 이 걸림돌은 제거되어야 한다. 적(enemy)이 우리들 영토를 점령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그 영토를 되돌려 받아야 한다. 땅을 갈아 엎고 기초를 준비하는 것 - “창조론 전도”는 이런 일을 하는 것이다.

복음 전도의 노력으로 아직 어느 정도의 수확을 거두고는 있지만, 몇 세대 전과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고 생각된다. 대부분의 경우, 사도행전 2장과 같은 수확은 나타나지 않는다.

나는 지금 “개척 전도 (pioneer evangelism)(혹은 예비전도(pre-evangelism))” 혹은 “창조론 전도(creation evangelism)”가 유일한 해법이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방법이 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과 사도들은 사람들의 신분이나 형편에 따라 다른 방법으로 접근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주안점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편견을 알아야 한다. 복음 전도의 방법은 하나 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창조론 전도를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전도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은 “헬라 화” 되어 있는 문화에 적용하는 방법으로서는 가장 유력한 것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만약 우리가 지속적으로 복음 전도하기를 원한다면 개척 전도(pioneering evangelism)를 일반적인 전도 방안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여 교회 전체에 적용시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가 전도한 그 토양은 부드러운 옥토였다. 즉, 씨 뿌리기에 잘 준비된 흙이었다. 그런데, 사도행전 17장에서는, 바울이 매우 굳은 땅과 부닥치게 된다. 나는 오늘날의 땅은 바울이 초대 교회시대에 부닥친 땅 보다 더 단단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기초적인 성경지식이나 기독교에 대한 지식이 결여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성경에 대항하는 것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화답하는 사람들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 나는 멕시코의 격리된 인디안 종족에게 복음을 선교사가 산디아고의 우리 교회를 방문하였을 때 이것을 상기하게 되었다. 그 선교사는 캘리포니아의 대학생들보다, 인디안 종족은 적어도 아직 신을 믿고 있기 때문에, 인디안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오늘날 “나쁜” 기독교 교파도 상당히 많다. 교회를 통한 타협이 유행처럼 일어나고 있다. 실재로는 완전한 이방인 문화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설프게 성경을 아는 문화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더 수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창조론 전도(creation evangelism)는 이러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는데 큰 영향을 발휘한다 - 사도행전에서 이러한 설교(전도) 양식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이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하여 일반 성도들의 증언(간증) 파일을 모아 14장에 실었다.

만약 기독교가 잃어버린 토양을 우리가 개간하기를 시작하지 않으면, 다가오는 세대들에게는 갈아 엎은 토양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1세기도 더 된 진화론의 가르침과 싸우는데 미봉책은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다국적 군대가 쿠웨이트에 진격하여 적으로부터 영지의 반환을 요구했을 때를 기억하는가? 미국은 “모래 위에 선을 그었다(The United States “drew a line in the sand.).” 이와 같이, 오늘날 우리가 사탄에게 빼앗긴 땅을 회복하려 할 때 우리 문화 내에서 영적인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창조론/진화론 논쟁이 얼마나 감정적으로 진행 되었는지 주시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는 공립 학교에서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서 자기의 의견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창조론/진화론에 대한 주제를 말하면 즉각적으로 그에 대한 반응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인본주의자들이 어디에서 실재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메시지는 없다. 결국, 하나님이 창조주가 아니시면 아무것도 문제되는 것이 없다. 모두가 의미가 없다.

창조론/진화론 이슈가 그러한 감정적이며 시끄러운 반응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교회에게 크게 이야기 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인본주의자들과 기독교계간에 일어나는 싸움의 실재적인 전선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이것은 크리스천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누어지는 이슈이다. 왜냐하면 이미 많은 크리스천들이 수 백 만년 된 역사 혹은 다른 진화론적 철학의 관점과 타협하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연합하는 것만 가르치고 의견이 나누어지는 것은 가르치지 말자는 엉뚱한 제안도 하고 있다.

내가 어떤 기독교 대학에서 강연을 마친 후 몇몇 학생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내가 강연하기 바로 전날 한 교수가 학생들에게 “창조론 사역은 크리스천들의 의견을 분열시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의 강연을 무산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 이것은 문자적인 창세기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분열주의자이고 창세기를 성경에 기술된 것과는 다르게 말하는 사람은 분열주의자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세상의 창조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가 지구 상에서 목회하시는 동안 “분리”가 일어나게 하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 지 말라 화평이 아니고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마10:34-35). 누가 복음 12장 51절에는,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로서 무엇이 일어났는가? “예수를 인하여 무리 중에서 쟁론이 되니(요7:43). “이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요10:19). 나는 그 당시의 몇 몇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분쟁을 유발하는 자라고 비난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요점은 진리는 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진리이므로 그의 사역은 분쟁적이었다. AiG(Answer in Genesis, 창세기의 대답) 사역에서는 창세기(하나님의 말씀)의 내용을 문자적인 진리를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진화론적인 개념이나 수 백 만년 설과 타협한 크리스천들은 AiG 사역자들을 불화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들은 나와 같은 사람들을 편파적이고 분쟁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은 중립적이라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에는 “우리에게 중립이란 것은 없다”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빛에서 걷든가 혹은 어둠에서 걷든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지 중간 지역은 없다. 마태복음 12장 30절에,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헤치는 자니라.”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다.

성경을 진화론/긴-시대-철학(long-age-philosophy)에 맞추기 위하여 타협하는 사람은 나의 친구 칼 위랜드가 지적한 “대중 심리상태” 즉, 세상으로부터 인정 받고 싶어하는 욕망을 나타낸다: “많은 사람들은 창세기는 신화 혹은 비유로 취급되어야 된다고 말한다.”

나는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캠퍼스의 저명한 기독교 그룹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연설할 때 일어난 사건을 기억한다. 내가 연설 도중 창세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한 젊은이가 벌떡 일어나서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이 말하는 것이 진리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대답하였다. “만약 내가 그것을 믿지 않았으면 이것들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강연이 끝난 후 이 젊은이가 나의 강연 내용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문제를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나에게 내가 다른 의견도 허용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내가 말하는 것이 진리이어야 하는 것처럼 말하지 말기를 원했다. 그는 내가 편협하고 편향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그 자신은 마음을 열어놓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허용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마음 문을 열어 놓았다면 왜 창세기가 문자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내 의견은 받아들이지 못하느냐고 반문하자 그는 우리의 대화가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것을 깨닫는 듯 했다. 그는 내가 나의 생각이 옳지 않을 수 도 있다는 가능성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주장도 같은 위치에 놓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그가 마음을 열고 나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다른 모든 주장은 옳지 않다는 것이 아닌가! 라고 물었다. 나의 주장은 그가 편협하다는 것이었다 – 그러나 그의 주장은 내가 편협하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기독교 대학들의 대변인들이 창세기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을 모두 수용한다고 발표한 것을 기억 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창세기가 문자적으로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만은 허용하지 않았다. 이러한 대학들은, 위에서 본 학생의 주장과 같이, “창세기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며 이에 반하는 다른 어떤 주장도 틀렸다는 주장”은 허용하지 않는 독단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론자 사역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동안은, 의견은 나누어질 것이다. 진리는 항상 분쟁적이다! 우리가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치면 분쟁은 틀림없이 일어난다.

우리는 어떤 방법론이나 메시지를 판단할 때 그것이 분쟁적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판단하기 보다는 그것이 성경에 기반을 둔 진실인가에 따라서 판단해야 한다. 창조론 전도는, 그 자체가 분쟁적인 것과 같이, 어두운 세계에 빛을 비추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복음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이 능력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나는 실제로 몇 몇 크리스천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그래 좋아. 당신이 말하는 것이 진리라 할지라도 당신이 주장하는 것은 너무 많은 시간과 일을 요구한단 말이야. 주님이 언제 오실 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단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하면 되지 않나? 이런 기초적인 문제로 몇 년을 소비할 수야 없지. 기초가 바뀌는데 수 년이 걸렸으니까 그것이 회복되는데도 수 년이 걸리지 않겠나? 그러는 동안에 수많은 영혼을 놓치겠네. 그러니 그들이 기독교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그들이 단지 구원을 받도록 하면 되지 않겠나?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나?”

나는 내가 언젠가 미국 창조론 연구소의 회장이었던 헨리 모 리스박사와 나눈 대화가 생각난다. 모 리스 박사는 나에게 그와 요한 휫컴의 저서 “창세기 홍수(The Genesis Flood)”라는 책의 배경을 설명해 주었다. 이 책은 세계적으로 창조론 사역 운동의 형성을 자극하였다. 모 리스 박사가 나에게 “그는 복음을 설교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구원 받는 것을 보는 것을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하마터면 이 책을 저술하지 않을 번 했다”라고 말했다. 그가 이 책에서 진화론적 철학에 대항하고 성경적인 기초를 회복시키는 것을 강조한 것은 정말 장기적인 비전이었다. 교회의 전반적인 사고를 바꾸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그는 이제 곧 주님이 오실 테니까, 우리는 복음을 설교하는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30년 전에 발간된 모리스 박사와 휫컴 박사의 책의 영향을 받아 세계 도처에 창조론 조직이 형성되었다. 그래서 수 백 만 명이 이들을 통하여 복음을 듣는다. 그들이 쓴 “창세기 홍수(The Genesis Flood)”는 실제로, 창조론 전도의 추진력이었다. 이것은 사람들이 주님을 위하여 그들의 사역에 불이고 영혼의 승리를 얻게 하는 힘있는 사역이었다.

나의 아내 말리와 내가 1979년 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풀 타임 창조론 사역을 시작하기로 결정한 때를 회고해 보면, 나는 그때 창조론 전도의 진정한 능력을 인식하지 못한 것 같다. 사실 진화론적인 가르침이 교육 시스템과 일반사회에 침식해 들어온 상황을 생각하면, 작은 그룹의 사람들은 도저히 정복할 수 없는 분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무오(無誤)하신 말씀 위에 단호하게 서는 사람들은 축복하셨다. 주님은 이 사역을 사용하여 많은 영혼을 건지시고 많은 크리스천의 심령에 불을 부쳐서 영혼 구원을 위한 싸움에 참여하게 하였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 하면,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긴 영혼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요한 복음 17장).

인간적인 책임성의 관점에서 보면 잃은 자를 찾는 일에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나 같은 사람은 단순히 사람들이 구원 받게만 하면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 큰 문제를 가지고 있는 셈이 된다. 나는 중생한 크리스천이라 부르는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이혼율이 일반 세상 사람들 사이의 이혼율보다 높다는 연구 보고서를 본적이 있다.5 교회 성도들의 유산율도 역시 매우 높다.

개인적으로 나는 교회와 복음 전도 운동 기관 안에 “쉬운 믿음(즉, 단지 예수님만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님을 단순히 그들의 다른 “신들”에 첨가된 하나의 신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쉽게 감정적인 경험을 가질 수가 있으며 예수님을 믿는 것을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의미를 모르면-예를 들면 그들이 진실로 회개하지 않으면-어떻게 그들이 진실로 회심할 수 있겠는가?

이제 정직해지자. 이들이 올바르게 그들의 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나는 많이 보았다. 아마도 그들은 그들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예수님께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들은 그들의 죄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기도를 드린 후, 그들은 또다시 그전의 일상 생활로 돌아간다! 진실로 효과적인 전도를 하기 위해서 그리고 헌신하는 제자를 만들기 위하여, 우리는 “창조론 전도”를 사용하여야 하며 그들이 죄와 회개할 필요를 확실하게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다.

지금 실제적인 예를 들어 이것에 대해 설명하겠다. 새 종족 전도단(New Tribes Mission)은 선교 조직인데 그들이 이교도 종족에게 전도하기 위한 노력을 할 때 그들이 직면한 엄청난 문제들을 상세히 기록하였다.6

대부분의 다른 선교 조직과 같이 그들 선교 단은 그리스도에 대해서 토착민에게 가르칠 때에 신약성경에 중점을 두었다. 그들은 토착민에게 헌신을 요청하였으며 많은 토착민들이 회심하였다고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진지하게 회심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음을 알았다. 결국, 새 종족 전도단은 그들의 접근방법을 바꾸었다. 그들은 창세기의 천지 창조를 시작으로 하여 기독교 메시지를 전하였다. 그들은 토착민들에게는 기독교에 대한 기초가 전연 없음을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이 진실로 죄를 이해하겠으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이해하겠는가?

새 종족 전도단은 창조로부터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연대순으로 가르칠 수 있는 새로운 교과 과정을 개발하였다.7

이것은 실재로는 매우 단순한 개념이다. 구약 성경에서의 역사를 이해하지 않고는 십자가 위에서 일어난 일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예를 들면, 유월절 어린양의 의미).

새 종족 전도단은, 이러한 기초를 놓은 후 그들이 십자가의 메시지를 대할 때, 그 반응은 놀랄만하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자가 많았으며 그 헌신은 매우 진지하였다.8

우리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볼 때, 처음 반 정도를 건너 뛰어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지 않는다. 우리는 처음부터 시작하며, 그래서 그 이야기를 올바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성경을 읽을 때 왜 끝부분부터 읽기 시작하는가?

교회의 어떤 여자 성도가 매우 흥분한 상태로 나에게 와서 그날 아침 나의 메시지가 그녀에게 큰 은혜를 주었다는 말을 한 것을 기억한다. 그녀는, “내가 크리스천이 된지 오년이 되었습니다. 나는 요한 복음을 공부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기독교 신앙이 진실로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창세기에 관한 설교 후, 나는 번개가 나의 머리를 치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나를 창조의 시작으로 데려다 놓았기 때문에, 이제야 나는 모든 계획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처음으로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떤 사람도 나에게 성경을 처음부터 읽으라고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오늘날 효과적인 전도를 위한 실용적인 제안을 해 보자. 우리들은 시편과 잠언 그리고 신약 성경이 포함된 책을 많은 불신자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구약 성경이 없이는, 특히 창세기가 없이는, 신약 성경의 기초가 없는 것과 같다. 창세기가 없이는 진화론을 배운 사람들은 자기들이 믿고 있는 것이 틀렸다는 것을 이해하고 우주와 생명의 역사의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오늘날은 적어도 창세기 11장까지는 읽고 난 후 신약 성경을 읽도록 권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실, 나는 전도용 소책자로 성경 내용을 꾸밀 때는 창세기 1-11장, 출애굽기 20 장(율법), 요한복음, 로마서, 고린도전서 15장, 그리고 요한계시록 21-22장을 포함시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떤 면으로는, 성경책으로부터 발췌한 이것들은 초보자들이 복음의 기본, 능력, 희망에 대하여 완전하게 이해하도록 할 것이다.

“창조론 전도”를 사용하여 이교도 종족 전도하기

창조론 전도는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교도 종족을 전도하는데 사용하면 매우 강력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이다.

나는 많은 선교 단체들이 왜 어떤 사람들은 특별히 복음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응답하는지 그 근본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 선교 단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효과적으로 전하는 강력한 방법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수 년 전 나는 호주에 있는 어떤 선교 단체의 원주민 선교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나는 창조론 사역을 해오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 전역에 걸친 문화들(예를 들면, 미국인디언, 피지인, 에스키모, 하와이인, 호주 원주민)이 그들의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노아 홍수 사건과 창세기에서의 다른 사건과 유사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이들이 이런 전설을 가지고 있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이들의 문화는 노아로부터 유래된 것이라 믿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전설은 실재적인 사건에 기초를 둔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으며, 수 년이 지나는 동안 어느 정도 변화된 것으로 생각된다.

원주민 선교국에서 일하는 선교사는 나에게 복음으로 원주민 문화에 접근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설명하였다. 나는 그에게 홍수 혹은 창조에 대한 꿈의 시대(호주 신화=세계 창조 때의 지복(至福) 시대, 역자 주))의 전설(dreamtime legends)에 대해 들어보았느냐고 질문 하였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호주 원주민들이 말하는 이야기들은 오래 전의 세대부터 전해오는 것이라 하였다. 그 선교사는 왜 이런 전설들이 창세기의 창조/홍수 사건과 매우 비슷한지에 대해 가끔 생각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들을 서로 함께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선교 단체는 그런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내용을 전도 할 때 사용해 볼 것으로 제안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이것이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나타내는 실재적인 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결국 이 원주민들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와 유사한 전설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수 년 후에, 나는 이 선교사를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아주 놀랄만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어느날 그는 원주민 노인과 같이 앉아 있었다. 그 노인은 선교사에게 원주민들은 첫번 째 여자는 첫번 째 남자가 잠든 동안 만들어졌다는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 선교사는, 그래서, 창세기의 하와의 창조사건을 그 노인에게 읽어 주었다. 그때 그는 놀라면서 물었다. “어떻게 당신은 우리와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까? 그런데 당신의 이야기가 더 나은 것 같습니다.” 얼마 후 그 선교사는 그 원주민을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돈 리챠드선은, 그의 잘 알려진 고전 작품인 “그들 가슴속의 영원(Eternity in their Hearts)”에서, 기독교에 접촉된 적이 없었지만 그들의 문화 속에 간직 되어 있는 된 참 하나님에 대한 충분한 지식 때문에 복음에 반응한 많은 예를 들고 있다.9 그는 선교사가 이교도 종족들에게 그들의 민속 전설 가운데 있는 창조주 하나님이 성경에서 나오는 참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것을 말해 주었을 때 가장 큰 선교적인 성공을 거두었다고 쓰고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선교사나 선교단체는 이러한 접근법을 무시하고 있다. 리차드선은 이 책에서 말하기를 “만약 신학교 교수, 목사, 교회 학교 교사들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중심 테마를 잘 이해하고 전달하였더라면, 세계 전역에서 지난 수 세기 동안,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100 배나 더 선교에 대한 활기를 가졌을 것이다.10

그리고 선교사들이 일하는 나라 가운데에는 성스러운 초월 창조주의 존재를 부인하고 진화론을 믿음으로 가지고 있는 나라도 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이미 존재하는 물질(pre-existing matter)을 믿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사람들에게는 역시 창조론적 전도 접근법이 필요하다. 선교사들은 진화론적 관념과 대항해야 하며, 건전한 복음의 체계를 위하여 올바른 기초를 정립해야 한다. 나는 선교사들이 창조론 전도 접근법을 사용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이들이 진화론이나 수 백 만년 설에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서, 창세기는 전도할 때 매우 중요하거나 유용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 방법의 중요성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기초적인 문제를 빠뜨린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직 복음을 전하는 유일한 길은 신약 성경의 죄에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대한 메시지라고 생각하고 있다.

창조론 전도 그 자체 내에도 전도해야 할 대상의 특수한 배경에 따라 다른 접근법을 사용한다.

