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 생활의 경험에 의하면 거의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는 것 같다. 해와 별들처럼 우리의 일평생동안 거의 똑같이 보이는 것들도 사실은 점차 쇠퇴해가고 있음을 과학의 법칙이 보여준다. 태양은 매초마다 수백만 톤의 연료를 소모하고 있다. 따라서 이 소모활동은 영원히 계속될 수 없으므로 태양은 언젠가 존재하기 시작한 때가 있어야만 한다. 이 같은 논리는 전 우주에 걸쳐 적용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과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주장할 때 어떤 이들은 당연히 “하나님은 누가 창조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성경의 가장 첫 번째 구절은 “태초에 하나님이……”라고 선포하고 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 하거나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의 존재에도 시작이 있음을 암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 즉 시간 밖에 계시는 분임을 분명히 해두고 있다. 하나님은 그의 존재의 시작이나 끝이 없이 영원하신 분이시다. 그는 또한 지혜와 지식이 무한하신 분으로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1 하지만 그와 같이 영원하신 분의 존재를 받아 들이는 것이 논리적으로 타당한가? 컴퓨터와 우주 왕복선 그리고 의학의 발전에 필요한 기술을 가져온 현대 과학이 과연 그와 같은 생각을 허용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

만일 성경이 주장하는 대로 만물을 창조하신 무한한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그 증거로 우리가 무엇을 찾을 수 있는가? 우리가 그렇게 전능하신 창조주의 손길을 어떻게 알아 보기 조차 할 수 있는가?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고 주장한다. 즉 그분은 전지하신 분이다. 따라서 그분께서는 지식과 지혜가 무한하시다.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를 알아 보기 위해선 그 분께서 무한한 지혜와 능력을 갖고서 하신 일들의 증거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우리가 지적 존재의 증거를 어떻게 알아 볼 수 있는가?

과학자들은 그들이 동굴 속에서 뼈와 함께 돌로 만든 도구들을 발견할 때 왜 그렇게 흥분 하는가? 이는 돌로 만든 도구들이 지능을 가진 이들의 존재를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이 도구들이 자기 스스로를 만들어 내지 못했음을 안다. 즉 이 도구들은 지적 능력이 투자된 결과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누군가 지능을 가진 자가 이러한 도구들을 만들었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중국의 만리장성, 미국의 워싱턴 디 씨 (Washington, D.C)의 국회의사당, 호주의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Sydney Opera House)를 보고서 이런 엄청난 구조물들이 한 벽돌 공장이 폭발한 뒤 자연적으로 지어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그 어느 누구도 러쉬모어산(Mt. Rushmore)에 새겨져 있는 미국 대통령들의 얼굴들이 [역자주: 미국 South Dakota주에 있으며 보어로그(Borlaug)가 4명의 미국 대통령(George Washington, Thomas Jefferson, Abraham Lincoln, Theodore Roosevelt)의 얼굴들을 이 산의 바위에 새겼음] 수백만 년 동안에 걸친 침식작용의 결과로 생긴 작품이라고는 믿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설계의 증거 즉 지능을 가진 자가 이 산에서 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자동차, 비행기, 컴퓨터, 스테레오, 가전제품 등 인간이 만든 것들을 우리 주위에서 수 없이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런 것들이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저절로 생겼다고 믿지 않을 것이다. 설계의 증거는 도처에 산재해 있다. 방치해 둔 금속이 결국에는 엔진, 트랜스밋션(속도변환장치), 바퀴, 그리고 자동차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정교한 부속들이 되었다고 그 누가 믿겠는가?

이 “설계논증”은 종종 영국의 성공회 사제로서, 18세기말 이 주제에 관해 글을 쓴 윌리암 페일리(William Paley)와 연관이 되어 있다. 그는 특별히 시계와 시계 제작자의 예를 든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돌멩이와 시계를 비교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시계는 그것을 만든 사람이 있었음에 틀림없다. 언젠가 어느 곳에서 한 사람 또는 그 이상의 제조자들이 특정한 목적에 따라 그것을 제조하고 그 구조를 이해하고 그것의 용도에 따라 설계한 것이다.”2

그러므로 페일리(Paley)는 시계의 존재가 시계 제조자를 암시하듯이 모든 생물은 설계자를 암시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은 믿었지만 그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설계하신 뒤 지금은 그의 창조물과는 무관하게 멀리 계신 창조주일 뿐, 성경이 말하는 가까이 계시며 우리를 돌보시는 개인적인 하나님은 아니었다.3

그러나 오늘날 유명한 과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모든 식물과 생물뿐만 아니라 시계나 자동차등을 만드는 총명한 기술자들까지도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과정에서 나온 산물이라고 믿고 있다.4 하지만 과연 그들의 입장이 타당한가?

살아있는 것들이 설계의 증거를 보여 주는가?