바울의 개척 전도(pioneer evangelism)에서 유의해야 할 또 다른 주요한 요점은 “헬라적”인 사람들에게 사역할 경우에는 “유대적”인 사람들이 있었든 장소에서는 모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은 지방 회당 안으로 헬라 철학자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 바울이 헬라 철학자들과 모임을 가질 때에는 기도로서 시작하지 않았으며, 찬송을 부르기 위한 찬송가 프린트를 나누어주지도 않았다. 바울은 “그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과 만났다. 바울은 심지어는 그들의 시나 극작가의 작품을 인용하였다. 그렇다고 바울은 성경의 내용을 완화하여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는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결국 그들은 나중에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오늘날, 서구의 많은 교회들은 그들이 세상을 모두 전도하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교회와 세상 사이의 틈새를 연결시키기 위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매우 친숙한 오락 프로그램을 강화시킨다. 그래서 사람들을 모이게 하여 “그들 자신이 즐기는” 집회를 만들어 버린다. 대부분의 경우, 이것은 단지 하나님 말씀의 가르침을 “완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많은 신학교나 성경 대학조차도 오락 프로그램에 의한 접근법을 권장하고 있다. 하나님 말씀의 절과 절을 가르쳐 그것을 문화에 적용시키도록 훈련 받은 목사나 기독교 지도자를 보기 힘들다. 해설적인 설교(expository preaching)는 이제 잃어버린 예술이 되었다.

물론 많은 수의 교회 지도자들과 신학교 교수들은 자신들이 다른 문화권을 향한 목회사역을 한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이제 청중들의 요구는 다르다라는 것이다.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나의 주장은 이들 지도자들이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제 청중들은 “유대적”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오히려 “헬라적”으로 생각한다. 이들은 기술에 이끌리는 문화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생각한다 – 이들은 텔레비전에 영향을 받으며 영적일 일에는 관심이 없다. 물질주의가 그들의 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이러한 일반 청중들의 문화 저변에 깔린 철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유를 간과하고 있다.

교회가 교회의 기초를 바로 세우기까지는 교회가 사람들을 끌기 위하여 어떠한 성공적인 프로그램을 사용하더라도 헬라화된 문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 문제를 복잡하게 하는 것은 사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청중의 숫자를 성공의 척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성공의 척도는, 빛과 소금이면서, 세상과는 분리되어 있지만, 세상 속에서 세상에 영향을 주고 있는, 지속적인 크리스천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숫자이다. 이러한 크리스천들은, 장기적으로, 많은 수의 진정한 회심자가 나오도록 할 것이다.

몇 몇 “대형 교회”들은 놀랄만한 프로그램으로 많은 군중을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렇게 하여 몇 몇 사람들은 구원 받을지 모르겠으나, 종국적으로는, 만약 올바른 기초가 놓이지 않았다면, 계수(計數)되는 숫자가 매우 적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서 시작해야 하겠는가? 만약 내가 주장하는 것이 옳다면, 이것은 굉장한 효과를 낼 것이다. 우리는 헬라적인 파도의 방향을 돌리기 위하여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

간증

나는 수 년 전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지구의 나이가 매우 오래되었다는 가능성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당신에게 비판적인 편지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당신의 동역자가 편지로 대답을 해주었고 그 해답과 같이 보내준 “교회에게 도전(Challenge to the Church)”라는 테이프가 나를 돌아서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이제 과학적이라 알려져 있는 날 수 계산 이론(theories of dating)이 얼마나 오류가 많은 것임을 완전히 알았습니다. 또한 이것이 창세기를 훼손하고 결국 십자가의 의미를 파괴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좋은 일 계속하시기를 바랍니다.

D.J., 켄터키

제 10 장 7 개의 C

내가 1980년 초에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기독교 라디오의 몇 개의 토크 쇼에 게스트로 초대 받았다. 처음에 나는 내가 받은 질문이 어떤 것일까 생각하며 몹시 안절부절못하였다. 그러나 토크 쇼가 진행됨에 따라, 나는 호주 교회에서 사람들이 나에게 질문 하는 것과 동일한 질문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질문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취했는가?

*기독교인은 진화론을 믿을 수 없는가?

*소 동위원소를 이용한 날짜 측정은 지구가 매우 오래 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았는가?

*공룡은 성경 어디에서 나오는가?

*과학자들이 지구의 나이를 수 십억년이라 증명하지 않았는가?

*노아는 그의 방주에 어떻게 그 모든 종류의 동물을 실을 수 있었는가?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는 갭(간격)이 있는 것이 아닌가?

*성경에 한 날이 천 년과 같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까 창조의 날(day)들은 어떤 긴 기간(period)으로 보아야 하지 않는가?

*어디서 인간의 다른 “종족(race)”들이 생겨났는가?

*“당신은 원숭이 사람(ape-men)”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창조의 “날(day)”들은 통상적인 하루인가?

1987년에 나와 나의 가족은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나는 많은 라디오 토크 쇼에 나가게 되었다. 그 때 무슨 일이 나를 놀라게 했는지 아는가? 나는 기본적으로 청취자들로부터 거의 같은 질문을 계속 받았다!는 사실이다. 가끔은 토크 쇼 진행자가 방송을 하기 전 오늘은 어떤 질문이 들어올 것으로 예측하느냐고 묻곤 했다.

나의 관례적인 대답은: “음, 내가 당신에게 말하자면……”이라 하고는 앞에서 열거한 것과 같은 질문 리스트를 진행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나는 수 년 동안 토크 쇼를 하면서 대부분의 토크 쇼 청취자들이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듣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아예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토크 쇼에 포함시켰다. 나는 토크 쇼에서 자극을 받아 이들 질문과 다른 많은 유사한 질문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한 해답을 수록한 “해답 집(The Answers Book)”이라는 책을 발간하였다.1

이 경험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배우게 하였다. 대부분의 평범한 크리스천들은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그들의 교회나 기독교 학교로부터 한번도 듣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테네시 주의 데이톤에서 1925년에 일어난 그 유명한 스콥스 재판에서, 실재로 기독교를 대표한 사람인 윌리엄 재닝스 브라인언도 재판정에서 똑같은 질문을 받았던 것이다.2 그는 이 질문들에 대답하지 못하였다.3 슬프게도, 그 후에도 이런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내가 세속적인 토크 쇼에 나갈 때 이들 동일한 질문을 받곤 한다. 이런 질문이 지속적으로 대두되는 이유는 많은 세속적인 사람들이 “가인은 어디서 그의 아내를 취하였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대답하지 못할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비기독교인은, 크리스천들이 이런 문제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그들이 성경을 믿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데 사용한다.

또한 나는 보수 성경 신앙 교회(conservative Bible-believing churches)의 교인들이 꼭 같은 질문을 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세속적인 교육에 영향을 너무나 크게 받았기 때문에 성경을 세상의 실재적인 상황과 연결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본질적으로는 진화론을 믿지 않는다 해도 수 백 만년 된 역사와 다른 진화론적 가르침에 의해 세뇌 된 것이다. 창세기에 대한 세상적인 공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크리스천들은 창세기를 방어하는 시도를 포기하였다. 그래서 이제는 이들은 기초적인 질문에도 대답을 못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이들이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면 이들의 자녀들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쉽게 성경의 모든 내용을 거부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이미 기독교계에서 경종을 울리는 속도로 발생되고 있다.

한편 교회의 대부분의 성도들은 성경이 역사책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기독교는 신화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기독교는 진실한 역사 위에서 세워진 것이다. 아담은 실존 인물이고 우리 모두가 그의 후손이다. 에덴 동산이 실재로 존재하였으며 아담의 타락 사건도 실재적인 사건이며 그 때문에 그의 후손인 인류 전체가 죄인이 된 것이다. 죄에 대한 진정한 저주가 세상에 임하였으며, 죽음과 고난은 저주로부터 기인하였다.

목회자는 세상에서 성경을 가장 잘 해석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성경을 한 절 한 절 성도들에게 가르친다 (이것이 성경 공부의 전통적인 유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회중들이 위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목회자가 창세기의 각 절을 올바르게 상세하게 잘 설명하였다 해도, 그의 회중(성도)들의 마음에는 결국 미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목사가 그것을 실재의 세계와 연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공중에 있는 파이(pie in the sky)”와 같다. 나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관찰할 때 단지 구원에 관한 내용만 본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에게는, 성경이 단지 구원과 천국에 가는 것, 그리고 지옥에 대한 경고에 관한 말씀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이것보다 휠씬 더 크고 넓다. 이것은 오늘날의 세상에서 생각하고 살아가는 모든 방법(길)에 대한 것을 포함하고 있다. 어린이들이 실재 세상에 관한 질문을 할 때 - 위에서 나온 것과 유사한 질문, 즉 공룡, 화석, 노아의 홍수, 가인의 처, 그리고 인종(종족)에 대한 것 - 우리는 성경은 세상의 모든 것과 실재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성경의 내용이 실재의 역사와 연결이 없다면, 그러면 궁극적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성경을 믿을 수 없다면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구원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

내가 어느 교회에서 강연을 마쳤을 때, 어떤 청년이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정말 창세기가 이렇게 중요한 줄 미쳐 몰랐습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나는 흥분됩니다. 당신이 이야기한 책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책을 구입하고 싶습니다.”

그때 나의 옆에 가까이 서 있던 그 교회 목사님이 나에게 말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 내가 창세기에 대해서 열심으로 설교할 때 그 사람은 몇 달 동안 나에게 논쟁을 걸어왔는데 당신이 한 강연 하나를 듣고 완전히 돌아서는 것을 보니 놀랍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것이 아니다. 나는 창세기의 내용을 성경에 기술 된 대로 설명하기 보다는 세상이 가르치는 것을 믿는 것과 성경의 내용이 불일치(모순) 하는 것을 지적하면서 설명하였다. 창세기의 내용을 실재적인 세상 일과 연관시켜 말한 것이다. 그리고 그 청년과 같은 세상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질문 하는 이슈에 적절한 대답을 제공한 결과였다.

이것은 보통 교회에서 창세기를 가르치는 방법과는 매우 다른 방법이다.

이것에 대해서 좀 더 심층적인 설명을 하기 위해 우리가 만들고 있는 성경공부 교과 과정에 대한 철학적인 배경을 당신과 나누고 싶다. 나는 교회에서 성경 공부 시간에 이 방법을 사용하면 성공적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

우리는 이것을 “7C(Seven Cs)”접근법이라고 부른다. 7C는 성경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사건 일곱 개를 의미한다.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재림으로 동일 시간 선상의 역사를 나타낸다.

창조(Creation)

타락(Corruption)

대변혁(Catastrophe)

혼란(Confusion)

그리스도(Christ)

십자가(Cross)

재림(Consummation)

물론 다른 많은 사건을 첨가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역사의 주요한 사건들이다. 이것을 약 6,000년 전의 천지 창조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의 역사를 동일 시간-선상 위에 놓고 미래로 향하게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기독교 안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이 이 역사적인 동일 시간-선상 위에 놓이게 된다는 것을 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경이 역사책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실재적인 역사와 성경 속의 모든 일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 시키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가르칠 때, 항상 4개의 중요한 추진력을 병합시킬 필요가 있다.

  1.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을 아주 명백한 언어로. 예를 들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단순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성경은 성경이 그 내용이 진짜임을 증명하며, 스스로 인증한다. 그리고 성경이 성경을 해석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다른 참고 서적을 성경이 쓰여진 배경을 이해하는데 사용할 수가 있지만 그것은 성경 말씀 그 자체의 문맥보다는 2차적인 자료로 사용되어야 한다.
  2. 세상은 성경에 적대적이기 때문에 세상이 성경을 훼손하고 공격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 그리고는 그 공격을 분쇄하도록 해야 한다.
  3. 크리스천들은 세속적인 세상과 혹은 다른 크리스천들이(조차) 성경의 요점을 공격하는 방법을 참작하면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을 논리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세상의 가르침과 타협하였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타협하는 것이 나쁜지를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그들의 믿음을 다른 믿는 자들의 타협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다음의 4 번과 중복된다.)
  4. 여기서 명백하게 다루어진 교리는 분명하게 선언되어야 하며, 이것을 매일 매일의 삶에 적용하여야 한다. 이제 몇 가지 실용적 예를 들어 보겠다.

A.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창조 된 사실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2:7)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 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1-24).

  1. 성경은 아담은 흙으로부터 만들어졌고 하와는 그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한다.
  2. 그러나 세상은 남자는 “원숭이 남자(ape-man)”로부터, 여자는 “원숭이 여자(ape-woman)”로부터, 진화되었다고 가르친다. 이 가르침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소위 “원숭이-사람”의 예는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3. 크리스천들은 최초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방어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과 창세기 3장 20절을 사용할 수도 있다. 이것의 과학적인 물증(evidence)은 모든 사람들이 유전학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것인데 이것은 확실한 “증거(proof)”는 될 수 없을지라도 아주 견고한 “흔적(evidence)”으로 생각할 수 있다.4
  4. 결혼의 교리 – 한 남자는 그의 일생 동안 한 여자와 한 몸을 이룸 – 가 설명되어야 한다. 우리가 혼인하여 한 몸이 된다는 사실은(마19:4-6, 엡5:28-29), 하와가 아담의 뼈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 그들이 한 몸이었다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와는 미리 존재한 다른 동물로부터 진화하여 된 것이 아니다 – 이것은 혼인하여 한 몸이 된다는 성경의 기본 가르침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B. 아담의 타락을 가르침:

  1. 성경은 분명하게 나무, 동산, 뱀, 유혹, 과일, 그리고 아담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아담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반역하였다. 그래서 죄가 세상에 들어왔다. 그리고 죄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 그러나 세상의 역사에서는 이러한 사건을 가르치지 않는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수 백 만년 전에 일어난 일들이 지금도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균일주의의 교리를 지지한다. 크리스천들은 미국 워싱턴 주의 세인트 헬렌산5과 같은 화산 폭발의 예를 지질학적인 사건으로 부각시켜, 이것의 결과(빠른 침전물에 의한 지층, 협곡의 형성 등)로 일어난 현상을 이용하여 균일주의의 교리를 반박할 수 있다. 그리고 죽음, 질병, 살인, 그리고 고난은 죄의 결과이기 때문에 아담 이전의 화석 기록 속에 수 백만년 동안의 죽음, 질병의 기록이 있다는 주장을 믿을 수 없다라는 것을 명백히 말할 수 있어야 한다.
  3. 크리스천은 성경에 기록된 것과 같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있었다는 사실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 – 그래서 이것으로부터 죽음과 고난의 기원을 설명한다. 이것이 매우 모순되어 보이는 세상 일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사건이다. 타락은 성경이 기록한대로 역사적인 사건이라야 하며, 만약 그렇지 않다면 죄는 정의 될 수 없다. 크리스천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어야 한다.
  4. 죄의 교리, 그 결과, 그리고 우리 모두가 처음 사람 아담의 후손이므로 모두 죄인이다 – 그래서 우리에게는 구원이 필요하다. 우리에게는 회복의 교리가 있고 저주가 옮겨지는 미래가 있다.

C. 십자가와 부활:

  1. 성경은 분명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가르친다. 이것은 문자로 기록된 그대로의 부활이다.
  2. 그러나 세상은 “예수님은 단지 사람이었다”라고 말한다 – 크리스천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박하여야 한다. 그리고 다수의 사람들이 예수님은 진실로 죽음에서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 소위 “기절 이론(swoon theory).” 이러한 역사적 사실성을 방어하는데 도움을 주는 많은 좋은 책들이 출판되어 있다.
  3.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죽은 이유를 가르쳐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죽음은 우리들의 죄에 대한 형벌이었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수 백 만년 설을 믿지 못하며 이것을 성경에 첨가 시키지 못한다.6
  4. 부활 교리는 복음의 중심이다. 예수님은 “처음 아담”의 자리를 대리하여 인류의 새로운 우두머리가 되었기 때문에 “마지막 아담”으로 불린다.7

성경 교사는 하나님 말씀을 설명할 때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이 교회의 내 외에서 공격을 받는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담고 있어야 한다. 성경 교사는 그러한 공격으로부터 성경을 방어하는 방법을 성도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이 공개적으로 성경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권위 있게 성경을 가르칠 수 있는 준비를 충분하게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내가 이것을 강조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나의 일생 동안 실재적으로 경험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그 당시의 공격에 대해서 항상 성경을 방어하시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믿고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라 하든지 염려하지 마라”라고 말하는 것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는 물론 성경은 성경 그 자체로 증명 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논리적으로 성경을 방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그가 대답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에도 그는 다른 사람들의 틀린 주장에 굴복하지 않았다. 그는 끈기 있게 그 대답을 찾곤 했다. 예를 들면 내가 아버지에게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 가르침에 대해서 물어보면 처음에는 그 질문에 대답을 못하였다. 그 당시에는 우리가 지금처럼 많은 자료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크리스천들이 하는 것(자기의 어린이들에게 성경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든지, 아니면 그것은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하는 것) 대신에, 아버지는 문자적으로 기록되어 있는 대로 창세기를 믿는 것의 중요성을 지적하였다. 과학에 관련된 것에 대해서는, 그는 우리가 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만약 그는 성경 책이 무언가 분명하게 가르친다는 것을 확신하면, 그는 어떤 것에도 상관하지 않고 그것을 고수하였다. 이러한 나의 아버지의 태도는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대답을 찾았을 경우에는 그는 매우 기뻐하였으며 그는 그것을 세상이 가르치는 것에 대항하기 위하여 사용하였다.

내가 몇 년 동안 젊은 그룹, 기독교 학교, 그리고 교회 그룹을 방문했을 때 많은 젊은이들이 주님에 대하여 열광적이었지만 그들 대부분이 기독교 신앙의 기초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매우 실망하였다.

기독교 학교나 기독교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 학생들이 학문적으로 매우 좋은 결과를 이룩하고, 학사 혹은 석사 학위와 좋은 직장을 얻어서 학교를 떠난다 – 그러나 그들이 점점 세속화 되어가는 사회 속에서 그들의 믿음을 방어하지 못하고 복음을 효과적으로 선포하지 못한다면 그 교육이 모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여기에 많은 크리스천들이 대답하지 못하는 기초적인 질문 몇 가지를 적었다. 왜 당신은 (혹은 당신 교회의 성도들은) 이 대답에 충분히 잘 대답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가?

성경은 어디서 왔는가? 왜 성경이 하나님 말씀인가? 우리가 성경이 무오(오류가 없음)하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누가 성경을 썼는가? 왜 기독교가 불교보다 나은가?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하나님은 어디서 왔는가?

당신이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이것들은 실재적으로 매우 기초적인 질문들이다. 여기에 기초적인 것을 좀 더 적어보면:

가인은 그의 아내를 어디서 취했는가? 크리스천이 진화론을 믿을 수 있는가? 탄소 동위원소 방법을 사용하는 날 측정(carbon dating)은 지구가 오래된 것을 증명하였는가? 성경에 공룡은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과학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수 십억 년이라고 증명 하지 않았는가? 노아는 어떻게 모든 종류의 동물을 방주에 태웠을까?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는 갭(간격)이 있었는가? 성경에 하루가 천년 같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러니 창조의 날(day)들은 매우 길어야 하지 않은가? 인류의 “종족(race)”들은 어디서 왔는가? “원숭이 사람(ape-man)”을 당신은 어떻게 설명하는가? 창조의 날(day)들은 오늘날의 하루(one-day)와 같은가?

나는 많은 교회가 지금도 판에 박힌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판에 박한 일을 하는 것을 중단하고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교사들은 기독교 신앙의 기본자체를 방어하는 방법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줄 필요가 있다. 이것이 내가 현대 교회를 볼 때 현대 교회가 크게 실패하고 있는 부분이다. 너무 감정적이고 프로그램이 너무 많고, 말씀 공부는 불충분하고, 그리고 오늘과 같은 세상 안에서 말씀을 방어하는 방법을 충분히 가르치지 않는다. 교회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도덕적 위기를 가져 다 주는 실재적인 기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기본 문제에 대한 이해의 부족은 교회가 일반적으로 창조의 교리를 보는 관점에서 들어 난다.

수 년 동안, 나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AiG(Answers in Genesis)와 같은 사역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말을 많이 들었다. 이것은 그들이 창조를 단지 “2차원적인 교리”로 생각한 결과이다. 그들은 신약 성경과 예수님에 관한 가르침에 중점을 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

예를 들면,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약속 지킴”(PK(promise keepers) (빌 멕카트니))의 회장이자 설립자에게 “약속 지킴” 단체가 창조론 이슈를 지지해 달라는 편지를 썼다. 회장의 보좌진으로부터 온 답장을 보면 이 주제에 대한 대부분의 교회의 태도를 알 수 있다. 그 답장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PK(약속지킴)사역은 이것과 같은 이유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견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시실, 우리는 특별하게 그런 주제에 관한 논쟁에 휘말리고 싶지 않다. 우리들은 최선을 다하여 “믿음의 선언서(statement of Faith)”에 나타나는, 정통 기독교의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교리에 기본을 두고 사람들을 모은다. 우리는 예수님의 몸을 나누는 쪽 보다, 연합 시키는 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른 여러 교회들과 개인적인 크리스천들이 창조론에 대해서 여러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들은 창조론이 영적 선물, 영원한 보장, 휴거등과 같이 “2차적인 교리”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믿는다. 간단히 말하면, 창조론과 같은 주제가 나오면, 크리스천들은 서로의 은혜를 확장 시켜서 다음과 같이 말해야 된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본질적인 것은 연합. 비-본질적인 것은, 자유, 모든 것은 사랑(charity)”8

여기서 내가 지적하는 것은 PK운동이나 PK지도자에게 부정적인 중상 비방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PK만을 골라내어 비판하자는 의미도 아니다. 이들을 인용한 것은 이들의 답신이 오늘날의 기독교 목회자들의 절대적인 다수가 가지고 있는 관점을 간단 명료하게 요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창조가 영적인 선물 혹은 휴거와 같은 “2차적인 교리”들 중의 하나란 말인가?

지금 나는 위에서 인용한 것과 유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이 창조주 이시라는(창1:1) 창조 교리 그 자체는 “1차적인 교리”라는 주장에 동의하리라 확신한다. 결국, 하나님이 창조주가 아니라면, 성경의 첫 구절이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 되고, 그러면 성경의 나머지 부분도 진리일 수 없다. 하나님 자신의 교리(the doctrine of God himself) 이외에는, 창조가 가장 중요한 교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의 모든 것이 “창조가 진실이다”라는 전제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창조 교리가 2차적인 교리라 말할 때 그들이 보통 의미하는 것은 창조에 대한 상세 사항이다. (즉, 지구가 젊었는가? 오래 되었는가? 창조의 날들은 오늘날의 날과 같은가? 노아의 홍수는 전 지구적인 사건이었나, 등 – 이런 것들은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창조에 대한 상세한 사항은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매우 중요하다. 만약 아담이 실재적으로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면, 그러면 우리의 선조는 누구란 말인가? 우리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만약 아담의 타락이 역사 속에서 실재적인 사건이 아니라면, 죄는 무엇인가? 만약 아담과 하와가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창조되지 않았다면, 결혼의 교리는 의미가 없다. 만약 창조의 날들이 오늘날의 날과 다르다면, 1 주일이 7 일이라는 근거도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언어가 분명하게 의미하고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게 된다. 만약 지구의 나이가 수 백 만년이고, 죽음, 질병, 살인 등이 죄 이전에 존재했다면, 복음은 훼손된 것이다.

내가 말하는 요점은 창조 교리는 다른 어떤 교리보다 근본적인 것이다. 그러면 휴거나 영적인 선물은 어떠한 교리에 근원을 두고 있는가?

창조(즉, 창세기의 상세한 창조 역사)는 “제 2”의 교리가 아니다 – 이것은 사실 모든 교리의 근원이 되는 교리이다.

세상은 창조 교리를 공격 함으로서 기독교와 하나님 말씀을 공격하였으며 하고 있다 – 그리고 크리스천들은 근본적으로 후퇴하였으며 세상의 가르침과 타협하였다. 이제 우리는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한 군대를 훈련하는 완전한 프로그램을 시작할 필요가 있다.

우리들이 만나려고 하는 사람들의 사고를 이해해야 하는 것은 이 훈련의 일부분이다. “유대적”과 “헬라적” 개념의 전체적인 것을 마음에 새겨서 우리가 어떤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는 가에 따라 대응을 다르게 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그들과 효과적으로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하여 그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구원 받도록 인도할 수 있는가?

간증

나는 당신의 자료와 라디오 프로그램이 나에게 얼마나 많을 것을 가르쳐주었는지 알리고 싶습니다. 매 주일마다, 나는 나의 아내, 두 딸, 그리고 아들과 함께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나는 “창조” 잡지에 있는 한 이야기를 택하여서 성경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시청각 교재 – 지구의와 흑판 – 등을 사용하고 그 다음 이야기 줄거리를 따라가면서 각 각의 동물, 식물, 지구 그리고 하늘이 얼마나 복잡하게 설계되었는가를 지적하였습니다. 그 후 가르쳐 진 정보가 잘 받아들여졌는가를 체크하기 위하여 질문과 응답 시간을 가졌으며 마지막 질문은 “창조주 하나님은 누구인가?”이고 그 대답은 나의 자녀들이 소리치면서 말하는 “예수님” 입니다.

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 말씀의 진리에 대한 확고하고, 근거가 있는 이해를 주입시키기 위하여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창조 잡지와 다른 AiG(Answers in Genesis) 자료가 필요합니다. 나는 나의 자녀들이 성경이 그들이 믿을 수 있는 진리이며 – 그 안에 있는 모든 말씀은 진리이다- 진화론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다른 것과 타협하지 않음과 선한 싸움을 위해 감사 드립니다.

O.E., 텍사스

제 11 장 실용적인 창조론 전도

내가 창조론 사역을 하면서 처음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 나는 교회를 다니면서 지구의 나이, 화석 기록, 그리고 다른 주제에 관하여 과학적인 관점으로 말하였다.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는 같아 보였으나 그들은 내가 창조론/진화론에 관하여 가졌던 열정 만큼은 감동(자극)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비슷한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이제 독자들도 이 질문을 기억하리라 생각된다). 가인은 어디서 아내를 취하였는가? 창조의 날(day)들은 오늘날의 날(one-day)과 같은가? 성경에서 공룡은 성경 책의 어디서 나오는가? 등.

나는 어느날 헨리 모리스 박사의 저서 “창세기 기록(The Genesis Record)”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1 나는 그때 창세기가 어떻게 성경의 나머지 책의 기본이 되는 가를 깨닫고 “새로운 활력”을 느꼈다. 내가 이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내가 늘 마음속에 가지고 있던 질문 중의 하나에 대한 해답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정말 나는 무엇에 얻어 맞은 것 같이 흥분하였다.

나는 그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설교 만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계기를 잡았다. 나는 내가 대상으로 하는 청중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알았다. 이 주제에 대해서 그들은 어떠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가? 창세기에 대해서 무엇을 생각하는가? 왜 그들은 창세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가? 왜 그들은 이러한 질문을 가지고 있는가?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가? 등 등.

그 다음 나는 이런 것을 고려하는 설교를 준비하였다. 나는 이것을 나의 “관련 설교(Relevance Sermon)”라고 부른다. 이것은 왜 크리스천은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믿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는 30분 짜리 설교였다. 나는 왜 창세기가 모든 기독교 교리의 기초인지의 이유를 설명하였고 크리스천은 하나님 말씀에, 복음의 기본을 파괴하는, 수 백 만년 설을 첨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근거를 제시하였다.2 나는 또한 가인의 아내와 같은 것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내가 처음 이런 내용의 설교를 한 예배 후에 회중들이 보인 반응에 놀랐다. 사람들은 대거로 몰려와서 복사 테이프를 요구했고 다른 관련 자료도 구입하였다. 나는 마침내 그들과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하게 된 것이었다.

창조론 전도의 전체적인 개념이 몇 년 동안에 걸쳐 나의 사고 속에 구체화 되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일상생활에 만나는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과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할 수 있는 많은 이야기와 자료를 개발하였다.

다음에 창조론 전도를 적용하는 방법에 대한 실용적인 개념을 주는 몇 가지를 요약하였다.

  1. 모인 사람들의 정체성을 파악하라. 그 다음 그들이 생각하는 방법을 이해하라. 만약 그들의 생각이 하나님 말씀에 기초가 되어 있지 않으면, 창조론 전도는 그들의 생각에 주요한 불일치(모순)를 생기게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불일치(모순)가 무엇인지 밝혀내어야 했다. 그래서 그것을 분해하고 그것이 비 논리적이라는 것을 보였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이것을 사용하여 저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진리로 향하여 열리게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사람들의 그룹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여러 그룹의 특성을 동시에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물론 예외도 많겠지만,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채득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다음 그림들은 특수한 성향을 갖는 사람들의 그룹을 나타낸다.

첫 번째 그림은 모든 크리스천들의 생각이 머물러야 할 장소를 나타낸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 말씀을 그들의 기초로 삼는다. 문자적인 창세기를 믿는 것이 이들 기초의 일부분이다. 이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갖고 있다 – 하나님 말씀, 궁극적으로, 창세기 1-11장 바로 위에 세워진 기독교적 교리를 받아드린다. 이들의 기독교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그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해석하는데 쓰는 안경과 같다.

슬프게도 나는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이 그룹에 포함되고 있지 않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다음에 말하는 두 그룹중의 하나 혹은 그들 중간에 속한다. 만약 그들이 이 위치에 있다면, 이들은 세상이 시대(the age) 이슈를 가지고 성경을 공격하면 방어하지 못할 것이다. 기독교 지도자들도 적이 성경을 특히 창세기를 목표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취급하지 않는다.

다음의 그룹 2 그림은 우리 교회내의 한 부분을 나타낸다.

이 그룹은 성경을 무오(無誤)한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창세기를 그래도 받아들이는 크리스천들이다. 그들은 기독교 교리를 믿는다. 그러나 그들은 기독교 세계관이 성경, 특히 창세기 1-11장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실재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성경의 개념이 우주의 역사 책이라는 사실을 실재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 그룹은 하나님이, 수 백 만년의 간격 후, 6일 동안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는 고전적인 “간격 이론(gap theory)”을 받아들인다.3

이 사람들에게는, 그들 생각의 불일치(모순)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이야기 해준다.



  1. 만약 그들의 교리가 창세기와 연계가 없다면, 그것을 믿을 이유가 없다. 연계가 부족하면, 창세기의 내용을 방어할 수 없다. 그들은 그들 자녀에게 결혼은 일생 동안 한 여자가 한 남자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을 말해주지만 이것은 “위에서 아래로” 강조하는 것이지 – 근본적인 사항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다.
  2. 이들은 일반적으로 과학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의 우리들 같이, 지구의 나이가 수 십 억년이 된 것을 과학자들이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교육 받았으며, 공룡도 수 백 만년 전에 멸종된 것으로 생각하도록 교육 받았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를 그들의 세계관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이다. 비록, 일반적으로 그들은 창세기를 믿고 있다 해도, 실재적으로는 과학이 창세기를 실재 세계에서 분리하였다고 생각한다.
  3. 이 모든 문제들은 기성 세대와 다음 세대의 근본적인 연계를 절단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들의 자녀들은 교회에서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동시에, 진화론적 가르침에 대한 대답은 배우지 아니한다. 사실 그들은 수 백 만년 설을 믿어도 좋다는 교육을 받는지 모른다. 그들의 일상 생활의 생각으로부터 성경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그들의 마음에 각인되고 있다. 그들은 결혼과 같은 교리는 받아들이겠지만 신약 성경에 있는 내용 외에는 결혼에 대한 기초를 모른다. 궁극적으로 그들은 왜 동성애 습관이, 예를 들면, 옳지 않다는 근본적인 이유를 모른다.

교회에는 그룹 3에 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지만, 성경의 가르침에 진화론을 첨가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들을 하나님이 진화론을 사용하셨다는 유신론적 진화론자4이거나, 하나님이 수 백 만년 걸려서 수 백만 종의 동식물을 창조하셨다는 과정주의 창조주의자5이든지 혹은 다른 타협적인 태도를 취한다. 그들은 주요한 기독교 교리는 받아들이지만 그것을 매우 자유롭게 적용한다. 대부분의 기독교 대학, 성경대학, 신학교 학생, 그들의 교수들이 이 그룹에 속해 있다.

이 사람들을 위하여 그들 사고의 불일치(모순) 사항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그들은 그들의 교리와 연결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리에 대한 기본(기초)도 없다. 예를 들면,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을 때 진화론을 사용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위에 세워진 결혼에 대한 기초를 무너뜨린다. 과정주의 창조론자들은(유신론적 창조론자들과 같이)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 수 백 만년 동안 죽음, 살인, 질병, 그리고 고난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래서 속죄와 회복의 기초를 무너뜨려 버린다. 그들이 기독교의 교리를 붙잡고 있다 하더라도 교리에 대한 진정한 기초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불일치(모순)하게 사용한다.
  2. 그들은 또한 과학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그들은 진화론적 가르침을 과학과 동일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에게 사람을 달에 올려 놓는 과학이라도 과거를 직접 관찰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칠 필요가 있다. 과학자들은 과거를 연구할 수 없다. 진화론과 이것이 가르치는 수 백 만년 설은 실재로 하나의 믿음이다.6
  3. 그들은 다음 세대를 위한 기초를 가지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옳지 않는 기초를 가지고 있다. 그룹 2에 속하는 크리스천들은 기초를 올바르게 연결하는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옳은 기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그룹은 그들의 기초를 교리에 연결하는데 문제를 가지고 있다. 창세기의 어느 부분을 기록된 대로 믿을 것인가에 대해서 사람들마다 여러 가지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창세기를 기록된 대로 믿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어떠한 기독교 교리에 대한 기초도 없어진다.

나는 이 그룹 사람들의 자녀들이 믿음으로부터 떠나가는 것을 자주 목격하였다.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보면, 교회에서 진화론/수 백 만년 설의 가르침과 적극적으로 타협하는 성도들과 성경의 무오성을 방어하는 대답을 잘 하지 못하는 성도들의 자녀들은 교회에 헌신하는 하는 일이 적다. 교회에 다니면서 성경을 믿었지만 진화론 때문에 기독교를 거부한 많은 인본주의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하버드대학 교수의 증언을 읽어 보자: 미국 알라바마 주의 많은 사람들처럼 나는 거듭난 크리스천이었다. 내가 15세 때 나는 근본적인 신앙에 대하여 큰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남 침례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17세 때 알라바마 대학에 입학하여 진화론 이론에 대해 듣고는 교회를 떠났다.7

혹은 지방 법원으로부터 10계명이 적힌 판을 제거하기 위하여 매우 공격적으로 법적 절차를 밟고 있는 북 캐로라이나 주의 87세 된 노인의 보고서를 읽어보자. 그는 인디아나폴리스의 감리교 집안에서 자라나서 어린 시절로부터 틴 에이져가 되기 까지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였다. “나는 하나님에 관련된 것은 모두를 믿는다.”라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나는 착한 작은 소년이었으며, 학교는 늘 주기도문으로 매일 일과를 시작하였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이러한 태도는 인디아나주의 퍼듀 대학에 다닐 때 변하였다. 물리와 화학 과목을 선택한 후 그는 성경의 정확성에 대해서 질문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그는 노아의 방주 사건 때 어떻게 전 세계가 홍수에 잠길 수 있는 가에 대해 의심하였다……그 많은 물은 어디서 왔는가?8

그가 교회에 갔을 때 창세기 사건을 방어할 대답을 듣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이제, 그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서 그의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룹 1에 속하는 어린이들은 교회에 머무르는 경향이 있다 – 만약 세속적인 인본주의로부터 받는 공격으로부터 성경을 방어하는 방법이 이들에게 교육되어지지 않으면 이들은 수 세대가 지난 후에는 기독교 유산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청중(회중)들이 어느 그룹에서 왔는지를 이해한 후에는, 이들 불일치(모순)를 다루면서 그들과 교통(의사 소통, communication)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해야 한다. 내가 한 교회에서 처음 설교할 때마다, 나는 청중들이 어느 그룹에 속하는가? 혹은 어느 그룹들 사이에 있는 가를 가정한다.

우리는 이런 그룹들과 교제하기 위한 많은 자료를 개발하였다 :

“창세기 해답(The Genesis Solution)” 은 위에 열거한 각각의 불일치(모순)를 다루는 나의 설교 메시지를 담은 필름이다.9 이것에는 몇 가지 에니메이션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나는 과학인 것과 과학이 아닌 것을 설명한다. 나는 모든 기독교 교리가 어떻게 문자적인 창세기에 기초하고 있는지를 나타내고, 크리스천이 성경에 수 백 만년 설을 첨가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지적한다. 나는 기독교 교리를 기초로부터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진화론의 사회적인 결과를 논의한다 (단행본으로도 출판되어있다).

나는 내가 교회에서 이 메시지를 전한 후에, 많은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창세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수 백 만년 설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된 대로 수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궁극적으로 그들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다. 만약 그들이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싶고, 진실로 그들이 성경의 말씀(언어)을 통하여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면, 그들은 대개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슬프게도, 더 높은 학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학문적인 동료들의 압력이 매우 큰 걸림돌의 하나라는 것을 알았다. – 그들은, 가끔, 창세기에 있는 말씀의 하나님을 받아드릴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우리는 이 필름을, 어느 지역에서 세미나를 열기 전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교회에서 상영하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세미나에 참석하는 사람의 수가 70% 정도까지 증가하는 것을 경험하였다. 크리스천들이 이 주제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인식한 후에는 그들은 더 알기를 원하고 또 그들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추구한다.

  1. 나의 저서 “거짓말: 진화론 (The Lie: Evolution)”은 위의 필름과 같은 기초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나 좀 더 상세한 사항들을 포함하고 있다.10 많은 교회에서 이 책을 틴 에이져와 장년을 위한 성경 공부 프로그램의 교제로 사용하고 있다. 교사는 “창세기 기록(The Genesis Record)”을 가르치는 자료로 사용할 수 있다.”11
  2. “해답 책(The Answers Book)” 은 창조론/진화론에 대해서 가장 많이 질문 되어지는 것에 대한 해답집이다: 가인의 아내, “종족들”, 간격 이론, 공룡, 그리고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이 포함되어 있다.12 이것 역시 틴 에이져와 장년을 위한 성경 공부 교제로 사용할 수 있다.
  3. “창조론: 생명의 진실(Creation: The Facts of Life)”은 중요한 소위 진화론의 “과학적인” 증거를 취급한 중요한 참고 서적이다.13 유명한 진화론자였던 게리 파커 박사는 이 증거를 가르쳐 왔는데 지금은 창조론자로서 이것들에 대하여 반박하는 방법을 안다. 그래서 이책은 주로 과학적인 질문을 다루고 있다.
  4. 어린이들에게는, 우리의 책 “A는 아담을 위한 것(A is for Adam)”14과 “D는 다이나소르(공룡)를 위한 것(D is for Dinosaur)”15은 충분한 주석이 포함되어 있으며, 어린이, 틴 에이져 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읽어 볼만한 책이다.