열렬한 반 창조주의자인 고 아이작 애즈모브(Isaac Asimov)는 “사람의 뇌는 비록 1.5kg밖에 안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우주에서 가장 복잡하고 또 가장 질서정연하게 조직되어 있다.”5 고 선언했다. 인간의 두뇌는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하게 만들어진 그 어떤 컴퓨터보다도 더 복잡하고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 만일 이렇게 탁월한 지능을 가진 인간의 두뇌가 컴퓨터를 설계했다면 인간의 두뇌 역시 설계의 산물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논리적이 아니겠는가?

창조주 하나님을 부인하는 과학자들도 모든 생물이 설계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그들은 페일리(Paley)의 설계논증은 받아 들이나 페일리(Paley)가 제시한 설계자는 거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의사요 분자생물학 분야의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마이클 덴튼(Michael Denton) 박사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우리가 어디를 봐도, 아무리 주의 깊게 살펴 볼지라도 우리는 질에 있어서 절대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성과 우아함을 발견하는데, 이런 오묘한 실상들이 우연히 발생 되었다는 생각을 망설이게 한다….

생명체의 분자조직에 나타나 있는 천재성과 복잡성의 수준을 고려해 보면 인간이 만들어낸 최첨단 기계들도 아주 투박하게 보인다. 우리는 마치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20세기의 기술을 보고서 자신들에 대해 느꼈을 그런 비천함을 느낀다.

우리가 생물계에 나타난 설계의 극히 작은 일부분 이상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큰 착각이다. 거의 모든 기초 생물학 분야에서 생명체가 극도로 정교하게 설계되었음이 날이 갈수록 더욱 더 빠른 속도로 밝혀지고 있다.”6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최근 제정된 “대중의 과학이해”를 위한 찰스 시모니 석좌 교수직(Charles Simonyi Chair of Public Understanding of Science)에 있는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박사는 진화론의 대변인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선두주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을 철저히 논박하고 현대진화론을 옹호하는 내용의 "눈먼 시계 제조자"(The Blind Watchmaker)를 포함한 책들을 출판한 결과로 그러한 위치에 서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우리는 생물들이 자연 발생 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고 또 극히 아름답게 ‘설계’되었기에 우연히 생겨날 수가 없다는 것을 관찰해 왔다.”7

지극히 극단적인 무신론자조차도 이 지구상에서 존재하는 동물과 식물에 설계의 증거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만일 도킨스(Dawkins) 가 설계에서 “우연”이라는 것을 부정한다면, 그러면서도 창조주 하나님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과연 이 “우연”이라는 자리를 무엇으로 메꿀 것인가?

그렇다면 설계자는 과연 누구 또는 무엇인가?

설계는 당연히 설계자를 암시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우리 주변의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설계가 성경과 완전히 일치한다: 창세기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창1:1) 라고 기록되어있고 골로새서에는 “만물이 그[예수님]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 되었고”(골1:16)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같은 진화론자들은 생물들이 설계되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도 어떤 부류의 설계자/하나님도 부정한다. 페일리(Paley)에 관해서 도킨스(Dawkins)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페일리(Paley)의 논증은 열정적인 진지함을 담고 있으며 당시의 최고 생물학계 학자들의 주장에 정통해 있긴 하지만, 그의 논증은 전적으로 틀렸다. 망원경과 눈 그리고 시계와 생물을 비교한 것은 잘못이다.”8

왜 그렇게 주장하는가? 이는 도킨스(Dawkins)가 설계를 그가 주장하는 소위 “물리학의 맹목적인 힘”(blind forces of physics)과 자연선택/자연도태(natural selection)의 과정 탓으로 돌리기 때문이다. 그는 주장하기를

보이는 모든 것과 반대로 자연계에서 유일한 시계 제조자는 아주 교묘하게 장치된 맹목적인 힘이다. 진정한 시계 제조자는 선견지명이 있다. 그는 톱니바퀴의 이와 스프링들을 설계하며 그의 마음의 눈에 있는 장래의 목적을 가지고 이 부품들을 서로 연결시킬 계획을 세워둔다. “다아윈이 발견했고 이제는 우리도 알고 있는 모든 생물 중에 있는 분명한 목적과 존재에 관한 설명이라 할 수 있는 맹목적이고 무의식적인 자동적 과정인 자연선택은 목적의식이 없다. 그것은 마음도 없고 또 마음의 눈도 없다. 또 미래를 위한 계획도 없다. 미래에 대한 꿈이나 선견지명도 없다.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 전혀 없다. 만일 자연에서 시계 제조자의 역할을 하는 자가 있다고 한다면 이는 맹목적인, 눈먼 시계 제조자이다.”9 (강조는 추가 된 것임) 라고 했으나 다음과 같은 사실을 시인했다.

“우리는 확률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적은 것일수록 맹목적인 우연에 의해 발생했다고 믿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우연에 대한 명백한 대안은 지능을 가진 설계자(Intelligent Designer)이다.”10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지능을 가진 설계자의 개념을 부정하면서 대신 다음과 같은 “답변”을 제시한다.

“답변, 즉 다아윈(Darwin)의 답변은 단순한 시작으로부터, 즉 우연히 발생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단순한 원시적인 개체들로부터 점진적으로 또 단계적으로 변환되어 가는 것이다. 이러한 점진적 진화의 과정에서 일련의 개별적 변화는 그 전 단계의 존재에 비해 우연히 일어날 만큼 지극히 미세한 것이다.