“창세기의 대답(Answers in Genesis)” 비디오 세트.16 상세한 스터디-가이드가 첨부되어있는 12개의 비디오 시리즈는 기원에 대한 이슈를 성경과 과학적인 관점에서 다룬 완벽한 비디오 세미나이다.

“중요한 다이나소르(공룡) 신화. 풀리다! (The Great Dinosaur Mystery Solved!)”는 크리스천들이 크리스천처럼 생각하는 방법 즉, 성경적인 안경을 쓰는 방법을 성경을 통하여 가르치는 탁월한 책이다.17 이것은 실용적으로는 공룡 문제에 적용할 수 있으며, 젊은이나 늙은 사람들 모두에게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여러 분야에 적용하는 것을 가르친다.

물론, 다른 여러 가지 참고 자료가 많이 있다. AiG(Answers in Genesis) 사역과 다른 창조론 사역 기관들이 많은 자료들을 추천하고 있다(이 책 뒤에 그 자료들의 목록이 있다).

그룹 4 – 이 그룹은 주로 나이든 세대를 나타낸다. 우리는 이 세대를 “60년대의 세대”- 미국의 공립 학교에서 기도가 금지된 것을 본 세대- 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들은 기독교철학이 풍미한 세대와 문화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이들은 일반적으로 기독교적 윤리를 가지고 있다. 이들의 대부분은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믿는다. 그들은 옳고(선), 그름(악)을 구분한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는 진화론이 사실이다 – 그들은 항상 이것을 TV에서 본다. 그들은 지구의 나이가 수 십억년 되었다는데 대하여 질문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초자연에 대하여 관심을 나타낸다. 그리고 젊은 세대들의 도덕성에 대하여 염려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기는 믿는데 예수님과 개인적인 관계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그들의 불일치(모순)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 윤리관이 전반적으로 창조와 일치하지 않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결혼에 관한 기독교적 교리를 믿고 있다. – 그러나 왜? 어떠한 근거 위에서 그의 아들이 순간적으로 성적 매력이 있다고 생각되는 여자와 같이 살려고 할 때 그것이 옳지 않다고 설명할 것인가?

다시 말하면, 이 사람들은 그들 자녀들에게 왜 결혼이 일생 동안 “한 여자와 한 남자”의 개념이어야 하는 것인지 또한 왜 섹스는 결혼 안에서만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 기독교를 기반으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믿음에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 이러한 불일치(모순)(모순, inconsistency)는 시간마다, 때때로 지적되어야 한다. 왜 당신은 선과 악의 존재를 믿는가? 누가 악한 것이라고 결정짓는가? 이것은 단지 당신의 생각인가? 왜 그들 자녀들은 동일한 도덕성을 수용해야 하는가?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진화론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는 기본 개념이 실제로 자녀들의 결혼이나 섹스에 관한 관점을 정당화하는데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이 책의 앞 부분에서 논의한 것과 같이, 진화론의 기초는 태아 유산과 혼전 섹스와 그 밖의 여러 가지 사회적인 병폐를 방어하는데 필요한 정당성을 부여한다.

이 사람들은 그들의 세계관을 옳지 않는 기초에 두고 있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자녀들이 진화론을 믿도록 허용한다면 이것은 자녀에게 부모의 도덕관은 버려도 좋다고 말하는 것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다.

이 그룹은 역시 과학에 대해서도 옳지 않게 이해하고 있다. 다른 모든 그룹과 같이, 그들은 진화론은 과학이라고 믿도록 주입식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개념이 그들의 마음에서 도태 되도록 해야 한다.

이 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이 부모가 되면 다음 세대에게 옳지 않은 기초를 놓아준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다음 세대들은 기독교 도덕관을 모두 폐기해 버리게 된다.

그룹 4에 속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개 그들 일생 동안 교회나 주일 학교에 출석하였을 것이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사회적인 습관의 일환으로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크리스천처럼 행동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실로 거듭난 사람들이 아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에 출석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 하나님이 그들을 천국에서 쫓아내시지 않을 것으로 믿는 경향이 많다.

이 그룹 사람들에게 내가 발견한 것은: 그들은 이 책의 전반부에서 구체적으로 열거한 것과 같은 - 가인의 아내에 대한 것과 같은 - 여러 가지 평범한 질문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사람들이 “성경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지 않는 궁극적인 이유는 교회가 이들이 질문 하는 것에 대해 명료한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몇 년 전에 휘닉스에 갔을 때 70세가 넘은 노인으로부터 지방신문 편집인에게 온 편지를 읽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가인이 어디서 아내를 취하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여 교회에 가는 것을 중지하였다고 했다. 나는 그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그에게 해답을 알려 주었다.18 나의 전화를 받은 그는 어안이 벙벙해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였다. 나는 그가 성경에 대한 그의 관점을 바꾸도록 기도하였다.

나의 친구 하나가 그의 이웃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80세 된 빌에게 틀림없이 어떤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알아보려고 빌의 집을 방문하였다. 빌은 그의 가슴에 고통을 느끼고 있었으며 심장 발작을 일으키고 있는 증후가 뚜렷했다. 그래서 즉각 엠뷰런스를 불렀다. 크리스천인 나의 친구가 몇 달 동안 예수님을 증거하고 빌이 하나님을 믿도록 변증하고 있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었다.

빌이 말했다(이것은 심각한 심장 발작 중에 그가 말한 것임을 기억하라), “만약 당신이 성경을 믿으면 – 가인은 어디서 그의 아내를 구하였습니까?” 만약 당신에게 빌이 한 이 말이 그렇게 심각하게 들리지 않는다면, 이것은 매우 우스운 장면이다. 이 사건은 이들 질문에 대한 대답의 중요성을 나에게 일깨워주었다. 슬프게도 교회는 이들 기초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성도들에게 해주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나는 이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해답 집(The Answers Book)”과 같은 책이 마음을 여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몇 가지 우리들의 비디오(“창세기의 대답(Answers in Genesis)” 세트 혹은 과학을 다루고 있는 다른 것)는 이들에게 큰 도전을 줄 것이다. 이 그룹 사람들에게 비디오를 주면 그들은 가끔 그것을 볼 것이다. 또한 우리들이 만든 증언 책인, “공룡과 성경(Dinosaurs and the Bible), “가인은 어디서 그의 아내를 구했나?(Where Did Cain Get His wife?), 그리고 “진실로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Is there Really a God?)와 같은 책은 그들에게 매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19 이 그룹들과 효과적으로 교제하는데 유용한 다른 자료들도 많이 있다.

그룹 5 – 이 그룹은 4 그룹 사람들의, 대학이나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딸들로 구성된다. 이들에게는 진화론이 사실이다. 대체적으로 이들은 기독교 도덕성을 거부한다. 이들은 난잡한 섹스, 포르노, 그리고 태아 유산이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문화 속에서 성장하였다. 이 그룹에 속해 있는 많은 사람들은 어릴 때 부모에게 학대 당함으로 인한 정서적 문제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을 치유하는 방법을 모른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과거의 문제 때문에 매우 강한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크리스천이 이해하고 있는 것과 같은 진실한 사랑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아담이 창조되기 이전에 수 백 만년 동안의 고난이 있었다는 주장을 믿는다. 그들은 이 모든 것에 대해 종합적으로 판단하지 못한다. 그러고는 한꺼번에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면서 해답을 찾아 울부 짓는다. 내가 세속적인 대학이나 공립 학교에서 강의를 할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 그룹에 대해 걱정한다.

이러한 젊은이들을 위해서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불일치(모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1. 그들은 과학이 과거를 증명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그들은, 역시, 다른 그룹과 마찬가지로, 과학의 본질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내가 이 그룹에게 강연을 할 때, 초반부에, 진정한 과학이 무엇인지? 과학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을 논의한다. 기술을 눈부시게 발전시킨 과학은 그 때 사용한 과학적인 방법을 우주의 기원을 연구하는데 사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 후에는 그들이 듣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2. 그들이 이해하고 있는 것은 진화론이 과학이라는 것이다. 이들에게 창조론과 진화론 모두가 신앙 시스템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야 한다. 그들은 창조론은 종교이고 진화론은 과학이라고 믿도록 교육을 받아 왔다. 이러한 주제는 최근에 죽은 진화론자 스데반 J. 굴드가 개발한 것이다.
  3. 그들은 진화론에 대한 믿음은 전체적인 세계관으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예를 들면, 진화론과 낙태의 관계를 깨닫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앞에서 말한 1과 2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될 때까지는 나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사고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부모님들 그리고 크리스천들과는 매우 다르게 생각한다는 점에서는 “헬라적”이다. 그들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죽음 그리고 고난이 인생의 모든 것의 한 부분으로 생각한다.
  4. 일반적으로, 이 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 가운데서, 자살이 가장 많이 일어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사상적인 기초(비록 이것이 그들의 세계관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때문에 그들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모른다. 따라서 이들은 인생의 영적인 공간을 육체적으로 채워주는 마약과 섹스에 쉽게 중독된다. 습관적으로 교회는 출석하지만 교회가 그들에게 진정한 해답을 주지 못하는 것이다.
  5. 이 사람들은 보통 죄보다 수치심에 이끌린다. 이들은 많은 실패를 인식한다. – 그들은 자기가 나쁜 행동을 한 것을 안다 (로마서에 의하면 그들의 양심이 그들에게 말한다) – 그리고 그들에게 일어난 일로부터 정서적인 상처를 받는다. 대부분이 “더러움”을 느끼지만 어떻게 그것을 “깨끗하게” 하는지 그 방법을 모른다. 그들은 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 없다. 그들은 창세기에서 발견하는 인간의 기원을 이해하고 나서야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이 그룹을 위하여 만들어진 많은 자료들이 있다. 가끔 좀더 기술적인 책을 필요로 할 경우도 있겠지만, 평신도를 위한 책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항상 이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의 결과는 하나님에게 “무익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게 한다. 그들에게 하나님 말씀의 절대성은 방어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창조, 죄와 사망, 부활을 포함하는 완전한 복음을 설명한다. 그리고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일생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그들의 불일치(모순)에 대한 설명을 해주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나타낸다. 그들은 “인생이 무엇인가”라는 명제에 대해서 누가 권위를 가지고 말하는 것을 듣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다.

그룹 6 – 이 그룹은 주로 소위 “학문적인 엘리트”라 부르는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는 세속적인 대학의 교수와 인본주의 그룹의 지도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보통 무신론자 (혹은 적어도 회의론자 – 정말 무신론자로 생활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성경의 하나님을 거부한다. 그리고 이들의 인생관은 반 기독교적(anti-Christian)이다. 내 생각으로는, 그들 대부분이 진화론이 신앙인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은 진화론을 과학이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선천적으로 물질주의에 빠져 들었다는 것을 안다. 그들에게는 도덕은 상대적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생각의 불일치(모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20, 21

  1. 그들은 선과 악에 대한 표준적인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기준이 없는 삶을 살 수는 없다. 좋은 것과 나쁜 것, 선과 악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상당히 도덕적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이 옳다고 정당화하고 있는 윤리관에 대해서 공격을 할 필요가 있다. 결국 그들은 절대적인 것이 없으면 여러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서 결론을 낸다. 만약 그들이 절대적인 선 같은 것이 없다고 주장하면,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주장할 수 있는지를 반문해 보라.
  2. 그들은 진화론을 절대적 사실로 가정한다. 그러나 거기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서 안다는 것이 모든 것에 대해서 안다는 것을 의미할 때에만 이것은 사실일 수 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지식에는 한계가 없다고 가정한다. 그들은 이것에 대해서 충분히 생각해 보지도 않고, 실재적으로는 그런 것처럼 이야기한다. 따라서 그들을 이것과 관련된 문제와 대면 시켜 볼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이렇게 물어보라: “당신은 하나님이 없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할 모든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궁극적으로 그들이 이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동의해야 한다. 이것이 그들과 같이 창조론 문 안에 발을 들여 놓게 되는 첫 단계이다.
  3. 그들은 과학을 진화론으로 다시 정의하였다. 과학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사람들은 그들에게 과학의 의미를 신중하게 정의해 달라고 질문하곤 한다. 모든 다른 그룹의 사람들과 같이, 그들은 진화론을 과학과 동등하게 취급한다. 그러나 진화론은 우리들에게 기술을 제공하는 과학일 수 없다. 이들에게는 다른 그룹의 사람에게 적용한 것과 같은 과학 철학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4. 그들은 진화에 대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질론적인, 기계론적인 진화론은 작동되지 않는다. 훌륭한 과학자들이 이러한 주제를 상세하게 다루었으며 그 내용을 책으로 발간하였다.22
  5. 진화론을 잘 설명하는 물질적인 메커니즘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이것을 작동시키는데 무언가가 부족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래서 이 시스템에는 최초에 정보를 부가할 초자연적인 지능이 필요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게 되었다. 그들은 성경의 하나님을 초자연적인 지능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나님 대신에 신화적인 요소를 선택할 것이다. 이러한 견해가 우리 문화 속에서 폭발적으로 대중화 될 것이다.
  6. 진화론 메커니즘의 부족 때문에, 그들은 완벽한 기초를 다음 세대 (학생, 혹은 전체적인 사회) 에게 제공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음 세대는 이 간격(gap)을 메우려 할 것이다.

위의 4 번에서 참고 문헌으로 열거한 것들은 이 그룹의 사람들과 효과 있게 교제하는데 있어서 극히 중요한 참고 자료이다.

그룹 7 – 나는 이 그룹을 우리 문화가 나아가는 방향을 나타내는 그룹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제일 전도하기 어려운 그룹이다. 이 사람들은 대학교와 공립 교육이 생산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방이나 국가 정부기관의 권력의 자리에서 이제 막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다. 6 그룹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므로, 이들에게 요구되는 예를 들면, “우주는(혹은) ‘신’이다”라는 것과 같은 신화적인 요소를 스스로 제공한다. 이것이 뉴 에이지 종교의 모든 것이며, 오늘날 세상을 휩쓸고 있다. 이것은, 물론, 어떤 관점으로는 힌두교의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서구 문화 안에서 탄생되었기 때문에, 이것을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물론 뉴 에이지 운동에 관하여 쓴 기독교 책이 많이 출판되어 있다. (그러나 모든 책이 그렇게 유용하지 않으니까 잘 구별하여야 한다.) 이러한 그룹과 교제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배워야 할 것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재로는 진화론이 이들 사고의 기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5 그룹과 6 그룹에서 적용한 것과 같은 기본적인 논증을 여기서도 적용할 수 있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진화론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면 그들도 도전을 받을 것이다. 물론 올바른 길이 제공되면 언제든지 “본성”으로 복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논리적으로 수긍하게 되어야 한다.

이들을 위해서는, 이들 생각의 불일치(모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 만약 “신”이 자연이라면, 그러면 어떻게 “신”이 선과 악의 양면을 가지며, 건강과 질병, 그리고 기쁨과 고난의 양쪽의 특성을 모두 가질 수 있는가? 우주에는 모순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매우 모순적으로 보인다. 성경 만이 왜 그렇게 되어야 하는지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성경은 악의 기원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죽음이 존재하는 이유도 설명해 준다. 이 그룹의 사람들은 초월적인 일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성경을 사용하여 권위 있게 논증하면, 때로는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당신이 말하는 것을 수긍하면서도, 그들이 그 당시 믿고 있는 것을 버리지 않는다. 진리를 상대적이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 속에서 일관성 없게 살아간다.

2. 헬라 사람들 같이, 신을 창조의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궁극적인 원인에 대한 논쟁이 중요하다. 다시 언급하거니와 초월적인 정보 제공자에 대한 이슈를 사용하여 창조주는 창조의 한 부분이 아니라는 사실과, 하나님은 천지 창조를 하셨지만 창조 권 밖에 계시다는 사실을 방어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 중 다수는, 사람과 동물 사이에 실재적인 구별이 없다고 하는 진화론적 믿음의 기초 위에서, 활발하게 동물의 권리를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며 어떤 동물도 죽여서는 안 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들이 숨쉴 때 미세한 생물을 죽게 하는 것을 염려하여 마스크를 쓰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세상에서 창조물(생물)을 죽이는 것을 피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의 또 하나의 불일치(모순)이다. 누가 박테리아는 개보다 더 혹은 덜 중요하다고 결정지을 수 있는가? 미세 유기물이나 벌레가 돌연 변이를 일으켜서 새로운 진화의 연속을 이끌어가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 실제로, 모든 진화론자들의 의견이 일치했으면, 그들은 “촌충 보존학회”와 같은 운동을 벌였어야 했다. 한 유기물이 우리들에게 불편한 질병을 유발시킨다고, 우리가 그것을 죽일 수 있는가? 진화론적인 관점의 장대한 계획안에서는, 그것을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인류는 죽어 없어지고 어떤 것이 진화하여 사람보다 더 높은 위치로 진화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진화론자들을 부추겨서 그들의 전제 사항에 대한 논리적인 결론을 촉구한다.



3. 많은 동방 종교와 같이, 전통이 이성을 지배한다. 당신이 어떤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설득해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는 항상 그들이 들은 것을 무효화 해 버린다. 그러나, 이 책의 앞에서 논의하였듯이, 우리는 그들과 최선을 다하여 논쟁하여야 한다. 그리고는 그들을 확신 시키고, 회심 시키는 일은 성령님께 맡겨야 한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 할 때에는, 그리고 질문에 대답할 때에는, 예수님이 하신 것과 같이 요령 있는 질문을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항상 그들이 가지고 있는 논리 속에 들어 있는 불일치(모순)의 개념을 생각해야 한다. 그 다음 그들에게 모순의 개념과 관련 있는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만약 그들 자신의 불일치(모순)를 알아 보는 사람을 만나면, 접근하여 그들의 입장을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도전을 주어야 한다.

어느 세미나에서, 한 젊은이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나는 무신론자입니다. 무신론자로서 나는 어떤 절대적인 것도 믿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실재로 절대성을 확인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내가 여기 있는 것도 증명하지 못하겠는걸요.”

“그런 경우이면 왜 당신은 나에게 질문을 하는 겁니까? 질문 할 필요가 없지요” 나는 대답하였다.

“좋은 지적입니다” 젊은 청년이 말했다.

“무슨 지적?” 나는 말했다.

“나는 집에 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가 말했다.

“여기에 당신이 없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나는 반박하였다.

“좋은 지적입니다.”그는 대답했다.

“무슨 지적?” 나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다른 세미나에서, 한 젊은이가 나에게 와서 말했다. “나는 앉아서 당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진화론과 빅 뱅(big bang)을 믿습니다. 나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아직까지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에게 대답하였다. “만약 당신이 우연하게 진화되었다면, 당신의 머리도 우연하게 진화되었다 – 그러면 당신의 논리적인 과정도 우연하게 진화되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당신은 당신의 논리가 올바른 방법으로 진화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청년, 그러면 당신은 당신이 지금 나에게 올바른 질문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른다.” 그의 대답은? “나에게 방금 당신이 추천한 책의 제목을 말해 줄 수 있습니까?”

간증

어느 인류 고고학 시간에, 나의 선생님이 흑판 위에 이렇게 썼습니다: 창조론(믿음에 기초를 둔 이야기) – 진화론(사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진화론은 사실로 받아 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그 이론은 아직 연구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말하였습니다. “나는 사람은 심하게 변덕스럽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두뇌는 자란다. 그래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수업이 시작되는 첫째 날, 같은 선생님이 나의 친구 반에서 말하였습니다. “만약 너희들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잊어버리는 게 좋다 –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내가 과거에 경험한 몇 가지 사건에 불과합니다. 나의 가족은 “기술 저널(Technical Journal)” 이라는 잡지와 “창조론(Creation)”이라는 잡지를 구독합니다. 나는 당신이 나의 일생에 끼친 큰 영향을 단지 당신에게 알리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내가 성경의 타당성과 창조론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나는 이제 이 주제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가 있고 사회의 관점과는 다른 관점을 이야기해 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름 동안, 나는 유스(youth) 그룹 캠프를 섬겼으며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질문을 통하여 그들과 접촉하였습니다. 당신이 하시는 일이 매우 가치 있으며 나의 일생을 변화시켰습니다. 계속 훌륭한 일은 많이 해주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감사합니다.

J. K., 미시건

오늘 나는 나의 아들 다윗이 그의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 책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기도를 듣고 천국의 천사들과 기뻐하였습니다. 다윗이 그의 이름이 거기에 기록되어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기까지 우리는 “A는 아담을 위한 것(A is for Adam)”이라는 책을 3 번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서 다윗의 성경 책 앞면에 기록 해 놓았습니다.

우리는 AiG(Answers in Genesis)에서 발간하는 의 책과 비디오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K. H., 호주

제 12 장 세대 간의 간격

교회에게 다시 한번 도전을 주기 위하여, 7개의 주요 그룹에 대해서 다시 한번 검토해 보기로 한다. 그러나 약간 다른 방법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나는 이 중요한 핵심 점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미국(왜냐하면 미국은 기독교 국가로 출발했기 때문)을 예로 든다.

그룹 1 - 대부분의 미국의 헌법 제정자들은 여기에 속한다. 아마도 몇 세대전의 미국의 대부분의 크리스천들도 이 그룹에 속했을 것이다(속하여야 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진화론적인 가르침에 영향을 받기 시작했으며 수 백 만년 설을 믿게 하는 가르침을 받았다. 점점 사람들은 2 그룹과 3 그룹의 사람들처럼 되었다.

이제 기독교 신앙의 근거(foundation, 기초)가 타협되고, 기독교 구조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성경과 그들의 생각 사이의 연결이 제거되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 몇 세대는 타협된 근거와 부합되거나 혹은 원래의 기초와의 연결에 금이 가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4 그룹과 같이 되었다.

이 그룹은 성경과의 모든 연결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아직 어느 정도의 기독교 사고 방식을 유지하려고 애를 쓴다. 이들의 자식들은 부모들이 가르쳐준 근거에 부합되는 사고 방법을 확립한다. 그래서 이들은 5 그룹에 도달한다.

이 그룹은 다음 세대를 가르치기 위한 교수와 지도자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들은 기독교식 사고 방식에서 완전하게 떠나간다. 그래서 6 그룹이 모든 대학과 칼리지를 접수한다.

그 다음 세대들은 6 그룹들이 대학과 그들의 일생을 책임을 질 운동력(그것을 작동하게 만드는 지성)을 갖지 못했다 (이것은 그들이 보기에는 불일치(모순)이다.)고 생각하고 7 그룹인 뉴 에이지 운동으로 옮겨간다.

이 그룹은 복음 메시지로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들은 하나님 말씀의 기본을 완전하게 잃어버린 막다른 골목에 이른 상황에 있다.

여기서 위의 결과를 가족에게 적용시키는 2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1. 어떤 면으로 보면 가족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증 조부님 - 그는 1 그룹에 속했다. 그렇다. 그러나 그의 자녀들은 2 그룹이나 3 그룹에 속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자녀들은 4 그룹에 속하였다. 그 다음 세대는 5 혹은 6 그룹에 속한다. 증 손자를 보라 (7 그룹) - 그는 산에서 크리스털발신 라디오를 가지고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 – 진정한 뉴 에이져(new ager)이다. 이것은 미국이나 서구 국가들의 문화에 일어난 것이다.

2. 얼마나 많은 기독교 학교가 설립자의 믿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가? 매우, 매우 적다. 사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순서를 밟고 있는 것이다. 나는 크리스천이나 교회에 의해 설립된 대학은 현재 7 그룹의 하나로 분류될 수 있다고 믿는다. 7 그룹이 되기 위한 길을 잘 걸어오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벌써 6 그룹에 도달했다.

그러면 이 변화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물론 여러 가지 복잡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권위가 진화론적인 가르침(사람이 계시와는 무관하게 진리를 결정하는 것)에 의해 오염이 되어 점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과 타협하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

내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만약 성경이 하나님이 6일 동안 창조하였다 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는대 - 그렇게 말하고 있다 - 한 신학자는, “날(day)”을 “수 백 만년(millions of years)”으로 해석한다. 이것은 문에서 빗장을 제거한 것과 같다. 그 신학자는 그의 학생들에게 하나님 말씀에 오류가 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의 부식이 시작되었다!

창세기로부터 시작하는 성경의 기초를 세속적인 과학의 가설과 타협하는 대학(이것은 슬프게도 대부분의 대학의 상태이다.)은 기독교 사고는 어떤 것이라도 모두 파괴하는데 앞장서는 불신앙의 미끄럼 판 위에 있는 것과 같다. 나는 이것을 실재적인 세대 차이로 본다.

이것은 정말 우리를 힘 빠지게 하며 우울하게 한다. 이러한 풍조의 방향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근본적인 변화를 이해하고, 이것을 돌이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방법을 사용할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진화와 타협의 산은 매우 높다. 그러면 이미 때는 늦었는가?

나는 전에 이런 이야기를 했다. “만약 당신이 차 숟가락으로 광산을 파는 작업을 시작했다면 당신은 서서히 작은 구멍을 뚫게 될 것이다. 그런데 수 백 만명이 동시에 시작했다면 그 구멍은 순식간에 어마 어마하게 커질 것이다.” 현대의 창조 과학 운동의 나이는 약 3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세계 전역에 걸쳐 진화론과 타협의 기초를 파 없애는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이것이 큰 차이를 만들고 있다.

우리들 대부분은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다. 거의 3,000여년 전에 일어난 그 전투에서 짐승 같이 큰 몸통을 가진 골리앗은 다윗이 그에게 나아오는 것을 보고는, “그를 경멸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젊고,붉고 용모가 아름다웠기 때문이었다.”(삼상17:42). 다윗의 반응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결과는? 그 거인은 살해되었다.

우리는 AiG(Answers in Genesis, 창세기의 대답)와 같은 사역에 대항하여 도전하는 “거인” 이나 문자적인 창세기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개인을 보면 절망하고 기가 죽기 쉽다. 그러나 용기를 내라. 왜냐하면 골리앗과 같은 장사도 하나님의 도움으로 물리칠 수 있다. 그럼 여기서 2가지 종류의 “거인”을 생각해 보고 성경적인 관점에서 조명해 보자.

1. “비-기독교(Non-Christian) 거인” - 여기에는 뉴스미디어, 세속적인 대학과 칼리지, 인본주의 기구(조직), 정부, 등이 포함된다. 이들이 거대한 선전 기계를 사용하여 수 십억의 사람들에게 진화론 철학을 주입시키는 것을 보면 쉽게 절망하고 용기를 잃기 쉽다. 우리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 그리고 세계적으로 알려진 전문가들과 싸울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우리는 각자가 다윗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들 지적인 “거인들” 과 우리를 비교하면 어린 아이와 같이 느껴진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이 하고 있는 것과 싸우기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가?

2. “기독교 거인” - 창조론 메시지는 비-기독교(non-Christian)인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으로부터도 반대 당하고 있다. 잘 알려진 신학 대학내의 많은 교수들이 많은 크리스천들이 지지하는, 직설적인 창조론자의 입장에 반대하는 책이나 논문을 쓰고 있다. 평범한 크리스천들은 이런 훌륭한 자격과 위치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 학자가 쓰는 글 때문에 위협을 받는다. 사실, 많은 크리스천들은 이들의 말을 듣고, 이들의 “학식”에 감동되어 이들이 말하는 것을 수용한다.

그들의 세속적인 동료 학자들로부터 존경이나 인정 받고 싶은 욕망이 우리의 기독교 대학이나 교회내의 많은 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 같다. 비기독교인 지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유혹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에덴동산의 뒤 편에서 죄가 하나님의 형상을 더럽힐 때, 죄는 사람의 생각하는 능력에도 역시 흠집을 남겼다는 것을 잊어버릴 때가 가끔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할 것은 우리가 세인의 존경을 받기 원하는 것은 이런 죄성이 있는 정신 상태 때문이 아닌가? 혹은 우리가 이런 정신 상태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을 추구하는가?

고린도후서 11장 3절에서, 바울은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 할까 두려워 하노라” 라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가끔 창세기를 기록된 대로 수용하는 것, 즉, 그대로 읽는 것, 은 너무 순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대신, 그 시대의 대학들이나 신학자들이 말하는, 실재로 그것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설명을 들어야 한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이 문제에 대한 아주 좋은 예가 있는데 그것은 일리노이주에 있는 휘튼대학 생물학과의 패틀 P.T. 펀 박사가 쓴 글이다. 그는, “과학이 제안하는 모든 해석적인 고려는 차치하고(저자 강조 부분), 성경의 기록을 가장 빠르게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이 태양계의 6 일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셨고, 6 일째 되는 날에 사람이 창조되었으며,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 죄와 혼돈이 세상에 들어왔다는 것과, 모든 화석은 노아 가족과 배에 탄 짐승들만이 살아 남게 한 전 세계적인 대격변의 홍수에 의한 것을 믿는 것이다.”1

펀 박사가 말하는 것은, 물론, 창세기를 올바로 읽는다는 것은 그것이 말하고 있는 것을 정확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이것은 문자적인 6 일간의 창조를 가르치며, 타락과 홍수를 가르친다. 그러나 그가 한 말 중 우리가 강조한 부분을 주시해 보면 오늘날의 세속적인 과학자들이 이 주제에 대해 말을 하며, 성경을 자기들 이론에 맞춰 다시 해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인 우리를 부르셨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신다 - 사람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찬양하라. 풍부한 학식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창세기 기사를 수용하고, 다윗의 가슴을 품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가 지혜의 시작이고 지식의 근원임을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의 적들이 고함치고 헛소리 하게 하라.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거인들”을 두려워 하지 말자. 결국 현재 다수의 과학자들과 신학자들이 무엇을 말할지라도 올바르게 해석된 증거는 우리의 편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쉽게 이해되는 증거들을, 자칭 ”거인” 들에 의해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있는, 대중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의 말씀을 믿으면, “거인”을 패배 시킬 수 있다.

창조론 전도(Creation evangelism) - 오늘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가장 능력 있고, 필요한 전도의 도구이다. 다음 장에서는 “거인”이 패배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용기와 희망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간증

우리는 당신의 사역에 대해 감사합니다. 창조 과학은 나의 남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자택 학습 부모로서 자녀를 진화론적인 세뇌 공작으로부터 보호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녀들은 “창조(Creation)” 잡지를 좋아합니다. 우리가 “사용한” 책은 교회 도서관으로 보내어 다른 사람들을 건전하고, 매력적으로 표현한 가르침에 접하게 하고 있습니다.

J. G., 오레곤

제 13 장 요점을 신화화 하기(“Myth-ing” The Point)

당신은 진화론이나 수 백 만년 설에 대한 주제가 나오면 엄청난 감정적인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왜? 이것은 적들이 이것을 그들 싸움의 기지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이 전투가 생기는 장소이다.

수 년이 흐른 후에도 아직 기독교 공동체가 남자, 여자, 어린이들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전투의 방향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

내가 전에 언급한 바와 같이: “창세기의 대답(Answers in Genesis)”과 같은 사역은 분리적이라는 비판을 가끔 받는다. 그러나 나는 성경의 근본적인 기초 부분이 진정한 열쇠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성경이 가르치는 문자적인 6일 창조에 동의하지 않으면, 만약 수 백 만년 설에 우리가 영향을 받는 것을 허용하면, 그리고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경을 읽지 않으면…바로 창세기 1장에 쓰여진 것, 우리는 전투에 지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우리는 성경을 심각하게 취급할 필요가 없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은 바로 전투에 지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타협은 재앙으로 치닫는 문을 여는 것과 같다.

은퇴한 성공회 주교 요한 셀비 스퐁은 그의 자서전에서 그의 영적인 “진화론”의 조감도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비참하게도, 이 사람이 신앙을 잃어 버린 것은 다른 많은 사람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이유는 스퐁은 미디어를 통하여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복음주의 목사들은 십자가의 메시지를 설교하지만 그들 교회의 젊은 성도들은 대학 캠퍼스에서 스퐁과 같은 사람들을 만날 것이다. 또한, 텔레비전에서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Politically Incorrect)” 것과 같은 프로그램에 접할 것이다. 거기서 그들은 성경 전체를 찢어 버리게 될 것이다. 스퐁은 성경 구절을 대담하게 해부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는 태아 유산, 동성 연애, 그리고 성경을 재해석하는 것을 방어하고 주장한다. 이 주교는 동정녀 탄생과 부활을 믿지 않는다. 더구나 이 주교는 신약 성경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으로 “인용”한 것들은 실재로는 사도들이 조작한 것이라는 아주 과격한 학자들의 논쟁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면 스퐁은 어떠한 경험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는가를 살펴 보자. 신학교 학생으로서 제일 처음 어디에서 성경과 기독교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는 사건과 직면 했을까?

스퐁은 그의 동물학 시간에서의 경험을 기술한다. 그의 선생님은 크레이본 죤스였다. 스퐁에 의하면 그 교수는, “내가 처음 만난 다윈주의 크리스쳔”이었다.1 처음에는, 젊은 스퐁은 성경을 방어하는 쪽이었다.

“수업 시간 중에 내가 다윈의 이론에 대항하여 문자적인 창조 이야기를 방어하려 하면, 크레이본 죤스 교수는 정중하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 싸움에서 졌다는 것을 알았다.”2

이 책의 나머지 부분은 정통 기독교 신앙을 버린 한 사람이 작성한 섬뜩할 만한 보고서이다. 그는 그의 지위를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같아지도록 고무시킨다.

창세기 1-11장의 역사는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근본적인 기초이다. 만약 당신이 기독교를 제거하기를 원한다면, 무엇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 같은가? 가장 좋은 길은 역사를 제거하는 것이다. 한번 역사를 제거하고 나면, 그것은 기초로부터 떨어져 나와서 뿌리가 없는 “공중에 떠 있는 파이”와 같은 신앙이 되어 결국 붕괴될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일어난 것을 정확하게 이야기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문화는 후기-기독교 문화인 것이 거의 분명하다. 몇 세대전과 비교해 보면 강간, 횡령, 부정, 극악한 살인 - 이런 것들과 더 많은 나쁜 일들이 급격하게 퍼지고 있다. 진정한 이유는 우리들의 기초가 훼파되고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들이 세상 문화 속으로 들어 가서 “태아 유산은 나쁘다, 동성 연애습관은 나쁘다”라고 말하면 세상은 당신에게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그들은 말한다. “당신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이제 그런 케케묵은 ‘율법’은 나에게는 통하지 않지.”

그러나 우리는 교회에서 기독교 도덕을 설교하고 있다. 세상은 연결과 단절을 이해한다. 만약 성경이 부분적으로라도 진리가 아니라면, 기독교 신앙은 아무에게도 희망을 주지 못한다.

미국의 인기 있는 토크 쇼의 진행자 래리 킹은 ”세계(World)” 라는 잡지에 흥미 있는 말을 하였다. 그가 성경에 대해서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분명하게 아무도 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 그를 도와주지 않았다.): “구약의 하나님, 나는 그가 한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나는 ‘왜 그는 아브라함에게 자식의 희생을 요구 했는가?’라고 늘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에게, ‘나는 모르겠다. 정말 나는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오늘날도 나에게는 아직 질문으로 남아있다.”3

래리 킹에게 대답을 해 주어야 한다! 진실은, 지금 거의 모든 문화가 래리 킹을 닮았다는 것이다. 수 백 만명이 평화를 찾아서, 그들의 문제에 대한 대답을 찾아서, 걸어 다니고 있다

오늘날의 교회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교회는 세상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나 평신도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이슈는 다루기 싫어한다.

미시시피 주 연합 감리 교회 주임 주교인 케네스 카티는 이 복잡한 문제를 교단의 사도 이사회에서 이슈화하였다. 카터는 미시시피 주의 “과거에는 유명했던” 교회의 성도 수가 1세기가 지나는 동안 1,000명에서 17명으로 줄었으며 지금 그 교회는 문을 닫았다라고 말했다. 연합 감리 교회의 뉴스의 기사에 의하면: “공식적인 연합 감리교의 자료, 찬송 그리고 교육 과정을 사용하고, 전도×상도 받은, 감리교의 중심인 교회가 왜 문을 닫아야 했는가? 무엇을 빠뜨렸는가? 그의 대답은 교회가 변화의 가장 자리에 서서 변화의 중심에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하지 못했다라는 것이었다”4

아니다, 그 교회는 정확하게 앞에서 말한 이유 때문에 문을 닫았다: 그 교회는 연합 감리교회의 자료, 교육 과정을 사용하는 감리교회의 중심이었다.”

나를 오해하지 않기 바란다: 나는 연합 감리교회를 지적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중요한 핵심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당신이 만약 개인이든지, 교회 혹은 교단이면서, 당신이 문자적인 6 일 창조에 동의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전투에서 진 것이다. 당신은 문자적으로 당신의 교회를 잃었다.

다음과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 보라. 만약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그리고 부활이 역사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이라면,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문자적인 에덴 동산의, 문자적인 사람인 한 사람의 후예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주류에 속해있는 교회는 이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내가 선교 여행을 하면서 연설을 할 때, 창세기가 은유라는 말을 하는 기독교지도자와 이야기 하게 되면 매우 침울하게 된다. 만약 창세기가 은유라면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은유이다. 만약 이것이 은유라면 성경에 나오는 족보는? 신약 성경과 역대기에서, 당신은 무언가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실재적인 인물들의 모든 족보들을 따라 내려오면 곧 그리스도에게 도착한다. 그래서 당신은 내게 말한다: 이 실재적인 인물이 다른 실재적인 인물로 연결되는데.…이것이 은유라고?

이것이 오늘날의 현대 교회가 세상에서 상처를 입고 해답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주는 고통스럽고, 뒤엉킨 메시지이다. 많은 사람들이 현대 교회가 그들에게 그렇게 고통을 주는 동안 참고 견디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 까지 하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학문이 지난 수 백년 동안 우리 교회에 영향을 미쳤는지 아는가?

18-19세기에는, 새로운 지질학 분야가 오래된 지구 나이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시작 했으며 이것이 성경의 내용을 훼손하였다. 슬프게도 이 새로운 철학을 감싸는데 힘을 쓴 사람이 성직자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슬픈 결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해설자의 성경(The Interpreter’s Bible)”은 주요한 교회에 파도와 같이 밀려온 주석서 인데, 이것을 저술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창세기가 신화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분류하였다. 젊은 잭 스퐁에게 영향을 미친 왈터 R.보위 같은 사람은 성경이 바벨론 신화에 영향을 받았다는 매우 불경스러운 개념을 소개하였다. 이러한 가르침은 기독교 신앙을 강력하게 공격하는 포문을 연 것이다.