“그러나 원래 출발시의 존재와 최종 산물의 복잡성을 비교해 볼 때 누진적 단계의 전 과정은 결코 우연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이 누진적 과정은 계획된 생존성(nonrandom survival)에 의해 이끌어진다. 이 장의 목적은 이 누진적 선택의 힘이 근본적으로 계획된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11

그렇다면 도킨스(Dawkins)는 기본적으로 자연선택12, 13, 14과 돌연변이

15, 16, 17가 함께 진화과정을 위한 장치(도구)를 제공한다고 고집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이러한 과정들이 “ 계획되었으며(NONRANDOM)” “ 인도된다(DIRECTED)”고 믿고 있다. 사실상 그의 주장은 진화자체가 설계자라는 것을 세련된 방법으로 교묘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자연선택이 설계를 산출해 내는가?

생물은 정보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정보는 유전에 관계된 분자 즉 유기체의 유전자들을 구성하는 DNA에 담겨 있다. 그러므로 자연선택과 돌연변이가 진화과정의 기본적 도구라고 주장하려면 이런 진화 과정들이 생명체내에 있는 분명한 설계의 증거를 설명할 수 있는 정보를 생산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다아윈(Darwin)처럼 기초 생물학을 이해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연선택이란 관찰할 수 있는 논리적 과정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자연선택이란 이미 유전자 내에 있는 정보에 의해 작동될 뿐이지 새로운 정보를 결코 만들어 내지 않는다.18, 19 실제로 이것은 우주의 기원에 대해 하나님께서 동식물을 각자의 “종류”별로 같은 종 내에서만 재생산해내도록 창조 하셨다는 성경의 기록과 일치된다.

우리가 한가지 종류의 생물 내에서 여러 가지 변이가 있는 것과 자연선택의 결과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면 늑대, 카이오테, 딩고(Dingo:들개의 일종)는 개/늑대 “종류”의 유전자 안에서 발견되는 정보에 의한 자연선택의 결과로써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새로운 정보도 생겨나지 않았다. 즉 이 다양한 종류의 개들은 원래 개 종류 안에 있던 정보의 재배열(rearrangement), 분류(sorting out), 그리고 분리(separation)의 결과로 생긴 것이다. 하나의 “종”(kind)이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정보를 가진 완전히 다른 새로운 “종”으로 변한 예는 결코 관찰된 적이 없다!20 정보의 양을 증가시키기 위한 지능의 투입이 없는 한 자연선택은 진화의 도구로써의 역할을 할 수 없다.

덴튼(Denton)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이를 확인하고 있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란, 어떤 지적인 인도도 받지 않고서 어떤 종류의 지능의 투입이 없이 문제를 푸는 것과 비슷하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충분치 않다. 과언이 아니다. 지능의 투입이 관련된 활동은 결코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와 비교될 수 없다.”21

정보를 증가시킬 방법이 없는 한 자연선택은 진화의 도구로 사용될 수는 없다. 진화론자들은 이 주장에 동의를 하면서도, 돌연변이가 어떻게 해서건 자연선택이 작동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돌연변이가 새 정보를 산출해 낼 수 있는가?

사실상 과학자들은 절대로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이제 알고 있다. 뛰어난 과학자로서 잔스 합킨스(Johns Hopkins) 대학교에서 정보통신 이론을 가르치는 리 스페트너(Lee Spetner)박사는 이에 관해 철저하게 연구하고 학문적으로 잘 다룬 그의 저서 결코 우연이 아니다(“Not By Chance”)에서 이 점을 아주 분명히 하고 있다.

“이 장에서 몇 가지 진화의 예, 특히 돌연변이의 예를 들면서 정보가 결코 증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겠다…… 그러나 내가 읽은 생명과학을 다룬 모든 문헌 중에서 돌연변이가 정보를 증가시킨 예는 단 한 건도 발견하지 못했다.”22

“분자 수준에서 돌연변이의 모든 측면들을 연구해 본 결과 돌연변이는 유전정보를 감소시킬 뿐 증가시키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23

“신 다아윈이론(NDT: neo–Darwinian theory)은 생명체에 관한 정보가 진화에 의해 어떻게 축적되어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인간과 박테리아와의 본질적인 생물학적 차이점은 이들이 갖고 있는 정보에 있다. 다른 모든 생물학적 차이점은 정보의 차이의 결과로써 생겨난다. 인간의 지놈(genome)은 박테리아의 지놈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있다. 돌연변이는 정보를 잃게 하기 때문에 돌연변이로 인해 정보를 축적할 수는 없다. 이는 마치 매번 조금씩 계속해서 재정적 손실을 입어가는 사업으로는 결코 돈을 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24 (강조는 추가 된 것임)