이러한 서적들은 부풀게 하는 효모를 현대 교과 과정에 넣는 것과 같은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많은 교회들이 미시시피 주에 있는 교회와 같이 문을 닫을 때 우리는 놀라야 하는가? 만약 교회 지도자들이, 기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의 전체적인 생명-변환 메시지가 뿌리 내리고 있는 기독교 역사가, 켐프 파이어(camp fire) 주위에서 하는 이야기와 같이 진실성이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우리가 교회에 출석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해설자의 성경(The Interpreter’s Bible)”같은 책은, 우리에게 창세기 1-11장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이 교회의 회원 수와 출석자 수를 빠르게 감소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창세기”와 죄를 역사적으로 연결하지 못하면, 그 결과는 쉽게 예상할 수 있다.

1998년에 한 AP 통신 기자가 무의식적으로 이 사실을 나타내었다. 클린턴 대통령 내외가 출석하는 워싱턴 DC의 파운드리 연합 감리교회의 예배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기사가 나온 것이다.5

백악관 인턴과의 스캔들 때문에 세상이 들끓고 있던 가운데, 빌 클린턴은 필립 보가만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다른 교구민들과 함께 예배 드리고 있었다. 여러 영적 싸움터에서 자유주의적인 발언으로 문제를 많이 일으킨 보가만 목사는 대통령을 변호하였다. 어이없게도 보가만 목사는 창세기를 언급하면서: “이 주일에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났습니다. 누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이 성경에 대해서 학구적인 설교를 할 때입니까? 성경은 사람에 대한 것이고, 인간애에 대한 것이고 그리고 인간애 안에서 사람들에게 직접 명령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에 의하면, “보가만 목사는 성경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과 문자적으로 생각하는 것의 차이를 도출하려 한 것 같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반영하고 있는 진실은 이야기 속에서 주어진 문자적인 사실이 아니고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것이다.” 혹은 보가만이 말한 바와 같이, “사실과 진리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유명한 종교 지도자가 이와 같은 논리를 가지고 있으니, 도덕적인 상대주의가 문화를 감싸고 있는 사실에 우리가 놀랄 필요도 없다.

주류에 있는 교회 지도자들은 창세기를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도덕적인 영향을 끼치는 그들의 위치까지도 잃게 된다. 1990년대 중반에 연속적으로 행해진 인터뷰에서 텔레비전 프로듀서 휴 헤위트는 오늘날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과 만났다. 그 중 특별히 놀랄만한 것은 “감옥 페로십(Prison Fellowship)”의 창시자인 챨스 콜슨과의 인터뷰였다.6

인터뷰 도중에, 헤위트는 물었다. “창조 이야기-7일간-당신은 믿습니까?” 콜손은 아주 이상한 대답을 해대는 것이었다: 성경은 다른 여타 책과는 같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책을 읽는 것과 같이 읽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화는 우화입니다. 시는 시입니다. 은유는 은유입니다. 풍유(비유)는 풍유(비유)입니다. 당신이 주의 해야 할 곳(그리고 학자들은 여기에 시간을 많이 소비하고 있습니다.)은 교훈적인 가르침은 교훈적인 가르침으로 읽고, 역사적인 사건은 분명한 역사적인 사건, 우화는 우화로 읽어야 합니다. 성경이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언한다고 할 때, 우리는 하늘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이와 동일한 표현 법을 현대 미국 언어 속에서도 사용합니다. 우리는 산이 그들의 손으로 박수를 친다고 합니다. 우리는 또 해가 뜬다고 합니다. 그러나 해가 뜨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압니다. 그러나 그것은 말의 수식, 즉 비유적 표현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러한 사람들이 이해 할 수 있는 비유적 표현으로 읽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은 특별하게 7일에 대해 물었습니다. 아니오. 나는 그것이 7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나는 그것이 7일이든 7시대이든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보다시피, 콜손은, 좋은 의도로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문의 빗장을 딴 것이다. 그는 성경 밖에서 세워진 전제-가정을 사용하여 하나님에게 철두철미하게 반역하는 적들에게 긴 시대(long ages)에 대한 생각과 믿음을 허용하였다. 콜손의 역사관은 긴 시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으며 그의 역사관은 이 방면에서 성경에 접근하는 방법론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헤위트의 다음 질문은 왜 하나님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을 허용하고 슬픔을 만드는가? 였다. 콜손의 대답은: ”나는 모릅니다.”였다.

어떻게 그가 이런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이 긴 시대 이론을 믿으면,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죽음과 고난이 아담의 죄 이후에만 세상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과 실재적인 세상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다. 세상은 이것을 보고 있으나 교회는 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이 많다는 것이다. 항상 그랬듯이, 나의 생각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진리의 원천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책 이사야서의 66장 2절을 보면,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읽을 수 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화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 하려니와.

하나님 자신이 성경 말씀을 정당하게 공경하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만약 우리가 진실로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면, 우리는 그의 말씀을 바꿀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인식하게 된다. 슬프게도, 이러한 일이 교회에서 실재적으로 많이 일어나고 있다. 사람의 정확하지 않은 생각이 성경에 첨가되면 교회는 많은 부문에서 무기력하게 되어 버린다. 처음 잘못되는 단계는 창세기를 “재 상상화(re-imagining)” 하는 것이다; 이 단계 이후에는, 세상은 우리들의 위선을 보고 교회와 성경공부 그룹을 떠나 다른 종교나 다른 탐구 속에서 의미를 추구할 것이다.

아마 당신이 목사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특수한 소명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안다. 이 일은 매 순간마다 매우 힘이 드는 일이다. 당신이 아주 작은 교회를 섬기면서 분투하고 있든지 혹은 혼란 속의 거대한 교회를 섬기면서 분투하고 있든지 간에 나는 당신이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기를 권유한다. 당신의 사무실에서, 창조론 전도를 사용하는 것을 고려하면서 기도해 보시라. 나는 당신의 모든 문제가 사라지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성경의 사람이라면, 성경이 우리의 바위라면, 우리는 부끄러워하지 말고, 진리의 표준인 성경에 의지 해야 한다. 모든 분야에서 당신의 생각의 기초를 형성하라. 그리고 당신의 회중을 그 길을 따라서 인도하기를 시작하라.

우리가 누구일지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에 질문 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들의 신의는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 혹은 계획, 프로그램, 그리고 단순한 사람의 생각? 누구에게 우리는 떨고 있는가?”

제 14 장 승리의 장 !

구원의 증언, 변화된 삶, 그리고 개인적으로 충격 받는 이야기.

창조론 전도의 결과:

창세기의 대답(Answers in Genesis) 귀하:


당신의 하나님에 대한 충성과 하나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방어에 충성을 다해 주심에 대하여 감사 드립니다. 나는 종교적인 침례교인 이었으며 지질학 학사 학위를 가진 진화론자이었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위장된 회심자였습니다. 현대 창조론자들의 운동에 감사 드립니다. 이제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성경의 모든 내용을 신뢰하도록 일깨워 주는 소명을 잘 감당하는데 감사를 드립니다.

E. C., 크레이톤 북 케로라이나

나는 올해 아이오와 대학에서 창조론 기구를 조직하였습니다. 우리는 “진화론: 사실인가 신앙인가(Evolution: Factor or Belief)”라는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적당한 숫자의 청중이 모였으며 6명의 열렬한 진화론자들도 참여하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좋아하지 않은 것들이 나오면 “여보세요, 잠깐” 이라는 소리로 딴지를 걸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2명의 진화론적 무신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메시지와 스타일을 매우 좋아 합니다. 당신 조직을 위하여 위성 그룹을 만들어 볼까 생각 중입니다.

T. B., 아이오와

나는 진화론이 거짓이라는 것을 확신한 결과로 구언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읽게 되었고 그 다음 성경의 나머지 부분을 다 읽었습니다.

R. L., 캘리포니아

당신이 사역하는 모든 위대한 일에 감사 드립니다! 나는 생물학을 전공하는 학생인데 지속적으로 진화론 이론으로부터 폭격을 당합니다. 나는 내가 당신의 사역을 라디오를 통해 만날 때까지 나의 신앙이 무척 손상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당신의 사역은 성경을 믿는 높은 교육 받은 기독교 과학자를 나에게 노출시켜주었습니다. 이러한 만남은 나의 신앙을 회복시키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나는 특히 캔 함과 뉴 멕시코에서 온 물리학자가 창조론을 방어하는 내용의 카세트를 즐겨 들었습니다. 진화론에 정면으로 대응 하심과 그래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J. S., 미시건

러시아어로 된 책을 기부해 주어 감사 합니다. 우리는 4년 동안 인디아나폴리스의 러시아계 유대인들을 전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구원 받는 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어제, 두 사람의 러시아계 유대인이 메시아를 영접했습니다. 다시 감사 드립니다.

L. C., 인디아나

나는 현재 케이프 타운 대학의 학생입니다. 그리고 캔 함과 게리 파커 박사의 “창세기의 대답(Answers in Genesis)” 비디오 시리즈를 구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하고 있는 일들은 1994년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는데 매우 유효한 수단이었습니다.

J. L., 남아프리카 공화국

안녕하십니까. 나는 레오날드에 삽니다. 나는 당신이 뉴스 레터를 보내 준데 대해 감사 드립니다. 그것은 진실로 나의 생활을 변화 시켰습니다. 나는 크리스천이나 하나님 혹은 어떤 종교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보내준 뉴스 레터를 받은 후부터 나는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기독교 음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나의 일생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리고 “젊은 증언자”라는 프로그램에 참여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목표를 이루게 도와주신 당신에게 감사 드립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겠습니까? 대단히 감사하며 당신과 AiG(Answers in Genesis)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 하겠습니다.

H. E., 텍사스

당신에게 2년 전 내가 리버풀에서 집필한 진화론 이론에 반대하고 창조론에 찬성하는 기사가 실린 BBC “야생 생물(Wildlife)” 이라는 잡지를 보낸 후 당신은 나에게 “창조론 기술 저널(Creation Technical Journal)” 을 보내주면서 내가 이겼다고 지적해 주었습니다. 옳습니다. 나는 그것이 내가 구원을 얻기 시작하는 첫 단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제 젊은 지구/문자적 6일을 지지하는 창조론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P. S., 영국

나는 캔 함의 강의와 책의 내용을 기초로 하여 교회에서 젊은 그룹을 위한 발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는 진화론이 사실이고 성경은 단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학생들에게 가르친 생물 교사에 의해서 믿음을 빼앗겨 버린 젊은이들에게 다가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사역에 감사 드립니다.

당신은 전에는 진화론자이며 무신론자였던 나의 약혼자가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가 지난달 보이즈에서 있었던 캔 함의 강연을 듣고, 마지막 질문에 관한 대답을 들은 후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목사님에게 결혼 전 카운슬링을 받고 있습니다.

T. C., 아이오와

우리는 당신의 자료와 인터넷 홈페이지[www.AnswersInGenesis.org]를 사랑합니다. 나는 여기서 여러 가지 기사를 발견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 할 수 있었습니다.

B. N., 부 목사

나의 형제 스티브를 위해 기도해주셔서 감사 합니다. 당신 친필로써 보내준 편지는 나를 놀라게 했고, 위안해주었습니다.

보고서를 찬양합니다! 나의 형제와 나는 매우 긴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몇 시간 동안 듣고, 증언하고 난 후 나는 말했습니다. “자 이리와 기도하세.” 240 파운드나 되는 예비군 해병대 훈련 교관이 어린이 같이 울면서 예수님께 자기를 용서해 달라고 어린이처럼 울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당신의 사랑과 지원을 감사합니다. 당신들 모두를 사랑합니다.

D. M., 죠지아

당신의 사역이 나의 믿음을 부흥시켰습니다. 그리고 나의 믿음을 방어하도록 나를 무장시켜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당신의 사역이 나의 형제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으며 그는 지금 하나님의 어린이로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

J. H., 알칸소

당신의 모든 자료를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하여 매우 감사합니다. 당신을 통하여서, 하나님은 진정 나의 생각하는 방법을 바꾸었습니다.

2년 전에, 나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지구과학 학사학위를 받으면서 졸업하였습니다. 불행하게도, 다른 모든 대학들과 같이, 나는 단지 균일설/진화론적 지질학을 배웠습니다. 비록 나는 “원숭이에서 사람(ape-to-man)” 이론에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나는 다른 개념들에는 모두 동의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은혜를 입어 창조론-나는 이것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과 진화론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AiG(Answers in Genesis)가 바위와 화석, 그리고 창조론과 진화론의 과학적인 차이에 관한 책을 나에게 제공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모든 나이의 어린이들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C. R., 켄터키

우리 교회는 몇 년 전 당신이 덴버에 왔을 때 “창세기의 대답(Answers in Genesis)” 비디오 시리즈를 샀습니다. 최근 결혼 하기 전의 젊은이들에게 카운셀링을 하면서, 예비 신랑을 구원하게 하는데 이들 비디오가 상당히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D. G., 콜로라도

나는 요사이 가끔 당신의 비디오와 책을 즐기고 있습니다. 당신의 단체는 나를 믿음으로 인도하는데 매우 중요합니다.

R. G., 테네시

당신의 잡지는 나의 직장 동료가 크리스쳠이 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아직 그에게 용기를 주고 있으며, 그의 많은 질문에 대답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이 내려지시기를 …

J.K., 호주

나는 당신의 가르침이 어떻게 나를 변화시켰는지를 당신에게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은 진실로 나를 위해 올바른 기초를 놓아주었습니다. 당신은 창조론을 너무 분명하게 설명하기 대문에 그것을 듣는 사람은 “변명”을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창조(Creation)” 와 “창세기의 대답(Answers in Genesis)” 비디오 시리즈를 보면서 나 자신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창조주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는 탁월한 저작 품입니다. 나는 비디오를 10 번 정도는 보았습니다.

나는 당신의 충고를 따라 나의 4 자녀(2 살에서 6 살 사이)에게 창세기 1장 1절부터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을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나의 아들은 최근에 말하기를, “당신이 나를 만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님.” 지난 6 개월간의 가르침이 보람이 있는 것을 느끼면서 나의 아내와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R. B., 캐나다.

“창세기의 대답(Answers in Genesis)” 세미나 후에, 한 숙녀가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하나님, 저의 인생을 다시 찾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에는 창조론에 대한 메시지를 들은 적이 전연 없는 다렌이라는 젊은 사람은 온 종일 세미나에 참석하여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는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그 세미나가 아주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일주일 동안 “거짓말-진화론(The Lie : Evolution)” 이라는 책과 다른 창조론에 관련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도서관에서 창조론 비디오를 가져갔습니다. 그는 놀랄만한 흥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교회에 왔습니다.-그는 지금 정말 믿는 사람이 되기 위한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하루 속히, 지금 그가 준비 안되었다면, 우리는 그가 주님을 믿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한 일본 여성이 일본어 판 “거짓말 진화론”을 읽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여자는 일요일의 세미나에 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는 내용을 분명히 이해하고 창조론 메시지를 믿게 되었습니다.

R. H., 호주교회 목사

어느 날 저녁 나는 “A는 아담을 위한 것 (A is for Adam)” 이라는 책을 나의 손자들의 취침 시간에, 1996년의 전도 대회에서 이 책을 산 후, 15 번째 읽어주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우리가 “P는 계획을 위한 것(P is for Plan)”에 도달하자 처음으로, 거기서 발견한 대로, 그녀는 모든 계획을 자세히 이야기 하고 그리고 물었습니다. “언제 우리는 이 책을 다 읽을 것입니까? 할머니는 내가 나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정말 확신할 수 있도록 같이 기도해 주지 않겠습니까?”

다시 한번, 그녀가 정말 그 계획을 이해한 것을 확인하고, 우리는 아나가 그리스도를 그녀의 구원주로 받아들이도록 함께 기도했습니다. 나중에 나는 “L”자 맞은편에 있는 생명의 책 안에 그녀의 이름을 써 넣고 아나가 믿음의 교제를 한 날이 1997년 7월 30일이었음을 기억하게 하였습니다.

C. S., 미시건

나는 당신의 사역과 창세기에 관련한 명확하고 상식적인 발표, 모든 성경의 정확성을 용감하게 방어하는 모습에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 나의 믿음은 놀랄만하게 강화되었습니다. 오래 친숙한 성경 구절들을 매일 매일 닦는 “성경적인 창조론”의 렌즈를 통하여 생각하면서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기초”에 있는 흠집 있는 재료를 하나님의 흠집이 없는 제작품으로 교환함에 따라 모든 것이 더욱 더 의미 있게 느껴집니다.

신선한 공기를 들이키는 것과 같은, 놀랄만한 계시가 결과적으로 나에게 임하였습니다.

E. G., 북 캐로라이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노력을 어떻게 사용하셔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 속에 주어진 진리를 믿게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S. R., 콜로라도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감사를 드립니다. 내가 AiG(Answers in Genesis)를 통하여 모은 모든 정보와 자료들은 나의 8 살 난 아들을 잘 키우려고 노력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미쳐 돌아가는 세속적인 세상에서 살아 남아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초점을 맞추는데도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재정적으로 AiG(Answers in Genesis) 사역을 도울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 말씀에 전체적으로 기근이 들어있는 이 시대에 AiG사역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 무엇으로 감사를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자료 특히 예외적인 책 ”위대한 공룡 미스터리 풀리다!(Great Dinosaur Mystery Solved)”와 놀랄만한 정보로 가득찬 책 “정말 하나님은 계시는가?(Is there Really a God?)”를 모두 섭렵하였습니다. 아주 기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The X-Nilo 쇼”를 발견했습니다-여기서 대중들에게 접근하는 창조론 관련 연극을 찾아서 매우 흥분됩니다. 나의 아들은 “진화론: 거짓말(Evolution: The Lie)”이 찍힌 셔츠를 어느 곳에 가든지 입고 다닙니다-정말 이 샬로테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합니다.

함과 파커스와 함께 연장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음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희생적인 노력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들이 이것을 이야기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지역적인 세미나에서는 그것을 전혀 느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가족의 입장에서 보든지 목회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든지, 아니면 몇 세기나 오래되고 문화적으로 뿌리가 박힌 전반적으로 잘못된 신앙 시스템을 반전시키기 위하여 투자한 어마어마한 시간들을 생각해 보면-이들 아름다운 봉사자들에게 할 말을 잊게 됩니다. 이들 노력은 노아의 방주를 짓는 것과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때로는 일이 이겨내기 어렵게 보였을 터이지만, 소리를 내어 진화론적인 주입교육의 손상을 반전 시키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였습니다.