진화론을 주장하는 과학자들은 스페트너(Spetner)박사를 포함한 많은 과학자들이 내리는 이러한 결론들을 결코 피할 수가 없다. 돌연변이는 결코 진화과정의 도구로서 사용될 수 없다. 스페트너(Spetner)박사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신 다아윈주의자들은 우리로 하여금 일련의 작은 규모의 사건들이 충분히 많이만 일어난다면 대규모의 진화가 있을 수 있다고 믿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 모두가 정보를 잃는다면 아무리 많은 돌연변이가 일어난다고 해도 신 다아윈주의자가 설명하기로 되어있는 그러한 종류의 진화의 단계가 될 수는 없다. 누구든지 대진화(macroevolution)가 정보를 잃는 돌연변이로 인해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물건을 팔 때마다 매번 조금씩 손해를 보고 물건을 파는 상인이 손해 보는 가격으로라도 물건을 많이 만 팔면 이 손해를 만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지놈에 조금이라도 정보를 증가시키는 돌연변이는 단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또 신 다아윈 이론이 요구하는 것처럼 수백 수천만의 셀 수도 없이 많은 돌연변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이 요구하는 종류의 돌연변이란 단 한번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정보를 증가시키는 그러한 돌연변이가 단 한 건도 관찰되지 않았다는 것은 단지 그들의 이론을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것 이상의 사실을 의미한다. 이는 그들의 이론을 부정하는 증거이다. 우리는 바로 이점에서 신 다아윈 이론에 심각하게 도전하는 바이다.”25 (강조는 추가 된 것임)

이와 같은 사실은 독일연방 물리 기술연구소(German Federal Institute of Physics and Technology: Physikalisch–Technische Bundesanstalt Braunschweig)의 교수이며 연구소장인 워너 깃트(Werner Gitt)박사의 “새로운 정보가 돌연변이로 인해 생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진화론 설명의 주요 골자이지만 돌연변이는 이미 존재하는 정보에 변화를 야기시킬 뿐이다. 정보의 증가라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오히려 일반적으로 해로운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새로운 기능이나 새 기관을 위한 청사진 같은 것은 결코 생겨날 수 없다. 돌연변이는 새로운(창조적인) 정보의 근원이 될 수 없다.”26 (강조는 추가 된 것임)

그러므로 만일 자연선택과 돌연변이가 생명체의 설계나 정보 생산의 도구로써 받아들여 질 수 없다면 다른 근원을 찾아야 된다.

그러나 정보의 근원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은 보다 많은 기본적인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더 많은 문제들!

당신이 보잉747에 앉아서 이렇게 뛰어난 비행기가 어떻게 제작되었는가에 대해서 읽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당신은 이 날아가는 기계가 600만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부품 중 그 어느 것도 단독적으로는 날지 못하는데도 당신이 지금 지상 10km 상공을 시속 800km로 날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면 당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비행기의 부품 중 어느 하나도 스스로 날 수는 없지만, 이것이 완제품으로 조립되면 비행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심할 것이다.

이제 유기체가 기능을 발휘하도록 하는 세포의 생화학적 기본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 비행기의 제작을 비유적으로 사용해 보자. 과학자들이 발견한 바에 의하면 세포 내에는 수천개의 “생화학적 기계”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세포는 빛을 감지하고 그것을 전기신호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한때 과학자들이 세포 안에서 빛을 감지하여 전기신호로 변환시키는 것이 단순한 과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은 아주 고도로 복잡한 과정이다. 단지 이 변환기능 하나만 예를 들어 보더라도, 한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수많은 화합물이 적당한 시기에 적당한 장소에서 꼭 적절한 밀도로 있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기능이 발휘될 수 없다. 달리 말하자면 보잉747 항공기가 날 수 있으려면 비행기의 모든 부품들이 미리 완전히 조립되어 있어야 하듯이 세포 내에 있는 모든 “생화학적 기계”들의 부품들도 제자리에 있어야 되며 그렇지 않을 때에는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세포 하나 안에만 해도 세포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이런 “기계”들이 문자 그대로 수천 개가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화학물질이 생명체로 진화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과학자들은 이제 생명체는 이와 같은 “기계”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펜실바니아주에 있는 리하이(Lehigh) 대학교의 생화학과 부교수인 마이클 비히(Michael Behe)박사는 이 “생화학적 기계”들은 “단순화시킬 수 없는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지금 우리는 생명체에 관한 근본 과학인 현대 생화학이 흔들리는 전환점에 와 있다. 과거 한 때에는 생물의 근본을 단순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이는 한낱 환상이었음이 증명되었다. 오히려 세포 안은 더 이상 단순화 시킬 수 없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있다. 생물은 단순한 자연법칙의 결과라는 생각에 익숙해 져있던 20세기의 우리에게 생명체가 지능을 가진 존재에 의해 설계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다른 세기에 살던 사람들에게도 충격적인 사건들이 있었는데 우리라고 이 충격을 피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다.”27 (강조는 추가 된 것임)

이 사실을 좀 더 설명하기 위해 모기를 손바닥으로 찰싹 쳐서 잡는 것을 머리 속에 그려본 뒤 “왜 모기가 죽었는가?”라는 질문을 생각해 보자. 당신은 맞아서 으깨져 죽은 모기에게도 살았을 때와 같이 진화론자가 원시국(primeval soup)안에 들어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생명체를 위한 모든 화학물질이 다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 모두는 이 모기 “국물”로부터 아무것도 진화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 왜 모기가 죽었는가? 당신이 모기를 손바닥으로 때림으로써 “파괴”(disorganize)했기 때문이다.

일단 모기의 각종 “기계”가 파괴된 뒤에는 이 모기라는 유기체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세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생명체가 존재하려면 먼저 문자 그대로 수천 개의 “기계”들이 필요하다. 이것은 화학물질로부터의 진화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화론자 도킨스(Dawkins)는 다음과 같이 진술함으로써 생명이 있기 위한 전제로서 이 “기계”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복사기는 자기자신의 설계도를 복사할 능력은 갖고 있지만 스스로 어디선가로부터 튀어나와 존재할 능력은 없다. 생체가 적합하게 쓰여진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는 환경에서는 쉽게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지만 자신이 그 프로그램을 짜거나 그 프로그램을 수행할 컴퓨터를 만들어 낼 능력은 없다. 눈먼 시계 제조자의 비유는 우리가 복제와 그에 따른 축적선택(cumulative selection)을 허락한다면 아주 강력한 이론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복제가 복잡한 기계장치를 필요로 한다면, 그 복합기계가 궁극적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축적선택(cumulative selection)이기에 우리는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28

이는 정말로 큰 문제가 된다. 우리가 생물의 구조 및 기능을 살펴보면 볼수록 점점 더 복잡한 것을 보게 되어 생명체가 저절로 생겨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생명체가 생기려면 정보의 근원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생명체내에 복잡한 생화학 “기계” 역시 생명체가 존재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존재해야 한다.

여전히 더 큰 문제들

어떤 과학자들과 교육자들은 위에서 언급된 문제들을 회피하기 위해 유전분자(그리고 유전분자가 갖고 있는 정보)들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화학 물질들이 과거의 어느 시기에 조립되어 생명체가 시작되었다고 추정한다.

이미 언급한대로 생명체는 정보에 근거하여 만들어진다. 사실 인간의 몸에 있는 수 조(trillions)개의 세포 중 단 한 개 속에 있는 유전자가 갖고 있는 정보의 양은 적어도 권 당 500페이지짜리 책 1,000권에 해당 된다고 추정되어 왔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제 이 추측도 엄청나게 과소평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엄청난 양의 정보가 어디서 왔는가?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려고 한다. 이제 교수 한 분이 영어의 알파벳 26글자(A-Z) 모두를 취해 모자 속에다 집어 넣는다고 가정해 보자. 그리고 학생들에게 모자를 돌리면서 각자 마음대로 한 글자씩 뽑도록 한다고 하자.

이 경우, 비록 가능성은 극히 적으리라 보이겠지만 세 학생이 연이어 뽑기를 첫 사람이 B를 뽑고 다음 사람이 A 그리고 세 번째 사림이 T를 뽑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세 글자를 모아보면 BAT라는 단어가 된다. 그래서 그 교수는 결론을 내리기를, 아무리 가능성이 적게 보이든지 간에 상관없이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일련의 단어들이 문장을 만들고 결국에는 백과사전을 편찬해낼 가능성이 항상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학생들은 화학물질이 진화과정을 거쳐 생명체가 되는 데는 어떠한 지능도 필요하지 않다고 믿도록 유도된다. 분자들이 DNA와 같은 합성체가 올바른 순서로 한꺼번에 배열만 된다면 생명체가 생성될 수 있다!

외견상으로는 이것이 논리적인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 비유에는 기본적으로 결정적인 모순이 있다.

생각해 보라! BAT라는 세 글자의 연결로 만들어진 이 단어는 누구에게 의미가 있는가? 영국인, 네덜란드인, 불란서인, 독일인 또는 중국인 중 누구에게 인가? (야구방망이 또는 박쥐라는 뜻을 가진) 이 영어 단어는 영어라는 언어를 아는 사람에게만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단어는 이 글자 순서가 의미를 갖도록 하는 언어 시스템이나 번역 시스템이 이미 마련돼 있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세포 안에 있는 DNA의 분자 배열순서 역시 이 배열을 의미 있도록 하는 세포의 생화학적 언어 시스템(즉 다른 분자들)이 이미 존재해 있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언어 시스템이 없는 DNA란 아무런 의미가 없고 DNA없는 언어 시스템 역시 무의미하다. 문제를 더 복잡케 하는 것은 DNA내에 있는 분자의 순서를 읽는 언어 시스템 역시 DNA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이것도 이미 완전한 형태로 존재 해 있어야만 하는 “기계들” 중의 하나인데 이 기계가 없이는 생명체가 존재할 수 없다.

무 정보로부터 정보가 나올 수 있는가?

우리는 이미 소위 진화의 도구라고 하는 돌연변이로부터 정보가 생성될 수 없다는 것을 살펴 보았다. 그렇다면 물질로부터 정보가 생성될 수 있는 그 어떤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있는가?