AiG(Answers in Genesis)와 국제적인 동역자들은 진실로 예수님이 오시기전의 부흥 개혁을 위하여 일한 세례요한과 같습니다. 당신들은 다윈이 오염시킨 땅을 복음의 씨앗을 받아들이기 좋은 땅으로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E. W., 버지니아

나는 당신이 헌신하고 있는 어렵고 가끔은 경멸을 받는 사역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25년 전 나는 다른 대부분의 기독교 대학과 같이 유신론적 진화론을 가르치는 기독교 대학에 다녔습니다. 이 과목은 주로 “성경이 과학을 지시 할 수 있다”라는 개념을 조소하는 철학 교수들이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성경학과(The Bible Department) 내의 다른 의견들과 같이, 나를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몇 년 동안 나의 크리스천 생활을 마비시킨 이 혼란은 80년대의 뉴 에이지 개념에 젖어 들게 하였으며 아직도 가책과 후회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최근에 학교에서 진화론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한다는 소식에 대해서 당국에 편지를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대학 총장은 그렇게 무례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는 보통의 노선 즉 그 이유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노선을 취하고, 또한 대학은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나의 문제를 인정하기를 거절 했습니다. 대학은 반드시 친절하고 독선적이 아니어야 합니다…이 모든 것들은 당신이 의심할 여지 없이 수 천번 들어온 말입니다. 나는 이것이 감정을 고갈 시키는 경험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단지 학문적인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내가 “속이 텅 비고, 믿을 수 없는 철학에 사로 잡혀서” 나의 일생에서 수 년간이 상실되었다는 사실에 직면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제 정기적으로 AiG(Answers in Genesis)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나의 출신 학교는 지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최근에 당신의 테이프, “교회에 도전하라(Challenge to the Church)”의 복사판을 구했습니다. 이 테이프의 내용은 대부분이 계몽 시키고 의기를 드높이는 것이었으나 교회에서 진화론의 문제가 정말 얼마나 큰지를 알고서는 심히 낙담 되었습니다. 당신의 해설 중, “기독교 대학에 의해서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말 할 때 이것이 나에게 와 닿았습니다. 지금 나는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을 찾아서 지원그룹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 그룹의 이름을 “그들의 젊은 신앙을 대학 시절에 수뢰로 공격 받는 장년” 이든지 이와 유사한 것으로 짓고 싶습니다. 나는 이제 10년 동안 나의 크리스천 생활 속의 올바른 궤도를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과거와 투쟁하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올무에 빠지지 않도록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이러한 일을 늦게 시작하였지만 잃어버린 일을 보상하는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당신에 충만한 복을 나려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D. D., 네바다

나는 내가 성경이 진리라고 알고 있고, 알고 있는지 수 년이 됩니다. 그러나 당신의 세미나가 만물을 다른 눈으로 보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나에게 새로운 기대를 주었으며 창세기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성경 공부는 큰 신선미가 있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K. J., 뉴 멕시코

AiG(Answers in Genesis) 세미나와 사역은 굉장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방어하고 창세기로 돌아가는 것을 매우 흥미롭게 만든 당신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덴버를 다시 방문하기를 기대합니다.

T. S., 콜로라도

나는 피아노와 기타를 가르치는 음악 교사입니다. 얼마 전 마이크라는 젊은 청년이 나의 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크리스천이었고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우리는 래슨 시간에도 믿음에 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그의 고등학교 생물 시간은 그에게 진화론을 매일 주입시키고 있었습니다. 나는 AiG(Answers in Genesis)로부터 받은 자료를 그에게 주었으며 그는 당신 사역본부로부터 더 많은 자료를 구입하였습니다.

가끔은 하루에 2 시간씩 만 자면서 그 소년은 이들 자료에 대해서 몰두하였습니다. 그는 생물 선생님에게 수업시간에 자기가 창조론의 관점을 발표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 선생님은 망설였지만, 그는 결국 그가 창조론의 관점을 제시하도록 허락 하였습니다. 마이크는 준비를 하고 학생들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완전한 평안함을 주셨습니다. 그는 창조론의 관점을 아무런 당황함이나, 말더듬이나 혹은 주저함이 없이 학생들 앞에서 발표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능력을 주신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그에게 많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그 자료들을 빌려 달라고 요청하였으며, 그것을 읽었습니다. 당신이 이러한 것을 알기 원하여 몇자 적었습니다. 당신의 사역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L. K., 오하이오

www.AnswersInGenesis.org 는 매우 훌륭한 웹사이트입니다.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매우 큰 복을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나는 이전에는 이것과 같은 과학적인 사실을 사이트에서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이런 것을 가질 수 있었다면 진리를 찾아 헤맨 몇 년을 절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캔(성은 없음)

나는 지난 주 캔 함의 “교회에 도전하라-기도교인이여 성경의 권위로 돌아오라(Challenge to the church-Calling Christians Back to the authority of the Bible)”라는 오디오 테이프를 우편으로 받았습니다. 나는 트럭 운전사인데 운전하면서 계속 듣습니다. 내가 이 테이프를 들으면 들을수록, 나는 말합니다, “그렇지! 이것이 내가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바로 그것이야!”

수요일 날, 나는 AiG(answers in Genesis)에 전화를 걸어서 주일 학교 클래스를 위하여 10카피를 빨리 우리 집으로 보내 달라는 요청을 하였습니다. 나는 AiG(Answers in Genesis)에서 나온 자료를 사용하여 특수한 클래스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큰 성공이었습니다.

당신은 우리 교회에 많은 팬을 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회중의 마음을 움직여서 더 많은 클래스를 허락해 달라고 그래서 더 많은 계층의 회중들이 클래스에 참여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 안에서 명백하게 설명된 분명한 진실에 대항하는 모든 정보를 비교하고, 해석하고, 질문 할 수 있는 가르침을 주어서 감사합니다! 나의 어린이들은 천문학에 대한 것이 발표되는 동안 내용이 잘못된 것을 지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S. R., 콜로라도

나의 남편, 3명의 아이들 그리고 나는 사기노에서 열린 당신의 세미나에 참석하였으며 우리들 생활은 창조론 메시지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나는 항상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신뢰해 왔습니다. 수 년간, 나는 성경과 내가 받은 진화론 가르침과 타협하는 갈등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갈등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타협과 당신의 메시지에 물타기를 하는 것에 대해서 당신이 적극적으로 반대 하는 것에 진실로 감사 드립니다. 나는 또한 당신이 교회와 가장 존경하는 지도자들 중 다소가 가지고 있는 진화론적 사고에 대한 확고한 자세에 대해서도 감사 드립니다. 우리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M. E., 미시건

이것은 내가 목회 사역 단체에게 처음 쓰는 편지입니다, 그러나 나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내가 크리스쳠이 된지 거의 5년이 다 되어갑니다. 나는 당신이 랜싱에서 가진 세미나 중의 하나에 출석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큰 복이었으며 지금도 나에게 큰 복입니다. 그 세미나는 창조론/진화론 이슈에 대한 나의 관심이 재점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경 말씀을 더 깊이 찾고, 공부하는 열정에 불을 부쳤습니다. 당신이 제공한 인쇄물과 테이프는 나의 믿음의 걸음을 강하게 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무기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풍부한 자료를 통해서 여러 가지를 배웠을 뿐 아니라,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창세기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을 서로 나누는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나는 가끔 내가 주문한 많은 책을 탐독하고 그것을 인용합니다.

나의 주위와 슬프게도 많은 교회 내에는 진화론/인본주의자의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당신의 사역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자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매끄러운 프로그램과 현대 뮤직보다 더 필요로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의 권위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계속 상기 시켜 줍니다.

M. M., 미시건

나는 이스턴 일리노이 대학에서 5년째 심리학과 역사학을 각 각 전공과 부전공으로 공부하고 있는 학생입니다. 나는 한달 전 일리노이의 댄빌에서 있었던 세미나에 참석하였으며, 내가 그 세미나에 참석한 것을 지금 매우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의 눈은 띄어졌으며 하나님은 나에게 빛을 보여주셨는데, 그 빛을 따라가서 여러 가지 사악한 것들이 나의 학교에서 “믿는 자” 들에 의해서 가르쳐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M. M., 일리노이스

나는 목사인데 당신 사역이 우리 교회의 멤버들 특히 자택 학습자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하였음을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D. W., 뉴욕

공립 학교의 10학년 모범 생물학시간에 우리는 창조에 대한 사실을 조사하였습니다. 우리 생물 교과서는 진화가 모든 생명의 기초라고 주장합니다. 우리에게는 반 학생들에게 진화론의 불가능성과 창조론의 과학적인 증거를 보여 주는데 사용할 수 있는 정보가 요구됩니다. 팜프렛, 포스터, 등 어떤 자료도 좋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의 지식을 넓히는 데 도움을 주실 것을 바랍니다.

T. C., L. F., and G. B. (공립고등학교 틴 에이져들)

나는 세속적인 대학의 학생입니다. AiG(Answers in Genesis)는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나의 믿음을 세워주는 진정한 보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레이(성은 없음)

먼저 당신의 사역에 감사 드리기를 원합니다. 나의 믿음은 고등학교 시절에 당신의 사역을 통하여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진화론을 믿는 내 친구중의 하나가 올 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나는 당신의 잡지 “창조(Creation)”를 그에게 한 권 보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그녀에게 보내준 것을 감사하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창조론/진화론의 한 면 만을 보아 왔기 때문에 이 잡지는 나에게 매우 유익한 잡지이다.” 심사 숙고한 과학적인 설명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또한 나는 이번 여름에 러시아 선교 여행을 할 때 가져가기 위하여 당신으로부터 다수의 책을 구입했습니다. 나는 몇 권을 비기독교 스포츠 캠프의 어린이들에게 기증하였다. 그들은 그 책을 매우 좋아하였습니다! 그 나머지는 교회에 주면서 나누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거기는 기독교 서적이 많이 필요한 곳입니다.

H. S., 아이오와

우리 가족은 당신이 보낸 사신(personal reply)을 받고 매우 흥분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다른 이유로 “창조(Creation)” 잡지를 받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나의 큰 아들은 대학에 다니고 있으며, 그는 그의 믿음을 그의 대학 교수님들과 직접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많이 가졌습니다. 나는 당신이 젊은 세대에게 진리를 전하는 당신의 노력이 열매를 맺는 것에 고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신이 젊은이들의 눈을 열면, 그들은 다시는 닫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에 대한 식욕을 개발하고 있으며 그것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나와 나의 아들들이 창조과학(나의 막내는 “창세기 기록(The Genesis Record)”을 화장실에까지 가지고 갑니다.)을 공부하는데 관심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 남편은 무관심합니다. 그는 많은 시간을 호텔방과 비행기 조종실에서 보내는 비행기 조종사 입니다. 그는 나에게 뭐 심심거리로 읽을 것이 없느냐고 요청하길래 어느날 그에게, “거짓:진화론(The Lie : Evolution)”이라는 책을 주었습니다. 그 후 그는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한 몇 가지 책을 더 읽었습니다. 그는 비행기 조종실에서 더 이상 무료하게 보내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도전을 좋아 했기 때문에 모든 승무원이 창조-진화 논쟁에 참여 하도록 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언급하는 것은 창조 대 진화 논쟁이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기독교 부모님들이 가족의 부모님과 노년층이 다른 사람에게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전달 할 수 있는 강한 신념과 창조론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편지가 당신과, 사람의 말과 하나님의 진리 사이의 전투에서 싸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고무하기를 원합니다.

N. K., 미시건

내가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당신 잡지는 굉장하다는 것입니다! 내 친구 하나는 대학에서 사물에 대해 비뚤어진 시각을 가진 사람들로 꽉 찬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혹독한(고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묵은 호 “창조(Creation)”잡지를 우송하였습니다. 나는 내 책이 없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보냈습니다. 그래서 이제 묵은 호는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나는 그에게 그의 주문 분을 보내고 있습니다.

E. P., 텍사스

나는 교회 장년 성경공부를 리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AiG(Answers in Genesis)에서 구입한 창조, 진화, 노아의 홍수에 관한 자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는 열렬하게 창조(Creation)잡지와 기술 져널(Technical Journal)을 보증합니다. 나의 제일 첫 번째 목표는 나의 학생들의 마음에 성경 말씀의 정확성과 무오성이 확신 되는 것입니다. 물론 나는 창조론 세계관을 지지하기위한 공격수단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탁월한 사역과 놀랄만한 출판물에 감사 드립니다.

G. T., 오크라호마

나는 철저하게 당신의 “창조(Creation)”잡지를 즐기고 있습니다. 과학 교사로서 그리고 열심히 믿는 사람으로서, 나는 나의 믿음과 모든 과학 출판물에서 과학이 선전하는 소위 “증거”에 안타까워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진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위하여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나는 나의 7학년과 8학년의 도서관에 수 년 동안 발견(Discover), 국립 지리(National Geographic), 레인저 릭(Ranger Rick), 그리고 국립 역사(Natural History) 같은 잡지를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잡지들은 내가 자랑스럽게 전시하고 있는 8 혹은 9개의 창조 (Creation) 잡지보다 숫자적으로 휠씬 많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창조(Creation) 잡지는 구멍이 날 정도로 많은 아이들이 보는데 다른 잡지들에는 먼지가 쌓인다는 사실입니다! 가장 많이 아이들이 질문 하는 것에 대한 대답이 창조(Creation) 잡지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감사합니다.

나는 최근에 처음으로 AiG(Answers in Genesis) 세미나에 갔었습니다. 대성황이었습니다. 나는 자료와 연사들에게서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캔 함은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기원에 대한 믿음이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관점은 뜻밖의 이야기였습니다. 나는 나의 지역사회에서 창조과학과 교육을 강화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을 결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Buddy Davis의 노래, “Billions of Dead Things,”가 아직 나의 머리를 흔들고 있는데, 우주에서는 다른 의사가 “brain candy”를 씹으라고 줍니다.(!!!!)

나는 자주 당신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당신의 정보가 가장 중요한 정보임을 믿고 이것을 크리스천은 물론이고 비-기독교인(non-Christian)들과도 나누고 있습니다. AiG(Answers in Genesis)에 다시 감사합니다.

추신: 당신의 새로운 창조 크럽 아이디어에 대한 정보를 나에게 보내 줄 수 있습니까? 나는 나의 학교에서 그것을 시작하든지 아니면 지원하고 싶습니다.

M. D. 중학교 과학 교사

버트너 감옥 캠프에 있는 우리들은 당신이 수감자들에게 보여주신 사랑에 뜨거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의 어린이들입니다. 당신들이 보내주신 사랑의 선물에 힘을 입어서, 주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비디오, 카세트, 책들을 보내주어서 감사합니다.

버트너 감옥 캠프 수감자 북 캐로라이나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안에서 나타난 그의 사랑은 가장 좋은 선물입니다. 당신의 친절하고 은혜가 충만한 편지는 진정 나의 가슴을 기쁨으로 가득차게 축복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가지고 있는 희망에 대해서 논리적인 설명을 할 수 있는 것이 나의 열정적인 소망이었는데, 당신의 사역이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당신의 성경에 대한 자세는 근사하며, 예수님을 높입니다. 나의 지대한 관심은 창조론 대 진화론의 기본적인 자세에 대한 자료와 성경의 확실성과 신뢰성에 관한 자료에 있습니다.

나는 당신과 당신 사역 팀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친절과 주님께 하듯 많이 도와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A. L., 일리노이스(수감자)

당신을 축복합니다! 7월24일 당신의 편지를 고함과 즐거움으로 받았습니다! 당신이 개요를 단 여러 가지 자료를 보내주시는 관대함은 진정 축복입니다. 당신과 AiG(Answers in Genesis) 스태프가 감옥 안에서 부흥이 일어났다는 것을 읽고 당신은 당신이 우리들 땅(감옥)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운동이 일어나게 한 장본인인 것을 알게 되어 웃음을 지을 것입니다.

J. W., 차프래인 감옥 플로리다

당신이 보내주신 문서에 감사 드립니다. 이것은 매우 시의 적절한 때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날은 내가 감옥에 13년 있는 중 가장 나쁜 날처럼 보였습니다. 너무나 나쁜 말이어서 나는 나의 생명의 끝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자살할 것 같았습니다.) 크리스천은 말할 필요도 없고, 누구에게라도 무서운 생각입니다. 면허 사무소로부터 돌아오면서 AiG(Answers in Genesis)로부터 “사랑의 다발(bundle of love)”을 받게 되었으니 즐거운 축복입니다.

나는 내가 다 읽은 후에 벌써 매력적인 “창조(Creation)” 잡지를 빌려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 관심을 가지는 것이 그들도 열광시켰습니다. 지금은 선물 그 자체보다 당신이 나에게 해준 기도의 응답 때문에 무척 행복해 하고 있습니다. 나의 사무소에 있는 친구가 오늘 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터널 끝에 당신을 위한 불빛이 있는가?” 나는 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그것을 나에게 무었는지 확실히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는, 체면 불구하고, “나는 구원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가 빛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당신의 사역을 돕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N. F., 위스콘신의 제소자

우리들의 주님과 구세주께 진지하게 순종하시는 당신께 감사 드립니다. 또한 당신이 월리엄 F. Key 교정 센터에 있는 우리에게 베풀어준 축복에 대해 감사 드립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지식과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는 자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많은 생명 안에서 역사하시는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는 것과 같이 주님이 당신에게 계속적으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의 나라의 덕을 위하여 당신이 행한 모든 것에 대해 우리들의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S. B., 오클라호마 제소자

나는 교도소 목회자 입니다. 하나님이 여기에서 중대한 일을 하고 계십니다. 나는 하나님이 하나님을 모르는 대부분의 여기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에게 주신 비전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여기 있는 크리스천들은 주님의 은혜와 지식 안에서 성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의 관용이 이들 제소자들에게 전달되었습니다. 당신이 사역을 제소자 사역을 통해서 전달하는 선물의 값어치는 산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느날 우리는 당신의 위대한 노력의 성과를 하늘나라에서 보게 되겠지요!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G. H., 교도소 목자. 플로리다

나는 창조론 메시지에 대해서 나의 모든 친구와 가족들에게 편지를 써 왔습니다. 나는 당신이 나에게 준 모든 소책자를 편지와 함께 보냈습니다. 나의 가족과 친구들은 그들의 창조론에 대한 입장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한 친구는 나에게 자기는 나에게서 진화론이 우리 사회를 손상시키는 방법을 들을 때까지 이 주제가 그렇게 중요한지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텔레비전의 골든 아워 프로그램은 동물의 왕국에서 수컷 90% 이상이 그들의 짝에 대해서 불성실한 것으로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 인간들은 동물들이 보여주는 성실도 보다도 더 높은 표준을 가지고 있습니까? 라고 질문 하였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미친 상태에서 말한 것과 같습니다.

이제 나의 눈이 열렸습니다. 그래서 나는 진화론이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끼친 거대한 손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뢰를 탈취하는 마귀 입니다. 나는 마귀를 압니다. 재소자로서 우리들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우리의 동물적 본능을 조절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창조론 메시지가 어떻게 나의 인생에 역사하는지를 나누는 기회를 감사 합니다.

D.F., 펜실바니아 제소자

캔 함의 창조론 세미나는 직접적으로 나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나의 일생이 바뀌었습니다.