워너 깃트(Werner Gitt) 박사는 우리가 과학으로부터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정보란 무질서로부터 우연히 생겨 날 수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해 두고 있다. 어떤 정보가 생성되려면 항상 보다 더 많은/우수한(greater) 정보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정보란 지능의 결과이다.

“코드 시스템(a code system)이란 항상 정신적 과정의 결과이다 (이는 발명가나 지적인 존재를 필요로 한다)…… 강조되어야 할 것은 물질 같은 것으로는 어떠한 코드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경험에 의하면, (코드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자유의지와 지각 그리고 창의력을 자발적으로 행사 할 수 있는 사고력을 가진 존재가 필요하다.”29

“자연법칙 중 그 어느 것을 통해서도 물질이 정보를 생산해 내지 못한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물리적 과정이나 물질적 현상 역시 정보를 생산해 내지 못한다.”30

“……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자연법칙이나 과정 또 어떠한 일련의 사건들도 물질 스스로 정보를 발생하도록 야기시킬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31

그렇다면 정보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생물들에게 있는 엄청난 양의 정보는 원래 우리보다 훨씬 우수한 지능으로부터 나왔음에 틀림없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이는 그러한 원천 역시 훨씬 더 우수한 정보/지능을 가진 어떤 것에 의해 야기되어야 한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어떤 이는 이와 같이 훨씬 더 우수한 정보/지적존재는 어디서 온 것일까라고 질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뒤 이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지은자는 어디서 왔는가 하고 계속해서 무한한 질문을 할 수 있다. 단…… 우리의 유한한 지식을 능가하는 무한한 지능을 가진 근원이 있지 않다면 그런 질문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태초에 하나님이 ……”라고 한 것이야말로 바로 이것이 아닌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시간이나 공간 또는 그 어떤 것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 무한한 존재이다.

심지어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조차도 이것을 인식하고 있다.

“우리가 복합유기물(organized complexity)을 그냥 가정하도록 허락만 된다면, 즉 DNA/단백질을 복제해 낼 수 있는 기관과 같은 복합유기물이 주어지기만 한다면, 이 기관으로 하여금 보다 더 발전된 형태의 복합유기물을 생산해내도록 하는 것은 비교적 쉬울 것이다.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그러나 물론 어떤 하나님이든지 간에 DNA/단백질을 복제하는 기계와 같이 복잡한 것을 지혜롭게 설계할 수 있는 지능을 가졌다면, 적어도 이 기계만큼은 조직적이고 복잡해야 될 것이다. 만일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든지 죄를 사해 준다든지 하는 진보된 기능을 가졌다면 훨씬 더 복잡하고 조직적이어야 한다.”

“초자연적인 설계자를 이용해서 DNA/단백질 기계의 근원을 설명한다는 것은 정확히 말해서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설계자의 근원을 설명하지 못한 채로 남겨두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마도 ‘하나님은 항상 계셨다’라고 말하거나 만일 그와 같은 나태한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DNA는 항상 존재했었다’라고 하거나 ‘생명체는 항상 존재했었다’라고 말한 뒤 모든 것을 끝내버리라.”32

그렇다면 어느 것이 논리적으로 변호될 수 있는 입장인가? 물질이 항상 존재해 왔고(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스스로 존재하게 되었고) 그 뒤 우리가 순수 과학분야에서 관찰한 모든 것과 반대로 물질이 스스로 정보 시스템에 맞추어 정렬되었다는 말인가? 아니면 무한한 존재 즉 무한한 지능의 원천33이신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께서 생명이 존재할 수 있도록 순수 과학과 일치하는 정보 시스템을 창조하셨는가?

만일 순수 과학이 무한하신 창조주 하나님에 관한 성경이 주장하는 것을 지지한다면 이 사실을 두뇌가 뛰어난 과학자들 모두가 왜 받아들이지 않는가? 마이클 비히(Michael Behe)는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과학이 지적설계 이론을 거부하는 네 번째이자 가장 강력한 이유는 철학적인 고려에 근거한 것이다. 수많은 저명한 과학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자연 이상의 그 어느 것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상호 작용이 아무리 짧거나 건설적이든지 간에 초자연적 존재가 자연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다시 말하면, … 그들은 그들의 과학에 미리 철학적 헌신을 함으로써 (역자 주: 예를 들면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설명은 무조건 반대하기로 작정하는 등) 물질세계에 관하여 어떤 종류의 설명을 받아들일 것인지를 제한한다. 때로는 이로 인해 좀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34 문제의 요점은 바로 다음과 같다. 만일 어떤 이가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그 하나님께서 또한 우리를 소유하고 계신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한다. 만일 이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이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유하고 계시며 따라서 그분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지켜야 될 규범들을 만드실 권리가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께 반항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 반항(죄라고 함) 때문에 우리의 육체는 사형선고를 받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살든지, 아니면 그분이 계시지 않는 곳, 즉 심판을 받는 곳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하지만 좋은 소식이 있다.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거역한 죄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주셨다.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영원토록 함께 지낼 수 있다. (이것은 이 소책자 끝에 보다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누가 창조했는가?