나는 조그마한 데이-캐어 센터의 수석 교사이었습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중의 하나는 공룡이었습니다. 나는 이것에 대해 거의 몰랐기 때문에 여러 책이나 자료를 조사하였습니다. 그런데 조사하여 정리 한 것은 모두 진화론적 관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크리스천이었으나 창조론에 대해서는 너무 모른체 나 자신 믿지 않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캔 함의 세미나는 나에게 창조에 대해서 내가 정말 모르고 있었다라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고 하나님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내가 얼마나 적은 믿음을 가졌는가 일깨워 주었다. 세미나의 결과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야 하겠다는 것과 성경을 편견이 없는 방법으로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나는 이제 하나님만 바라볼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해 만든 전제나 가정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이 나에게 말하는 것만 들을 것입니다. 나는 또한 하나님이 그의 창조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단지 눈을 뜨기만 하면 하나님이 진정하게 우리와 이 방법으로 교제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는 내가 얼마나 장님같이 행동했는가를 보면서 놀랐습니다. 그리고 거룩하지도 않고, 성경적이지도 않고, 증명되지도 않은 철학을 수용한 것을 보고 또 한번 놀랐습니다. 나는 세상적인 관점에서 내가 배운 것은 차치하고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만 아이들에게 가르치기로 했습니다.

T. G., 뉴욕세미나 참석자

나의 남편과 나는 창조에 관한 당신의 자료와 책자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당신의 태도에 너무도 감사 합니다. 나의 남편은 당신의 잡지를 회사로 가져가서 동료들과 불붙는 대화를 합니다. 그것들은 증거 하는데 사용하는 좋은 무기입니다.

C. G., 미네소타

나는 최근 버밍함에서 열린 당신의 세미나에 참석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당신의 강연을 “생(live)”으로 듣게 되어 매우 기뻤습니다. 처음 당신의 테이프를 듣고 1년이 지났는데 나의 크리스천 생활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이제 나는 창세기를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왜 기독교의 기초가 되는지 그 이유를 압니다. 하나님과 같이 걷는 나의 모든 발자국은 이제 힘을 얻었으며, 강화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나의 신앙을 떳떳하게 모든 면에서 방어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평소 수세적인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공격적이 되었습니다 (말하는 태도에서).

당신이 기독교 육아에 관해 말한 것에 대해 특히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녀들에게 가르침을 전해 주기전에 하나님의 말씀(사람의 아이디어가 아님)으로부터 그들이 그 가르침을 배웠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그들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이 이 주제에 대해서 당신의 생각을 나와 좀더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R. G., 영국

캔 함의 카세트는 수 년 전 많은 어려운 질문을 푸는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내가 스페인과 아랍에서 대중에게 강의를 할 때마다 성경 내에 있는 진화론에 반하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M. H., 켄터키

2-3년 전에 나는 당신에게 당신이 창조(Creation) 잡지를 편찬함에 대해 감사의 글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창조(Creation) 잡지에 실린 이슈 몇 개를 읽고 난 후 “무신론자”인 나의 남편이 나와 우리들의 아들을 교회에 출석하게 했으며 몇 번씩 교회에 같이 나가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수 년이 흐르는 동안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렸는데, 마침내 하나님이 그를 세상의 늪에서 건져내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가족으로 인도 하셨습니다.

D. G., 오레곤

어느 날 라인알드(독일에서 온 물리학자)가 사고를 당해 몸져누워 있었습니다. 나는 그가 누워서 들으라고 그에게 창조과학 테이프를 주었는데, 그는 그것을 듣고 진화론자에서 창조론자로 변환하였습니다. 이것이 라인알드가 구원 받은 시초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나중에 그의 부인이 된 그의 여자 친구도 구원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붕아래로 들어오는 누구에게라도 같이 복음을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친절한 사람입니다. 어느날 우리는 성령님이 적당한 시기에 사용 가능한 몇 개의 테이프를 통하여 한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창조 과학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C. H., 퀸즈랜드, 호주

나는 개인적으로 수 년 전 창조과학 출판물을 통해 주님께 인도 되었습니다….나의 남편도 그 후 크리스쳠이 되었습니다. 창조과학분야가 제공하는 논리와 분별 있는 논쟁이 남편을 크게 도왔다는 것을 느낄 수 가 있었습니다.

S. W., 서 호주

세상에서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당신의 노력에 감사 드립니다. 나는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지만, 나 역시 인본주의 대학교를 졸업하고 내 방식대로 세상에서 살려는 노력을 하던 중 잃어버린 신세가 되었습니다. AiG(Answers in Genesis)가 나에게….해답을 제공하였습니다! 거기에는 생명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성경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주어진 올바른 해답이 있습니다.

이 대답은 나에게 나의 생명을 창조주에게 다시 헌신하도록 유도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 편지는 감사함을 표시하는 나의 첫번째 편지입니다. 대학을 졸업한 몇 년 후 1995년 어느 날에 한 친구가 “창세기 해답(The Genesis Solution)”이라는 비디오 카피를 나에게 빌려주었습니다. 그 후 나는 내가 어디를 가든지 당신의 자료를 사용해왔습니다. 나는 러시아의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칠 기회가 있습니다. 나는 AiG(Answers in Genesis) 책 수권을 가지고 가서 학생, 선생님들과 나눌 계획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위한 유효한 증언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W. H., 켄사스

약 한 달 전, 나는 나의 직장 동료에게 창조(Creation) 잡지를 예약해 주었습니다. 그는 그 잡지에 매우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그의 세계관을 무신론적 진화론적 교의로부터 성경의 진리로 바꾸어 달라는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그가 잡지를 받고 난 몇 주후, 우리는 그의 구원의 필요성 때문에 성경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정확한 말씀이라는 것을 믿고, 예수님을 그의 개인적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당신의 잡지를 사용하여 그의 마음속으로부터 잘못과 위선을 쫓아 내어 그가 성경을 분명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압니다.

J. B., 켄사스

나는 당신의 자료를 수 년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는데 사용하였습니다. 계속 좋은 일을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K.S., 빅토리아 호주

참고문헌(Endnotes)

제 7 장

  1. David Barton, Original Intent: The Courts, the Constitution, & Religion (Aledo, TX: WallBuilder Press, 1997), p.153. Quote Attributed to Benjamin Rush, signer of the Declaration of Independence.
  2. Benjamin Rush, Essays, Literary, Moral and Philosophical (Philadelphia, PA: Thomas and William Bradford Publishers, 1806), “Defense of the Use of the Bible in School,” p.210.
  3. Ibid.
  4. James Atkinson, ed., Luthers Works, Vol.44, The Christian in Society (Philadelphia, PA: Fortress Press, 1966), “To the Christian Nobility of the German Nation Concerning the Reform of the Christian Estate,” by Martin Luther (1520), p.207.
  5. Ibid.

제 8 장

  1. Donald E. Chittick, The Controversy: Roots of the Creation/Evolution Conflict (Eugene, OR: Creation Compass, 1984).

    Ken Ham, The Lie: Evolution (Green Forest, AR: Master Books, 1987

    Kenneth A. Ham, and Paul S. Taylor, The Genesis Solution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88).

    Henry M. Morris, Evolution and the Modern Christian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67).

    Henry M. Morris, The Long War Against God (Grand Rapids, MI: Baker Book House, 1989).

    Gary Parker, Creation Facts of Life (Green Forest, AR: Master Books, 1994).

  2. Jared Diamond, “Who Are the Jews?” Natural History, Vol. 102, No. 11, November 1993, p.19.
  3. Lewontin, Richard, “Billions & Billions of Demons,”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Jan. 9, 1997, p.31.
  4. Donald Kennedy, committee chairman, Teaching About Evolution and the Nature of Scienc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Press, 1998, chapter 5.
  5. G. Richard Bozarth, “The Meaning of Evolution,” American Atheist, September 20, 1979, p.30.
  6. Henry M. Morris, King of Creation (San Diego, CA: C.L.P. Publishers, 1980), p.48.

    Morris, The Long War Against God, p.304.

  7. Ham, The Lie: Evolution.
  8. Roy Wood Sellars (original rough draft), “A Humanist Manifesto,” The New Humanist, May-June 1933, p. 58-61.
  9. “Humanist Manifesto 2,” The Humanist, September-October 1973.
  10. John Dunphy, “A Religion for a New Age,” Humanist, Jan.-Feb. 1983, p.26.
  11. AiG has compiled a collection of written statements from Christian leaders, schools, and seminaries that reflect their acceptance and teaching of an old earth interpretation of Genesis. This list is on file at the AiG office in Florence, Kentucky.
  12. Pattle P.T. Pun, “A Theology of Progressive Creationism,” Perspectives on Science and Christian FaithThe Journal of the 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 Vol. 39, No. 1, March, 1987.

    It is apparent that the most straightforward understanding of the Genesis record, without regard to all of the hermeneutical considerations suggested by science, is that God created heaven and earth in six solar days, that an was created in the sixth day, that death and chaos entered the world after the fall of Adam and Eve, that all of the fossils were the result of the catastrophic universal deluge which spared only Noah’s family and the animals therewith.

    Douglas F. Kelly, Creation and Change (Ross-shire, Great Britain: Christian Focus Publications, 1997).

    James Stambaugh, “The Days of Creation: A Semantic Approach,” C.E.N. Technical Journal, Vol. 5, No. 1, 1991, p.70-78.

  13. Personal letter on file at Answers in Genesis dated 4/13/96.
  14. Chad Cray and Will Will, “Settling for Second Best: A Search for Truth,” The Crusader, Northwest Nazarene College, Nampa, Idaho, May 20, 1998.
  15. Ken Ham, “When Will the Church Wake Up?” Creation, Vol. 17, No. 3, June-August, 1995, p.16-18.

    Ken Ham, “The Necessity for Believing in Six Literal Days,” Creation, Vol. 18, No. 1, December 1995-February 1996, p.38-41.

    Ken Ham, “Father’s, Promises and Vegemite,” Creation, Vol. 19, No. 1, December 1996-February 1997, p.14-17.

    Ken Ham, “Millions of Years and the ‘Doctrine of Balaam,’ ” Creation, Vol. 19, No. 3, June-August 1997, p.15-17.

    Ken Ham, “Demolishing ‘Straw Men,’ ” Creation, Vol. 19, No. 4, September-November 1997, p.13-15.

    Ken Ham, “A Young Earth—It’s Not the Issue!” Answers in Genesis Newsletter, Vol. 5, No. 1, January 1998, p.1-4.

  16. Rev. J.A. Wylie, LLD, The History of Protestantism, Vol. 1. Mourne Missionary Trust, N. Ireland, 1985 (first published in 1878), p.303.
  17. Ken Ham, The Great Dinosaur Mystery Solved! (Green Forest, AR: Master Books, 1998).

제 9 장

  1. Greg L. Bahnsen, Always Ready (Texarkana, AR: Covenant Media Foundation, 1996).

    Gordon H. Clark, A Christian Philosophy of Education (Jefferson, MD: The Trinity Foundation, 1988).

    Ken and Mally Ham, D Is for Dinosaur (Green Forest, AR: Master Books,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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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uane T. Gish, Evolution: the Fossils STILL say NO! (EI Cajon, CA: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1993).

    Ken Ham, Andrew Snelling, and Carl Wieland, The Answers Book (Green Forest, AR: Master Books, 1990).

    Ham, The Great Dinosaur Mystery Sol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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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ker, Creation Facts of Life.

    Gary E. Parker, Life Before Birth (Green Forest, AR: Master Books, 1992).

  3. For example, the Creation Clubs program in public schools, initiated by Answers in Genesis in 1998. For more information, contact Kurt Streutker at: [email protected]
  4. Ham, The Lie: Evolution.
  5. “The Top 100: Part 2,” The Barna Report, Barna Research Group, Ltd., Oxnard, California, July/August 1997, p.2. “Christian Lifestyle: 27% of born-again Christians have been divorced; 23% of non-Christians have been divorced.”
  6. Trevor McIlwain and Nancy Everson, Firm Foundations: Creation to Christ, Adult/Teenage Lesson Plans (Sanford, FL: New Tribes Mission, 1991), p.3-15.
  7. Ibid.

    Trevor McIlwain and Nancy Everson, Firm Foundations: Creation to Christ, Adult/Teenage Lesson Plans (Sanford, FL: New Tribes Mission, 1994).

    Trevor McIlwain and Nancy Everson, Firm Foundations: Creation to Christ, Children’s Teacher, Vol. 1-5 (Sanford, FL: New Tribes Mission, 1993).

    Trevor McIlwain and Nancy Everson, Firm Foundations: Creation to Christ, Children’s Workbook, Vol. 1-5 (Sanford, FL: New Tribes Mission, 1995).

  8. New Tribes Mission, Now We See Clearly (video), New Tribes Mission, Sanford, Florida, 1992.

    New Tribes Mission, When Things Seem Impossible (video), New Tribes Mission, Sanford, Florida, 1994.

  9. Don Richardson, Eternity in Their Hearts (Ventura, CA: Regal Books, 1981).
  10. 10. Ibid. p.129. It is not certain whether Richardson has made the connection as to why unreached tribes usually have stories of a Creator cod or “sky-god.” He seems to attribute it all to supernatural preparation of these peoples’ hearts. While this may, of course, have happened, the fact that many also have stories of the flood, Babel, etc., strongly suggests that their cultural memory of the one true God is because of the truth of the Bible’s real history of the world. All of us have a connection through Babel (Genesis chapter 11), and not so long ago (less than 4,500 years ago).

제 10 장

  1. Ham, Snelling, and Wieland, The Answers Book.
  2. David Menton, “Inherit the Wind: An Historical analysis,” Creation, Vol. 19, No. 1, December-February 1996-97, p.35-38.

    The Worlds Most Famous Court Trial (Dayton, TN: Bryan College, 1990).

  3. Ken Ham, “The Wrong Way Round,” Creation, Vol. 18, No. 3, June-August 1996, p. 38-41.

    Ken Ham, Challenge to the Church, audio cassette tape, 1997, Answers in Genesis, Florence, Kentucky.

    Ken Ham, The Monkey Trial, video, 1997, Answers in Genesis, Florence, Kentuc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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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vante Pääbo, “The Y chromosome and the Origin of All of Us (Men),” Science, Vol. 268, May 26, 1995, p.1141-1142

  5. Steven A. Austin, ed., Grand Canyon: Monument to Catastrophe (Santee, CA: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1994).

    Steven A. Austin, George Van Burbach, John D. Morris, Andrew A. Snelling, and Kurt Wise, Grand Canyon: Monument to the Flood, (EI Cajon, CA: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1995).

  6. Ken Ham, “Millions of years and the ‘Doctrine of Balaam,’ ” Creation, Vol. 19, No. 3, June-August 1997, p.15-17.
  7. Ken Ham, “A Low View of Scripture,” Creation, Vol. 21, No. 1, December-February 1998, p.45-47.
  8. Z@XrBearse (e-mail address), assistant to Bill McCartney, president and founder, Promise Keepers, personal letter dated October 1998, on file at AiG office.

제 11 장

  1. Morris, The Genesis Record.
  2. Ham, “Millions of years and the ‘Doctrine of Balaam,’ ” Creation, p.15-17.
  3. Weston W. Fields, Unformed and Unfilled: A Critique of the Gap Theory (Collinsville, IL: Burgener Enterprises, 1976).

    Ham, Snelling, and Wieland, The Answers Book, chapter 9: “What about the Gap Theory?” p. 157-175.

  4. Don Batten, “Some Questions for Theistic Evolutionists (and ‘Progressive Creationists’),” Creation, Vol. 18, No. 3, June-August 1996, p.37

    Dean Davis, “Theistic Evolution: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Creation, Vol. 20, No. 1, December-February 1997, p.48-49.

    Werner Gitt, “10 Dangers of Theistic Evolution,” Creation, Vol. 17, No. 4, September-November 1995, p.49-51.

    Ken Ham, “A Child May See the Folly of It,” Creation, Vol. 17, No. 2, March-May 1995, p.20-22.

    Ham, “When Will the Church Wake Up?” Creation, p.16-18.

    Charles V. Taylor, “Biblical Problems for Theistic Evolution and Progressive Creation,” Creation, Vol. 17, No. 2. March-May 1995, p.46-48.

    John Verderame, “Theistic Evolution: Future Shock?” Creation, Vol. 20, No. 3, June-August 1998, p.18.

  5. “Cosmic Breakthrough!” Creation, Vol. 17, No. 1, December-February 1994, p.37-39.

    Don Batten, “Physicists’ God-Talk,” Creation, Vol. 17, No. 3, June-August 1995, p.15.

    Ken Ham, “It’s About Time Christians Take a Stand!” Answers in Genesis Newsletter, Vol. 4, No. 1, October 1997, p.1-2.

    Ken Ham, “What’s Wrong with ‘Progressive Creation’?” Answer in Genesis Newsletter Special Insert. October 1997, p.a-d.

    Mark Van Bebber and Paul Taylor, Creation and Time: A Report on the Progressive Creationist, Book by Hugh Ross (Mesa, AZ: Eden Publications, 1995).

  6. Ham, The Lie: Evolution.

    Ham, “Millions of Years and the ‘Doctrine of Balaam,’ ” Creation, p.15-17.

    Caryl Matrisciana and Roger Oakland, The Evolution Conspiracy (Eugene, OR: Harvest House Publishers, 1991).

  7. Dr. E.O. Wilson, Harvard professor (sociobiology), The Humanist, September 1982, p.40.
  8. Craig Whitlock, “Gadfly’s Crusade Is Winning Respect,” The News & Observer (North Carolina), Sunday, January 11, 1998, p.14A.
  9. Ken Ham, The Genesis Solution video, (Gilbert, AZ: Films for Christ, 1987).
  10. Ham, The Lie: Evolution.
  11. Morris, The Genesis Record.
  12. Ham, Snelling, and Wieland, The Answers Book.
  13. Parker, Creation: Facts of Life.
  14. Ham, A Is for Adam.
  15. Ham, D Is for Dinosaur.
  16. Ken Ham and Gary Parker, Answers in Genesis Video Series (including Study Guide), Answers in Genesis, Florence, Kentucky, 1993.
  17. Ham, The Great dinosaur Mystery Solved!
  18. Ham, Ken, “Where did Cain get his Wife?” Answers in Genesis, Florence, Kentucky,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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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m, “Where did Cain get his Wife?” Answers in Genesis.

    Ken Ham, “Is there REALLY a God?” Answers in Genesis, Florence, Kentucky, 1998.

  20. Ken Ham, Facts and Bias: Creation Versus EvolutionTwo World Views in Conflict, video, #9 from Answers in Genesis Video Series, Answers in Genesis, Florence, Kentucky, 1993.
  21. Carl Wieland, Stones & Bones (Green Forest, AR: Master Books,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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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e Spetner, Not By Chance (Brooklyn, NY: The Judaica Press, Inc., 1996).

제 12 장

  1. Pun, “A Theology of Progressive Creationism,” Perspectives on Science and Christian FaithThe Journal of the 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

제 13 장

  1. John Shelby Spong, Here I Stand (New York, NY: HarperCollins Publishers, 1999), p.49.
  2. Ibid.
  3. Arkansas Democrat-Gazette, June 12, 2001.
  4. United Methodist News Service, March 21, 2002.
  5. Associated Press, January 26, 1998.
  6. Hugh Hewitt, Searching for God in America (Dallas, TX: Word Publishing, 1996), p.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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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후기

이 책을 번역하면서 쉬운 일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지켜주심을 감사 드린다. 미국에서 이 번역 일을 웹켐으로 격려 해 준 가족들(Kee, Grace, David, Caren)에게 감사 드린다. 타이핑을 도와 준 파손제어 연구실원과 번역한 내용을 바쁜 중에도 처음 읽어주신 김 정임 선생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15:10) 2004년 12월 30일 오후 11시 15분OS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