무한하신 존재는 말 그대로 항상 존재해 오시는 분이다. 즉 그 누구도 하나님을 창조하지 않았다. 그는 성경이 말하는 위대한 “스스로 있는 자”35이시다. 그는 시간을 초월하시는 분이다. 사실 그는 시간을 창조하신 분이다.

아마도 당신은 “그럼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가?”라고 따질지 모른다. 히브리서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그렇다면 기독교의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 이는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다. 실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진화론자들이 맹목적인 믿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36

그들은 무언가를 믿어야 하는데 이들은 순수 과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 즉 정보가 무질서로부터 우연히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눈을 열어 그들의 믿음이 실재하는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있게 하신다.37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논리적으로 변호할 수 있는 믿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 지니라.” (로마서 1:20)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되는 것이 정말 기쁜 것은 성경이 또 하나의 종교책이 아니라 성경이 주장하는 대로 창조주의 말씀이라는 것이다.38

오직 성경만이 왜 아름다움과 추함이 있는지, 왜 삶과 죽음이 있는지, 왜 질병과 건강이 있는지, 왜 사랑과 미움이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오직 성경만이 전 우주와 기본적 생물체 모두의 기원에 관해 참되고 신뢰할 만한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역사적 기록은 고고학, 생물학, 지질학 그리고 천문학에 의해 수없이 거듭 확증 되어 왔다. 비록 성경이 수백 년에 걸쳐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감동을 받은 많은 기자들에 의해 기록 되었지만 성경에서 결코 모순되거나 잘못된 것이 발견된 적이 없다.

갖가지 분야의 과학자들이 성경의 정확성과 성경이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의 계시라는 성경의 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수백 권의 책과 테이프들을 냈다. 이 성경은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를 설명해 줄 뿐 아니라 또 우리가 우리의 구주와 어떻게 영원히 살 것인가 하는 기쁜 소식을 알려주고 있다.

이 소책자와 다른 흥미로운 자료들은 이 소책자 전면에 있는 우편 및 인터넷 주소로부터 쉽게 구할 수 있다.


Answers in Genesis(해답은 창세기)라는 기관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고 우주와 인류의 기원, 그리고 역사에 관한 성경의 기록이 참되다는 것을 확증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참된 역사의 일부는 인류의 조상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함으로써 죽음과 고난,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가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슬픈 소식을 포함하고 있다. 모든 아담의 후손들은 잉태 될 때부터 죄인이며(시편51:5) 하나님께 대한 배반(죄)에 동참해왔다. 그러므로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도록 저주를 받았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마서3:23) 라고 하며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데살로니가후서1:9)을 받게 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기쁜 소식은 하나님께서 이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 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 이니라.” (요한복음3:16)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전혀 없으셨지만 우리 인류를 대신하여 인류의 죄의 대가(죽음과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를 치르기 위해 고난을 받으셨다. 그분께서는 그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로움이 의롭게 요구하는 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와 같이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예수님은 완벽한 희생제물이셨다. 그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나 제 삼 일에 죽음을 정복하시고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그를 진심으로 믿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자신의 선행보다는) 그를 의지하는 자마다 하나님께 돌아와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길을 마련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한복음3:18) 성경은 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라고 말하고 있다.

이 얼마나 좋으신 구세주요 또 우리의 창조주이신 예수님 안에서 얼마나 놀라운 구원인가?

Footnotes

  1. 시편90:2; 106:48; 147:5. 존재를 야기시키는 원인이 있는 것들만이 시작이 있음에 유의하라. J. Safati, ‘If God created the universe, then who created God?’ CEN Technical Journal 12 (1) 20-22, 1998 를 보라. Back
  2. W. Paley, Natural Theology: or Evidences of the Existence and Attributes of the Deity, Collected From the Appearances of Nature. 1802 Reprinted in 1972 by St. Thomas Press, Houston, Texas, p.3. Back
  3. I. Taylor, In the Minds of Men, 1991. TFE Publishing, Toronto, Canada. p.121. Back
  4. 이 과정을 통해서 무생물로부터 생물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추측한다. 오랜 동안에 걸친 작은 변화들의 결과로 유전정보가 증가되어 각종 동물과 식물들로 발전 되어 왔다. 예를 들면 물고기가 양서류로, 양서류가 파충류로, 파충류가 조류 및 포유류로 진화 되었다고 진화론자들은 주장한다. 결국 인간은 원숭이와 같은 조상으로부터 진화 되었다는 것이다. Back
  5. Asimov, Isaac. 1970. ‘In the Game of Energy and Thermodynamics You Can't Even Break Even,' Smithsonian (June), p.10. [Cited in page 82 of The Illustrated ORIGINS Answer Book, 1995. Eden Communications, Gilbert, Arizona.] Back
  6. Denton, Michael. 1986. Evolution: A Theory in Crisis, Adler & Adler Publishers, Inc., Bethesda, Maryland. p.342. Back
  7. Dawkins, Richard. 1987. The Blind Watchmaker, W.W. Norton & Co., New York. p.43. Back
  8. Ibid., p.5. Back
  9. Ibid. Back
  10. Dawkins, Richard. 1982.’The Necessity of Darwinism,’ New Scientist, vol. 94 (April 15). p.130. Back
  11. Dawkins. 1987. p.43. Back
  12. 창조론자인 개리 파커(Gary Parker) 박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자연선택이 실제로 일어나긴 하지만 자신의 종을 ‘보존’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일어날 뿐 한 유기체가 다른 것으로 변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자연선택은 창조된 생물들이 오늘날의 오염된 세계에서(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인간이 초래한 오염에도 불구하고) 생태학적 환경과 지리적 조건이 다양한 지구 전역에 흩어져서 번식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여러 과정 중 하나이다.’ Parker, Gary. 1994. Creation Facts of Life, Master Books, Green Forest, Arkansas. p.75.
    ‘[리차드]리원틴은 진화론자요 거리낌없이 창조론을 반대하는 자 임에도 불구하고 창조론자들이 주장하는 자연선택에 관한 동일한 한계점들을 솔직히 인정했다:
    “… 자연선택은 본질적으로 유기체로 하여금 자신을 향상시키기 보다는 자신의 적응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작용한다.” (강조는 추가 된 것임)
    ‘자연선택은 지속적인 향상(진화)으로 인도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유기체가 이미 소유하고 있는 특성(창조)을 유지하도록 도울 뿐이다. 리원틴은 또 멸종된 종들도 현존하는 종들과 꼭 같이 살아 남기에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면서 덧붙이기를;
    “… 자연선택은 결국 어느 한 종의 생존가능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을 ‘따라가거나’ 맞추어 나가도록 도울 뿐이다.” (강조는 추가 된 것임)
    ‘내가 보기에는 자연선택의 이유는 단지 각각의 종이 지리적으로나 생태학적 환경이 다양한 지구에서 계속 번식하고 충만할 수 있도록 충분한 다양성을 가지고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Parker, Gary. 1994. pp.84-6. Back
  13. Ibid. pp.70-86. Back
  14. Wieland, Carl. 1995. Stones and Bones. Creation Science Foundation Ltd., Acacia Ridge D.C., Queensland, Australia. pp.18-20. Back
  15. ‘결국 돌연변이란 이미 존재하는 유전자 내에서 일어난 변화 일 뿐이다.’ Parker, Gary. 1994. p.103.
    ‘“The Mechanisms of Evolution” 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을 가진 논문에서 Francisco Ayala 는 돌연변이가 DNA 내에서 일어난 하나의 “실수”(an error) 라고 정의한다.’ Parker, Gary. 1994. p.99. Back
  16. Ibid. pp.88-104. Back
  17. Wieland. 1995. pp.18-25. Back
  18. Lester, Lane P., and Bohlin, Raymond G. 1989. The Natural Limits to Biological Change. Probe Books, Dallas, Texas. pp. 175-6. Back
  19. E. Noble, G. Noble, G. Schad and A. MacInnes, Parasitology: The Biology of Animal Parasites. Lea & Febiger, Philadelphia. 1989. Chapter 6, Evolution of Parasitism?, p.516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자연선택은 이미 존재하는 특성에 대해서만 작용할 뿐이지 적응하는데 필요한 특성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Back
  20. 예를 들면, 진화론자들의 증명되지 못한 수많은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파충류가 새로 변하는 것을 관찰했거나 증명하지 못했다. 일부 진화론자들이 ‘중간’ 생물이라고 과시했던 고전적 예인 시조새도 수많은 진화론자들이 부정하고 있다. (Gary Parker, Creation: Facts of Life, Master Books, Green Forest, Ark., 1994 을 보라.) Back
  21. Denton. 1986. p.317. Back
  22. Spetner, Lee, Dr. 1997. Not By Chance, The Judaica Press, Inc., Brooklyn, New York. pp.131-2. Back
  23. i Ibid., p.138. Back
  24. Ibid., p.143. Back
  25. Ibid., p.159-160. Back
  26. Gitt, Werner. 1997. In the Beginning Was Information. CLV, Bielefeld, Germany. p.127. Back
  27. Behe, Michael J. 1996. Darwin's Black Box. The Free Press, New York. pp. 252-253. Back
  28. Dawkins. 1987. pp.139-140. Back
  29. Gitt. 1997. pp.64-7. Back
  30. Ibid., p.79. Back
  31. Ibid., p.107. Back
  32. Dawkins. 1987. p.141. Back
  33. 따라서 무한한 정보나 또는 비록 유한하지만 생명체에 관한 엄청난 양의 정보를 만들어낼 수 있다. Back
  34. Behe. 1996. p.243. Back
  35. 출애굽기 3:14; 욥기 38:4; 요한복음 8:58; 계시록 1:18; 이사야 44:6; 신명기 4:39. Back
  36. 마태복음 13:15; 요한복음 12:40; 로마서 11:8-10. Back
  37. 마태복음13:16; 사도행전 26:18; 에베소서 1:18; 요한일서 1:1. Back
  38. 마태복음5:18; 디모데후서 3:16; 베드로후서 1:21; 시편 12:6; 데살로니가전서 2:13. Back